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70)

2013.03.25 10:41:49 호수 0호

동상이몽 하듯 말없이 걷다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공든 탑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협상이 답이다
궁지에 몰면 되레 죽 쒀서 개주는 수가 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내 눈 안에 들어왔다. 내가 앉아있는 봉고 트럭 앞으로 아기를 안은 20대 여인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많이 본 여인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차량들 사이로 숨어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자세히 쳐다보니 지난번 나 사장 집에서 본 그 부인이 틀림없었다. 뭔가 잡았구나 하는 예감이 확 들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감이 몰려왔다.

조심스레 미행하다

나 사장 부인은 주차장을 지나 빌라를 감싸고 있는 경계담장까지 걸어갔다가 멈춰 서서 고개를 좌우로 돌려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확인하고선 다시 몸을 돌려 나왔던 빌라로 되돌아 들어갔다.
나는 긴장감으로 가슴이 더욱 뛰었다. 분명 그녀는 주변에 나 같은 자가 잠복하고 있는지 혹은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 차 나왔다가 되돌아간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한다? 부인의 뒤를 따라 들어가 볼까? 아니면, 좀 더 기다렸다가 부인을 뒤따라 가볼까?’
선택의 고민을 하는 순간 이번에는 그 부인이 아기를 놔두고 혼자서 다시 나타났다. 그 뒤로 안경 쓴 남자 1명이 몇 발자국 떨어져 뒤따라 나오고 있었다. 부인은 조금 전과 같이 뭔가 불안한지 이곳저곳을 훑어보더니, 뒤따라오는 남자를 기다렸다가 둘이서 나란히 빌라 밖 대로변 쪽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두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뒤따라가며 잽싸게 윗도리 주머니 속을 뒤져 얼마 전 채무자 나 사장 집에서 구한 사진을 꺼내 대조해보았다. 그러나 왠지 부인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남자와 사진속의 남자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물하고 사진하고는 달라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진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10여m 앞에서 부인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걸어가고 있는 나 사장과의 거리를 5m 정도로 좁힌 후 차분하고 묵직한 목소리를 내어 불렀다.

“나철근 사장님!”
“….”
그러나 못 들었는지 아니면 모른 척 하는지 남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더욱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가 거리를 더욱 좁히며 이번에는 더 큰소리로 불렀다.
“나철근 사장님!”
그제야 두 사람의 걸음이 동시에 멈추었다. 부인이 먼저 몸을 돌려 나를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아!’하며 당황해 하고 있었다.


남편인 나 사장 역시 부인의 놀라는 모습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돌아봤다. 자신을 불러 세운 자가 낮선 남자임을 알고는 자신을 잡으러 온 형사인 줄 착각한 모양인지, 제자리에 선채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굳어버린 듯 했다.
내가 넘겨짚기 해 부르자 당황해 하는 모습으로 보아 그가 나 사장이 틀림없다는 판단이 섰다. 순간 나는 채무자의 왼편 옆으로 다가가며 다시 확인 차 물었다.
“나 사장님이시죠? 저는 HD 전자회사 법무팀 임 팀장입니다”하고 간단히 나를 소개한 후 만일의 도주를 염려하여 몸을 나 사장 옆구리 쪽으로 바짝 밀착 시키며 말했다.

“어딜 가서 차라도 마시며 얘기 좀 합시다.”
혹시 도망이라도 갈까 염려하여 채무자의 옆구리 허리띠를 살며시 잡았다. 아무래도 일단 골목길을 벗어나면 커피숍이나 호프집이라도 들어가 대화를 하여 담판을 지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 사장은 심경이 복잡한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못하고 내가 가자는 대로 순순히 응했다. 나는 채무자인 나 사장과 그의 부인과 함께 골목길을 나란히 걸어가면서 커피숍을 찾았다. 하지만 대로변까지 100m 가량 걸어 나가는 동안 골목길 양편으로 시장이 난전처럼 형성되어 있어 우리가 들어가서 대화할 만한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면서 간선도로 쪽으로 향했다.

우리들은 서로 동상이몽이나 하듯 말없이 걸어갔다. 나는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나 사장은 기소중지자이니까 신고하면 끝이었다. 그러나 몇 달 동안 잠복하여 지겨운 고생을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서 부도로 인한 손해를 대신 배상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채무자를 만나 어떻게든 부도금액을 회수하는데 목적이 있는 거다.
채무자 역시 자신이 붙들려갈 게 아니라면 나와 협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회사 역시 따지고 보면 큰소리 칠 입장만은 아니었다. 만약에 채무자인 나 사장이 협상에 응하지 않고 경찰에 자수해버린다면 처벌받고 말지 그 많은 돈을 갚겠다고 하겠는가? 그야말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이다.

안절부절 못하다

우리 회사보다 훨씬 많은 피해업체들이 달라붙어 아우성을 쳐대면 채무자로선 견뎌내지 못하고 모든 것을 포기해 단 한 푼도 상환하지 않고 이판사판으로 배 째라며 뒤로 나자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죽 써서 개준다는 말처럼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회사로 끌고 가든지, 아니면 협상을 통해 일부라도 부도 금액을 해결하라고 설득하는 수밖에.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들이 번개같이 스쳐지나가고 있는 사이, 우리는 침묵 속에서 대화할 장소를 찾아 골목길을 벗어나 큰 도로변을 걷고 있었다. 나는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우리들이 들어갈 만한 곳을 찾고 있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눈에 잘 띄던 커피숍이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초조해졌다.
그런 중에 다행히 주점 겸 전통차를 파는 조그마한 호프집이 보였다. 우리들은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히 그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5∼6평 남짓한 조그마한 가게 안은 좀 이른 시간인지 손님이 1명도 없이 조용했다. 나는 혹 나 사장이 도주 할 것을 염려해 구석자리를 찾아 그를 안쪽으로 밀어 넣다시피 하며 자리를 잡았다.

나 사장이 자리에 앉자 그의 부인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가까운 친인척에게 채무자가 붙잡혔으니 도와달라는 전화일지도 몰랐다.
나는 서로 긴장된 분위기를 대화분위기로 바꾸기 위해 채무자를 향해 차를 주문하라고 권했다. 채무자 나 사장 역시 목이 마른지 사이다를 주문하기에 나도 같은 걸로 주문하고 부인에게도 한 잔 갖다 주라고 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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