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한테 맞고는 못살아요”

2009.06.02 09:32:46 호수 0호

자살 부르는 학교체벌 심층고발

교사 추천도서 읽고 여중생 자살사건 벌어져 학교 체벌 논란
체벌 당하고 귀가 뒤 스스로 목숨 끊은 사건도 있어 충격 두배



학교체벌인가 학교폭력인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교사들의 학생체벌이 ‘자살’까지 부르고 있다. 교사의 ‘사랑의 매’에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낀 몇몇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체벌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표출했다. 지난달에만 두 명의 중·고등학교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준 것. 이 사건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학교체벌 찬반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날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교사들의 권위에 또 한 번 먹칠하는 사건이라는 데도 이견이 없다. 사건을 들여다봤다.

많은 이들이 학창시절 잊고 싶은 기억 중 하나로 꼽는 것이 선생님으로부터 당했던 각종 체벌이다.

어떤 이들에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도를 넘은 체벌을 당했던 이들은 다르다. 세월이 지나도 치가 떨리는 순간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감정이 섞인 비인간적인 체벌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은 학교체벌이 아닌 학교폭력으로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존재하는 체벌
경찰신고의 대상 되기도

학교체벌은 지금도 초·중·고등학교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 비해 그 강도나 성격, 방법이 달라지긴 했지만 많은 교사들이 체벌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또 우리나라 교육 문화나 여건 상 학교체벌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고 자신의 잘못이 명백하다 해도 교사의 매나 벌에는 감정이 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많은 학생들의 생각이다.

이 같은 교사와 학생들의 생각차이는 체벌과 관련한 사건들을 끊임없이 발생시키고 있다. 교사에게 체벌을 당한 후 경찰서로 신고전화를 하거나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유포하는 등의 사건이 그것. 이제는 뉴스거리도 안 될 만큼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교체벌이 목숨과 연결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교사에게 체벌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두 건이나 발생해 세간에 충격을 던져준 것.

그 중 하나는 지난달 21일 벌어졌다. 이날 광주에서 한 여중생이 자신의 방에서 목숨을 끊었다.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오후 11시30분쯤 광주 서구 모 아파트에서 A(13)양이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고 숨져 있는 것을 언니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문제는 유족들이 말하는 A양의 자살이유다. 유족들은 A양이 숨지기 하루 전날 학교에서 심한 체벌을 받았고 이것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 측은 학교에서 교사가 한 권의 책을 추천했는데 A양이 이를 읽지 않았다는 이유로 급우들 앞에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70~80회 했고 독후감까지 써오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교사가 추천한 책은 10대 소년의 죽음에 얽힌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그린 소설로 이를 본 A양이 심한 압박감을 받고 자살까지 했다는 것.

유족들은 “교사가 아이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자살이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 담긴 책을 추천하고 이를 읽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한 체벌을 한 것이 자살의 원인”이라며 해당 교사를 비난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당 교사는 “심한 체벌은 없었고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기 위해 책을 추천했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천한 책은 일종의 자살방지용 책자이고 청소년에게 해가 되는 내용의 책이 아니라는 것.

결국 A양의 죽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무엇인지는 죽은 자만이 아는 진실로 묻히게 됐다. 경찰은 유족 및 해당 교사 등을 상대로 정확한 자살 동기와 경위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체벌과 관련성이 짙은 또 다른 자살사건은 지난달 1일 일어났다. 이 사건이 벌어진 곳 역시 광주다. 고교 1학년생이던 B(17)군이 교사로부터 체벌을 당하고 귀가한 뒤 아파트 놀이터에서 목숨을 끊은 것.


광주시 교육청과 남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1일 오전 3시45분쯤 광주 남구 한 놀이터 정자에서 B군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B군은 지난 4월30일 자율학습 2시간을 빠졌다는 이유로 친구 1명과 함께 교사 C(28·여)씨에게 지시봉으로 발바닥을 110대가량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이 학교 교장의 딸로 알려졌으며 수년간 기간제 교사로 활동하고 나서 올해 정규교사로 채용됐다.

수치심 일으키는 체벌까지
자성 촉구 목소리 높아

B군은 심한 체벌을 당한 후 오후 10시까지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면서 친구들에게 “못 살겠다. 죽어버리고 만다”는 말을 농담처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B군은 인터넷 메신저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TV를 보다 집을 나가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B군 역시 정확한 자살 동기가 체벌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특히 평소 B군이 가정불화와 진로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드러나 목숨을 끊은 것이 체벌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는 밝혀내기 힘든 사실이다.

그러나 심한 체벌을 당했다는 사실과 체벌을 당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체벌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거라는 추측은 가능한 상황이다.

학교체벌과 관련한 충격적인 사건은 이뿐만 아니다. 지난 4월에는 여학생들의 교복치마를 벗기는 비인간적인 체벌이 벌어진 사실이 알려져 혀를 내두르게 했다. 공교롭게도 이것 역시 광주의 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광주시 모 여고에서 한 교사가 성적이 나쁜 여학생들에게 치마를 벗으라고 시킨 뒤 스타킹 차림으로 벌을 받게 한 사실이 알려졌다. 1학년 영어를 담당한 한 여교사가 쪽지시험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에게 이 같은 모욕적인 방식의 체벌을 가한 것.

당시 수업을 받은 학생들에 따르면 벌을 받은 학생들은 치마를 벗고 교탁 위에서 2~3분간 무릎을 꿇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문제의 여교사는 이와 관련 “성적이 나쁜 학생에 대한 벌칙으로 학생들이 ‘이마 매 맞기’와 ‘치마 벗기’를 제안했고 이를 해당 학생들에게 하도록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벌을 받은 여학생들은 극심한 수치심을 느꼈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연달아 광주 지역에서 충격적인 학교체벌이 벌어지자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전교조 광주지부는 성명을 통해 “광주의 학교에서는 학생한테 체벌을 해서라도 자율학습을 시키고, 모욕을 주어서라도 시험점수를 높이는 등 경쟁적 입시교육의 폐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실력 광주’를 외치며 학생 인권을 보호하는 데 눈감아온 광주시 교육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은 “학부모들은 학교 교육이 상식선에서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과잉 체벌로 안타까운 자살과 낯부끄러운 말썽이 발생한 만큼 부적격 교사를 퇴출하고 이를 방치한 교장을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그린마일리지’제도가 효과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제도에만 그친 것도 학교체벌 문제를 발생시키는 한 가지 요인으로 보고 있다.

그린마일리지 제도란 학교생활 규정을 어기는 학생에게 체벌 대신 벌점을 주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는 상점을 부여해 선행을 독려하는 제도다. 또 누적 벌점이 일정 기준을 초과한 학생의 경우 교내 봉사활동에 참여하면 벌점을 감해주기도 한다.

기존의 상벌제도와 다른 점은 학생에게 주는 상점과 벌점을 전산화해 학부모에게 휴대폰으로 통보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학부모들이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해 학교와 가정에서 동시에 교육이 이뤄지게 한다는 취지다.

학생과 교사 시각차로
각종 사건 되풀이


그러나 취지와는 다르게 학생들의 처벌 방법을 하나 더 늘려준 제도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등 효과는 그리 높지 않다. 심지어 벌점과 체벌 중 하나를 택하라는 학교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체벌을 없애려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체벌이 교육상 필요하다는 교사의 입장과 감정이 실린 체벌이 존재한다는 학생들의 입장 차 역시 학교체벌과 관련된 각종 사건을 부르는 요인이다.

특히 학생들이 교사들의 체벌을 폭력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교사로부터 당하는 체벌을 폭행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한다거나 동영상으로 찍어 배포하는 등의 행동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사의 체벌을 ‘사랑의 매’라고 생각하고 반성의 계기로 삼는 것을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며 “교육의 목적으로 체벌을 택했다면 학생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규칙을 세워 그에 합당한 방식의 체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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