대리기사 노씨의 하루

2009.06.09 09:15:54 호수 0호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만난 노모(33)씨. 그는 3개월 전 수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실직해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그가 밤거리로 나가는 시간은 오후 7시 정도. 사무실에 출근 신고(?)를 하고 ‘콜(손님 호출)’을 받기까지 노씨의 지루한 하루는 계속된다.

첫 콜이 들어온 시간은 오후 9시. 강남에서 영등포까지 가는 손님이다. 여러 곳에서 대리운전을 불러놓고 가장 빠른 대리운전자를 이용하는 풍조 때문에 노씨는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손님이 기다리는 곳으로 매번 이동한다.
노씨는 “콜을 받고 택시를 타고 가도 먼저 온 대리운전자에게 손님을 뺏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뛰는 만큼 번다는 말은 이젠 옛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 9시50분 목적지인 영등포에 도착한 노씨는 운행비 1만5000원을 받았다. 이 중 택시비 3000원, 사납금 3000원(20%)을 뺀 나머지 9000원이 그의 수입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중교통이 끊기거나 유흥가가 아닌 외지로 행선지가 결정되면 손해를 안 입으면 다행. 최근엔 경기불황까지 겹치면서 하루 평균 2∼3건에 그치는 상황이다.

더욱이 콜을 받을 때 필요한 개인휴대 단말기(PDA)와 휴대폰 할부비용, 보험료 등으로 매달 15만원씩을 내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 결국 쉬는 날도 없이 새벽 3∼4시까지 수도권 전역을 다니지만 하루 5만원을 벌기 힘들다는 게 노씨의 전언이다.


그는 “콜비·PDA 사용료·통신요금·보험비·택시비 등 한 건당 들어가는 비용은 7000∼8000원에 이른다”며 “이렇게 수입의 절반가량을 지출하면 한 달 수입이 100여 만원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노씨를 자극하는 것은 정작 따로 있다. 취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다 보니 걸핏하면 시비가 벌어진다는 것.
노씨는 “막말은 기본”이라며 “길을 조금이라도 헤매거나 거스름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면 온갖 욕설을 듣기 일쑤”라고 전했다.

근무여건도 열악하다. 노씨에겐 길거리가 곧 개별 사업장이다. 대기할 만한 시설은 전무하다.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그는 “콜을 받을 때까지 길거리에서 마냥 시간을 때운다”며 “한 시간 넘게 손님을 기다리다 보면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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