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1위' 대교 장애가족 농락한 사연

2013.04.19 15:03:07 호수 0호

'눈높이' 수학책 펴고 언어발달 공부

[일요시사=사회팀] 한 시각 장애인이 사교육 시장의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모두가 말렸지만 그는 "장애인의 권리는 장애인이 찾아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장애인과 대기업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유형(39)씨는 4조원대 학습지 업계 1위 대교와 소송 중이다. 20대에 시력을 잃은 그는 한 여성 시각장애인과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꾸렸다. 내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자 했던 이씨. 이런 이씨가 거대 자본을 상대로 송사를 치르게 될 줄은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

관리 소홀 시인

지난 2011년 이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교의 주력상품인 '눈높이' 판촉사원의 전화였다. 그는 이씨에게 '언어발달지원사업(이하 언어발달사업)'이란 교육 서비스를 소개하며 가입을 권유했다.

언어발달사업은 장애부모의 자녀가 필요한 언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주관 사업이다. 사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는 바우처를 발급해 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서비스 대행업체를 정부가 직접 선정하고, 업체 측에 지원금을 전달해 기업의 이윤을 맞추는 구조다.

정부 보조금 의존도가 높아 서비스 신청 조건은 다소 까다롭다. 부모 모두가 시각·청각·언어 등 중증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어야하며, 서비스 대상은 만 18세 미만의 비장애 아동으로 한정돼있다.


비장애인들에게도 생소한 이 서비스를 이씨 역시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이씨와 부인 모두 자녀 교육에 별 문제를 느끼고 있지 않던 터라 '특수한 언어 교육'이 필요할리 만무했다. 처음 이씨는 판촉사원의 권유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판촉사원은 수차례에 걸쳐 끈질기게 이씨를 설득했다. 해당 바우처 사업의 경우 가입자가 많아야 기업이 회수할 수 있는 이윤이 증가했기 때문. 거듭된 전화에 이씨는 본인 부담금 4만원과 정부 보조금 18만원, 모두 22만원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제안을 승낙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대교가 내세운 교육 서비스를 환산한 금액이 16만원이었던 것. 이씨는 약속된 금액에서 6만원이 부족한 것을 대교 측에 지적했고, 대교 측은 집중 멘토링 서비스 등을 내세워 이씨를 설득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씨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교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가정교사의 방문이 시작되자 고마움은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먼저 자녀의 담당 교사는 언어발달사업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수업 교재는 일반 방문 수업에 사용되는 교재였으며, 수업은 절반 이상 단축되기 일쑤였다. 서비스의 기본 취지와 다르게 사업이 운영되고 있던 것.

장애인 자녀 특별교육 한다더니 일반수업
정부 감독 느슨한 틈타 '대충대충 서비스'

이씨는 항의했다. 그러자 대교 측은 "서비스 시간을 연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수업 시간은 또 다시 축소됐으며, 언어발달사업에 맞는 커리큘럼은 짜이지 않았다.

이씨는 아이를 가르치는 눈높이 교사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교사는 "문제가 있는 건 맞지만 (자신의)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라 (내가)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이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사례를 찾아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수업 단축은 기본이고, 교사가 가정 방문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감독이 느슨한 점을 악용해 아예 교육을 하지 않고 입금된 돈을 나눠 갖는 사례까지 있었다.

이씨는 "언어발달사업이라 해놓고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쳤다"며 "다른 중증 장애인들은 자녀가 무슨 교육을 받는지도 몰라 오히려 대교에 고마워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언어발달사업은 전국 시군구의 400여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서비스 이용자는 약 1100명으로 편성된 정부 예산은 약 2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현재 대교는 이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관리의 의무가 있는 보건복지부는 지난 2년간 현장실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차례 표본을 뽑아 만족도 조사는 했지만 다수의 중증 장애인들은 대교 측에 고마움을 느껴 후한 점수를 줬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실상을 알고 있는 이씨가 민원을 제기하자 보건복지부는 뒤늦은 사건 수습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2일 현장 점검에서 언어발달서비스 내용과 다른 수학을 가르친 게 확인됐다"며 "해당 금액을 환수조치하고 또 다른 위법 사례가 있는지 점검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업을 대행하고 있는 대교 측은 서비스 운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교 홍보팀은 "언어발달 서비스는 치료가 아닌 지원에 가까운 서비스"라며 "장애부모 자녀의 부족한 영역별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학부모 및 아동의 상황에 따라 일부 조정이 있긴 했으나 기본 요건은 모두 충족하도록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해명했다.

언어발달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는 서울시 관계자의 설명은 달랐다. 이 관계자는 "계획서에 명시된 지원 내용은 (일반 교육이 아닌) 언어 및 청능 치료, 언어재활서비스, 수화지도 등을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선에서 해당 서비스를 신청 받고 있는 담당 공무원의 설명도 비슷했다. 그는 "언어발달사업이 일반 교과목을 가르치도록 계획된 사업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전이나 인력 문제로 바우처 사업 운영이 어려운 것도 알지만 중앙에서 관리가 안 되면 지역으로 민원이 들어와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측은 회유 급급

이씨는 최근 서울남부지검에 대교를 고발했다. 대교 측은 이런 이씨에게 금전적인 협상을 제의했으나 이씨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회유 과정에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씨는 "장애인의 권리는 장애인이 찾아야 하지 않겠냐"며 "다른 가정의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사업이 제대로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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