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일감 몰빵' 기업 내부거래 실태 (84)한라그룹-한라엔컴

2013.01.08 09:47:30 호수 0호

회장님, 이제 발 뻗고 주무십니까?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당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내부거래로 오너의 '금고'를 채워주던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하지만 자칫 지배구조가 뒤엉키거나 흔들릴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고민 고민하다 결국 짜낸 방법이 ‘합병’이다. 한라그룹도 그중 한곳이다.

갑자기 왜?

한라그룹은 최근 정몽원 회장이 개인 소유한 한라엔컴 주식 100%(510만주)를 한라건설에 무상으로 증여했다고 공시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746억원어치. 1989년 설립된 레미콘·건설자재·에너지재생 전문기업 한라엔컴은 1995년 한라레미콘에서 한라콘크리트로, 2009년 다시 한라엔컴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한라건설 측은 "정 회장은 한라건설에 대한 지배구조를 견고히 하는 한편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번 증여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 흐름과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한라엔컴과의 운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정 회장의 통큰 결정을 두고 '내부거래 희석용'이란 시각도 있다. 과세 등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자구책이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 내부거래 과세는 기업이 특수관계법인(계열사나 오너일가 소유 기업 등)에 몰아준 일감 규모가 매출의 30%를 넘으면 적용된다. 이는 조만간 매출 15%로 조정될 예정이다.


재계 순위 45위(공기업 제외)인 한라그룹은 총 23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정 회장의 개인회사였던 한라엔컴은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내부거래를 통해 매년 수백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일요시사>는 일감 몰아주기 연속기획 49회차에서 한라그룹(한라엔컴)의 내부거래 실태를 지적한 바 있다.(850호 참조)

한라엔컴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계열사 매출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다. 한라엔컴의 내부거래율은 ▲2004∼2006년 1% ▲2007년 3% ▲2008년 12% ▲2009년 13% ▲2010년 24% ▲2011년 26%로 나타났다.

그러나 거래 금액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라엔컴은 2011년 매출 2647억원 가운데 685억원을 계열사와의 거래로 올렸다. 일거리를 준 '식구'들은 특수관계사(671억원)와 종속기업(14억원)들이다. 특수관계사는 한라건설·만도 등이며, 종속기업은 대련한라레미콘·심양한라레미콘·천진대한한라레미콘·대한산업·대일미석·한라웰스텍 등이다.

오너 개인회사…매년 수백억씩 계열사에 의존
정 회장 주력사에 무상 증여 "과세 희석용?"

한라엔컴의 매출은 2004년 2328억원, 2005년 2230억원, 2006년 2363억원, 2007년 2882억원에서 2008년 3474억원, 2009년 3009억원, 2010년 3006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3800억원이 예상된다. 같은 기간 '집안 매출'도 28억원, 24억원, 20억원, 95억원에서 412억원, 379억원, 717억원으로 뛰었다. 한라엔컴의 내부거래 금액이 갑자기 불어난 것은 잇단 M&A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라엔컴은 2008년 풍산산업과 동원레미콘의 레미콘 사업을 양수한데 이어 2009년 한라웰스텍 건설물자사업부를, 2010년엔 대아레미콘을 흡수 합병했다.

한라그룹은 지난해 4월 '재벌 대기업' 명단에 새롭게 오르면서 내부거래 실태가 노출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교보생명보험, 태영, 한국타이어, 이랜드 등과 함께 한라그룹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한 것.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이 금지된다. 특히 계열사 간 거래를 정기적으로 공시하는 등 세부적인 내부거래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이를 어길시 법적으로 제재 받을 수 있다.

사실 내부거래 비중이 심상찮은 한라그룹 계열사는 또 있다. 바로 한라아이앤씨(I&C)다. 2005년 설립된 한라아이앤씨는 기업투자, 인수·합병(M&A), 구조조정, 경영상담, 부동산개발 등의 자문을 해주는 경영컨설팅 업체다. 보험 대리 및 중개업도 하고 있다.

이 회사 역시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정 회장은 33.3%(75만주)의 지분으로 한라아이앤씨 대주주로 있다.

문제는 한라아이앤씨의 자생력이다.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불가능한 처지다. 매출의 90%에 가까운 금액이 계열사에서 나왔다.

한라아이앤씨의 관계사 의존도가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 2008년까지만 해도 1%대를 밑돌다 이듬해부터 거래 금액과 그 비중이 늘기 시작했다. 한라아이앤씨가 계열사들과 거래한 매출 비중은 ▲2005년 0%(총매출 7억원-내부거래 0원) ▲2006년 0.5%(20억원-1000만원) ▲2007년 0.4%(48억원-2000만원) ▲2008년 1%(60억원-6000만원)로 낮았다.

과세 피하기?


이후 2009년 4%(82억원-3억원)에서 2010년 21%(48억원-10억원)로 올라가더니 2011년 86%(94억원-81억원)까지 치솟았다.

한라아이앤씨는 2011년 감사보고서를 통해 "한라건설과 그 종속회사들을 비롯해 한라엔컴, 와이드, 현대메디스, 에이엠티엔지니어링, 만도신소재 등 특수관계사들과 거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한라그룹은?

한라그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바로 아랫동생인 고 정인영 명예회장이 일궈냈다.

1962년 창립 이후 한때 2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순위 1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원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와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치고 1978년 한라해운에 입사한 이후 30년간 만도기계, 한라공조, 한라건설 등 그룹 주요 계열사에서 근무하다 1997년 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곧바로 IMF 암초에 걸려 주력 계열사인 한라건설을 제외하고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다. 부도 직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형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과 재산싸움을 벌이기도 한 정 회장은 절치부심 끝에 2008년 외국계 회사에 팔았던 만도를 되찾는 등 과거의 영광 재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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