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 협박 못 이겨 채무자 스스로 목숨 끊은 사실 드러나
계속된 폭행, 협박에 같은 대부업자 돈 빌린 3명 자살 ‘경악’
사채업자들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 ‘돈을 갚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라’라는 섬뜩한 사채업자의 협박에 3명의 채무자가 자살한 사실이 드러난 것. 자살한 이들 중 한 명의 유서에선 “죽어도 사채업자를 용서할 수 없다”라는 내용이 발견돼 사채업자의 횡포를 짐작케 했다. 그런가 하면 돈을 빌려준 장애인 여성에게 낙태를 강요하고 노래방 도우미까지 시키며 돈을 받으려고 한 사채업자, 채무자를 상대로 성폭행을 하고 성매매까지 시킨 사채업자 등 수위를 넘어선 사채업자들의 몹쓸 행각이 이어지고 있다.
사채업자 한 명이 세 명을 죽음으로 내몬 사실이 드러났다. 채무자들이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하게 한 장본인은 대부업을 하고 있는 한모(56)씨.
충남 공주경찰서에 따르면 한씨와 부하직원 변모(36)씨 등 일당은 2006년 초 최모(51·여)씨에게 연 120%(법정이율 상한 연 49%)의 이율로 200만원을 빌려줬다. 그러나 최씨가 빚을 갚지 못하자 최씨를 폭행한 뒤 “돈을 갚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라”라는 무서운 협박을 일삼았다.
이를 견디지 못한 최씨는 그해 7월 공주시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최씨가 숨질 당시 남긴 유서에는 “죽어도 사채업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한씨 등의 횡포를 짐작케 했다.
한씨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최씨만이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2005년 11월 500만원을 빌렸던 김모씨 역시 2006년 2월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또 2007년 5000만원을 빌린 황모씨 역시 같은 해 7월 한 공원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 김씨는 자신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 자살했고 황씨는 숨지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빚 때문에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 없으면 죽어’
협박 못 이겨 자살
한씨에게 돈을 빌렸던 다른 채무자들도 입에 담지 못할 협박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 채무자는 한씨에게 “딸자식 밤길 조심하라고 해라” “돈 못 갚아 시달리기 싫으면 차라리 약 먹고 죽어라”는 등의 협박을 받고 폭행까지 당했다고 말했다.
경찰조사 결과 한씨 등은 2005년부터 최근까지 4년여 동안 영세 상인과 가정주부 등 157명에게 모두 3억원 상당을 빌려준 뒤 연리 120%의 높은 이자를 적용, 모두 12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에도 한씨는 경찰조사에서 “합법적으로 돈을 받았고 자살로 몰고 갈 정도의 횡포는 없었다. 나로 인해 그 사람들이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공주경찰서는 지난 6일 채무자를 협박하고 폭행해 자살에 이르게 한 혐의(자살교사) 등으로 대부업자 한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변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처럼 사채업자의 협박에 세 명이 줄줄이 자살한 사건에 많은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갈수록 험해지는 사채업자들의 횡포가 잇달아 드러나는 가운데 밝혀진 사실이기에 그 충격은 더했다.
최근에는 돈을 빌려 간 장애여성이 빚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태를 하고 노래방 도우미까지 시킨 사채업자가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충남 서천경찰서는 사채를 갚도록 하기 위해 지적장애인 여성에게 낙태를 강요하고 노래방 도우미까지 시킨 혐의(대부업법 위반 등)로 A(43)씨 등 2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또 임신 5개월이던 지적장애인 여성에게 불법 낙태 시술을 한 혐의(업무상 동의 낙태)로 산부인과 의사 B(5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무등록 대부업자인 A씨 등은 지난해 7월경 지적장애 2급인 C(35)씨와 그의 아내(24)에게 350만원을 빌려준 뒤 돈을 갚게 하기 위해 최근까지 10차례에 걸쳐 충남 서천군 C씨의 집에 찾아가 협박하고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 등은 지난해 11월에는 “노래방 도우미라도 해서 돈을 갚으라”며 C씨의 아내를 협박하고 대전시 유성구의 산부인과로 데려가 임신 5개월이던 C씨의 아내에게 낙태수술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C씨의 아내가 낙태수술을 받은 지 이틀 만에 노래방 도우미로 강제로 취업시켰으나 C씨의 아내가 힘들다며 도망치자 다시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돈을 갚으라며 협박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C씨 부부는 휴대전화 연체요금과 카드대금 미납금 등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자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아 사채업자들을 찾아가 돈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파렴치한 행각을 벌인 A씨 등은 경찰조사에서 “부부가 일을 해 돈을 갚겠다고 해서 일자리를 알아봐 준 것 뿐이다”라고 말해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비인간적인 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몸으로라도 갚아야지”
성폭행, 성매매까지
일부 사채업자들은 여성 채무자들에게 성추행과 성폭행 등을 일삼아 돈을 갚을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돈을 갚지 않는 여성 채무자를 상대로 성추행을 일삼은 모 대부업체 직원 이모(42)씨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대부업체회사를 차려 운영하던 이씨는 말 그대로 악덕 사채업자였다. 그는 법정 최고금리인 49%보다 많게는 10배가 넘는 고금리를 받아 챙기며 불법 사채업을 했다. 이들의 희생양이 된 것은 서울 강북에 사는 쌍둥이 자매. 이들 중 한 명인 김모(28)씨는 이씨의 대부업체에서 500만원을 빌려 썼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에도 돈을 갚을 수 없었고 결국 지난해 8월28일, 이씨와 직원들이 김씨의 집으로 침입했다. 이들은 김씨에게 “왜 돈을 갚지 않느냐. 가족까지 모두 없앨 수도 있다”고 협박한 뒤 김씨와 김씨의 쌍둥이 자매까지 옷을 벗기고 번갈아가며 성추행했다.
협박과 성추행에 이기지 못한 김씨는 결국 연 300%가 넘는 고리로 매일 10만원 씩 65일 동안 이씨에게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씨 일당은 이 같은 방식으로 채무자 50명에게 3억2000만원을 빌려주고 4억700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지난해 9월 초 1500만원을 빌려간 채무자 서모(27·여)씨를 찾아가 납치한 뒤 서울 시내를 끌고 다니며 5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나체사진을 찍어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은 사채업자도 덜미를 잡혔다. 대부업체 직원 김모(32)씨와 대표 정모(34)씨 등은 500만원을 빌려 간 가정주부가 돈을 갚지 않자 지난해 9월4일, 이 가정주부를 납치해 강제로 승용차에 가뒀다. 그리고 “나체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보여 주겠다”고 협박한 뒤 100일 동안 6만원씩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일삼은 대부업자도 적발됐다. 대부업체를 운영하던 김모(38)씨 등 2명은 2000만원을 빌려간 D(26·여)씨가 돈을 갚지 않자 송파구 한강고수부지 주차장으로 끌고 와 강제로 성폭행을 했다.
이밖에도 또 다른 윤락여성 2명을 사무실에서 강제 추행하며 협박해 높은 금리의 이자를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직원 최모(2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채무자를 납치해 협박하는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대출금을 갚지 못한 여성에게 “안마시술소에 팔아넘기겠다”고 협박한 E씨(36)씨 등 2명에게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11월6일 오후 9시쯤 360만원을 빌려갔다가 돈을 갚지 않은 20대 여성을 강남구의 한 호텔 커피숍으로 불러냈다. 이들은 이 여성을 2시간 동안 서울시내 곳곳으로 끌고 다니며 협박해 목걸이와 반지, 휴대폰 등을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사채업자로 인해 고통 받는 서민들은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대표 이선근) 홈페이지 상담실 코너에 가면 사채를 썼다가 각종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사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 한 여성은 스무 살부터 유흥업소에서 일하면서 불어난 사채 때문에 인생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중학교 졸업도 못했다는 이 여성은 밤업소 생활에 지쳐 검정고시 준비도 뜻대로 할 수 없지만 빚 때문에 업소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사채업자들이 “집에 찾아가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협박하는 통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나고 있다며 민생연대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신체포기 각서 강요 역시 여전히 사채업자들의 단골메뉴다. 채무자 본인의 신체 뿐 아니라 가족의 신체에 대한 포기각서까지 받아내는 것이 실정이라고. 심지어 사망보험금으로 빚을 갚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지고 있다.
이처럼 사채업자들의 상상을 초월한 행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서민들이 늘자 정부는 ‘불법 사금융 피해 방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불법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쓴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 최고 1000만원까지 포상금을 받게 된다. 또 정부는 법정 최고이자를 넘어선 이자에 대해서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과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등을 지원해준다.
단순 무등록이나 이자율 제한 위반 등의 사유로 불법 대부업자를 신고하면 기타범죄로 분류돼 최고 100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그러나 불법 대부업자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폭행·갈취한 경우 최고 1000만원, 성폭행을 한 경우 500만원, 대규모 사채업 등의 경우에는 200만원까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또 법무부는 불법사채 피해자에 대한 법률구조를 위해 법정 최고이자를 초과한 이자에 대해서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과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지원해줄 예정이다.
불황에 빚더미 가정 늘어
사채 피해자도 더욱 증가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이란 부당하게 청구된 채무를 갚을 의무가 없다는 것을 확인 받는 것이다. 현재 대부업체는 대부업법에 따라 연 49%, 무등록 불법사채업자는 이자제한법에 따라 연 30%까지만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또 검찰과 경찰?지방자치단체?금융당국?국세청 등이 합동으로 불법 대부업체에 대한 단속과 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끝없는 불황으로 수입을 얻지 못하거나 사업에 실패해 사채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세태는 더 많은 악덕 사채업자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어 정부의 대책이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거둘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