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충격의 토요일! 노무현 서거>⑧ 사진으로 본 노무현의 치열했던 63년

2009.05.26 13:27:35 호수 0호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을 위하여…

산골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바보 노무현’으로 불릴 만큼 깨끗한 정치인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도덕성에 흠집이 난 것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저 뒷산에서 생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부산상고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까지 역임하는 등 나름의 인생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 갔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민주화운동을 시작, 인권변호사 활동에 나섰다. 1988년에는 지역주의를 허물겠다는 의지로 제13대 총선에서 부산지역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계에 입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의 시작이었다. 정계에 입성한 그가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청문회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다. 그는 그만의 소신을 바탕으로 정계의 판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2002년 ‘노풍’을 일으키며 제16대 대통령 당선이라는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그의 대통령 당선만으로 세상이 바뀔 리 만무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노무현 정부는 ‘아마추어정부’라는 비아냥에 시달리는가 하면, 대통령 탄핵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임기 5년, 파란만장했던 참여정부와 그. 그의 가시밭길 인생과 정계 활동이 대통령직 퇴임과 함께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퇴임 후에도 그의 비운은 끝나지 않았다.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려 가족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비리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감수해야 했다. 도덕성은 물론 자존심마저 바닥으로 치닫자 노 전 대통령은 끝내 감내하지 못하고 결국 토요일 아침, 마을 뒷산에서 세상을 등졌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달라는 짧은 유서만을 남긴 채 63년 인생이 끝이 난 것이다.
어느 순간도 순탄한 적이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의 삶.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를 향한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 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요시사DB,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사저 앞마당에서 국민들과 대화를 가졌다.
 

탄핵 당시 참담한 심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사진설명
1. 초등학생 시절의 모습.
2.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
3. 군 복무 당시의 모습. (사진의 맨 왼쪽)
4. 사법연수생 당시의 모습.
5. 변호사 사무실 개업 당시의 모습.
6. 노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의 모습.
7.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 당시의 모습.
8. 13대 국회의원 당선 당시의 모습.
9. 16대 대통령 당선 당시의 모습.
10.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의 모습.
11. 퇴임 후 손녀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노 전 대통령.
12.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노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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