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박인생 주인공 되셨습니다’

2009.05.12 09:56:07 호수 0호

불황 속 활개 치는 사행성게임 요지경실태


갈수록 커지는 온라인도박…지난해엔 판돈 32조 인터넷서 거래
미성년자, 주부 등 나이·계층 가리지 않고 사행성게임 빠져들어

사행성 게임으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박봉과 빚에 치여 텅 빈 통장잔고를 한 방에 채워보겠다는 희망이 많은 사람들을 사행성 게임에 매달리게 하고 있다. 자취를 감췄던 바다이야기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컴백해 지친 사람들을 유혹하는 지경이다. 최근의 사행성게임은 단속을 피해 가정집 등에까지 파고들어 학생이나 주부 등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그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다. 개인과 가정을 좀먹는 사행성게임의 실태를 취재했다.



지난 4일,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정족리에 위치한 깊은 산속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곳은 농산물 보관창고. 396㎡ 규모의 창고에는 농산물이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몇 해 전 사라졌던 바다이야기 게임기 50여 대.

사라졌던 바다이야기
가정집까지 침입

산 속에 불법 게임장을 차린 이는 한모씨 등 두 명. 이들은 지난달 중순 이곳에 게임기를 가져와 몰래 영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게임장 진입도로와 창고입구에 여러 대의 CCTV를 설치해 경찰 단속을 피해왔다.

가정집도 게임장으로 둔갑했다. 울산 동부경찰서는 지난 3일 가정집으로 위장해 바다이야기 게임장을 차려놓고 불법영업을 해온 A(30)씨와 종업원 B(30)씨를 적발했다.

A씨 등은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울산시 동구 방어동 일반주택을 임대해 바다이야기 게임기 30여 대를 설치해 영업을 해왔다. 단골손님만 입장시키는 방법으로 단속을 피해오기도 했다. 사전에 업주와 연락이 된 손님들에게만 게임장 위치를 알려주고 얼굴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입장을 시키는 치밀한 방법을 사용한 것.


경찰조사 결과 A씨 등은 5000원권 상품권 1매당 10%를 공제한 후 환전해 주는 방법으로 1일 100여 만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올리는 등 최근까지 모두 1000여 만원 상당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중·고등학생들이 수없이 출입하는 학원건물에 버젓이 바다이야기 게임장을 차린 일당도 덜미를 잡혔다.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학원건물 지하에 사행성 게임기를 설치해 운영한 김모(40)씨를 게임산업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바지사장 임모(31)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4월 초, 수원시 정자동에 위치한 한 학원건물 지하에 게임장을 차린 뒤 바다이야기 게임기 15대를 설치해 불법 영업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건물 옥상과 현관 출입문에 각각 CCTV를 1대씩 설치해 운영하며 경찰 단속을 교묘히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불황이 깊어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는 사행성게임 열풍은 숨어있던 바다이야기까지 수면 위로 끌어냈다. 경기침체가 지속될수록 만연하는 한탕주의는 각종 불법 사행성 게임의 활황을 불러온 것.

이는 조사결과로도 나타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08년 불법도박 실태조사 및 대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경마, 경륜 등 합법 사행산업 규모가 16조원인 반면 불법 사행산업은 53조원을 넘어섰다. 이 중 정부 허가를 받지 않은 사설 경마·경륜·경정·카지노는 9조5000억원, 사행성게임장은 11조5000억원, 온라인 도박은 32조원이다.

바다이야기는 사이버 세상에서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실제 바다이야기와 똑같은 화면과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인터넷 바다이야기가 그것. 인터넷 바다이야기는 컴퓨터만 켜면 안방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

취업준비생 이모(30)씨 역시 바다이야기로 인해 밤잠을 설치고 있는 케이스다. 그는 1000만원이 넘는 빚을 처리하지 못해 고심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씨가 처음 온라인 도박에 빠져든 것은 3년 전 우연히 PC방에 가면서부터다. 인터넷을 서핑하던 그의 눈에 포커게임이 들어왔고 재미삼아 게임을 즐기는 도중 쪽지 하나가 왔다고 한다. 그것은 사이버머니를 현금처럼 쓰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의 광고쪽지였다.

이에 혹한 이씨. 당장 쪽지 속 사이트에 들어가 회원가입을 했다. 1만원을 들여 사이버머니도 구입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실력인지 운인지 게임을 하는 족족 돈을 땄다. 용돈으로 쓰고도 남을 만큼 적지 않은 돈도 벌게 됐다.

간혹 ‘이쯤에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씨의 발목을 잡는 것은 계속해서 불어나는 사이버머니. ‘타짜’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큰돈을 벌게 된 그는 그때부터 좀 더 판을 키웠다. 베팅금액은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승률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이미 대출까지 받아 온라인게임에 쏟아 부었던 터라 대출금이라도 벌어야 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3년 전 사라졌던 바다이야기 게임이 인터넷에서 버젓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바다이야기로 건너와 다시 한 번 자신의 운을 시험해봤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번번이 돈을 잃기만 했다. 결국 대출금을 갚기 위해 사채까지 얻어 쓴 이씨는 1000만원이 넘는 빚더미 속에서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씨는 “수입이라곤 없는 내 상황에서 1000만원이라는 돈을 어떻게 갚을지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깬다”며 “취업하기만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볼 낯이 없어 연락을 끊은 지도 몇 달이 지난 형편”이라며 깊은 한숨을 토했다.

이씨처럼 많은 이들이 인터넷 바다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오프라인에서 게임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으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장점(?) 탓이다.


같은 화면 같은 느낌
인터넷 바다이야기 극성

인터넷으로 옮긴 바다이야기는 게임방식이며 화면 속 물고기들의 모양까지 그대로 본뜬 게임이다. 해당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한 뒤 게임 프로그램을 다운받고 간단한 절차를 거치면 쉽고 편하게 안방에서 바다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게임을 시작하면 오프라인 게임장과 똑같은 스릴감을 준다는 광고문구가 거짓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게임에 나오는 해파리나 상어 등의 캐릭터, 효과음까지 오프라인의 그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첨 직전 특정 캐릭터가 등장하는 예시기능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그때 그 시절 바다이야기에 빠졌던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이처럼 게임장에서 하는 것과 흡사한 기분을 느끼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데다 경찰단속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위험성마저 없어 온라인 바다이야기에 빠지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보다 다양한 나이와 계층의 사람들이 바다이야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오프라인 바다이야기는 특정 장소에 모여 게임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손님은 성인남성이었다. 반면 인터넷 바다이야기는 미성년자부터 직장인, 주부까지 컴퓨터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모두를 유혹하고 있다.

특정지역에 가야 즐길 수 있었던 카지노게임장도 도심에 생겨 도박 중독자들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 1월에는 대낮 카지노에 빠져든 주부들이 적발되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주부들을 도박판에 끌어들인 일당은 서울 동대문구에서 활동하는 조폭 윤모씨 일당. 이들은 지난해 10월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건물 2층에 ‘S기획’이란 가짜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건물 안은 카지노의 일종인 바카라 기계로 가득했다.

이들은 역할을 분담해 순진한 가정주부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모집책들은 주부들에게 ‘바카라 도박은 다른 도박에 비해 쉽고 승률도 높아 돈을 따기 쉽다’고 유혹했다. 또 주부들이 100만원짜리 칩을 교환할 때마다 추첨권 1매를 제공하고 매주 3차례 추첨을 통해 10만~2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술책을 사용해 주부들을 점점 더 많이 불러 모았다.

이밖에도 모닝서비스를 내걸어 손님을 끌어들이는 한편 휴게실과 식당을 만들어 무료로 음료수 등을 제공하며 도박꾼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도록 유도했다.

이들의 술책은 먹혀들어가 하루 150여 명의 주부들이 게임장에 출입했다. 판돈이 282억원에 이르는 큰 규모의 도박판이 벌건 대낮 도심에서 벌어진 것.

돈을 딴 사람은 거의 없는 불법 게임이었지만 지방에서 원정을 오는 주부까지 생기는 등 큰 인기몰이를 했다. 일당은 3개월 동안 무려 28억원을 챙겼다. 이는 도박과는 거리가 멀었던 중년 가정주부들까지도 쉽게 도박에 빠져드는 세태를 보여준 사건으로 꼽힌다.

주부도 도박 중독
누구나 빠져들 수 있어

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사행성게임 광풍은 오늘도 중독자들을 낳고 있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조사 의뢰한 ‘사행산업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인구의 도박중독 유병율은 9.5%(문제성 도박자 2.3%, 중위험도박자 7.2%)인 35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성인 10명 중 1명이 도박에 중독되었거나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