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56)

2012.12.17 10:52:14 호수 0호

일이 꼬이는 건지, 악마의 장난인지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안 좋은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

“아이고, 수고 많았네.”
각서를 받아든 오 선배가 마치 잃어버렸던 돈을 되찾기라도 한 듯 입이 헤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오 선배를 향해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일러주었다.
“이 각서도 중요하지만 선배님 명의로 이전등기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아직 모든 게 끝난 게 아닙니다. 밤새 안녕이란 말처럼 박 사장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그래.”

약속을 받아내다

“그리고 저한테 한 가지 약속만은 해줘야 합니다. 이번 건이 마무리가 잘 되어 새로 투자한 돈과 빌려준 원금과 이자를 모두 건지고, 남는 게 있으면 박 사장에게 일부라도 돌려줘야 합니다.”
혹시라도 내가 박 사장과 약속한 게 틀어질까봐 미리 다짐을 해두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심정이 다른 게 또한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물론이지. 자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자네야 신용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내가 일이 잘 되면 박 사장에게 돈을 돌려줄 테니 믿어봐. 내가 설마하니 자네에게 거짓말 하겠나.”

다음 날, 기다리던 박 사장의 전화는 오전 내내 오지 않았다. 애가 타는 사람은 오 선배뿐 아니라 나 역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일이 틀어진 건 아닐까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오후 2시가 되었다. 조용하던 휴대폰 벨이 울리고 있었다. 박 사장이었다. 나는 반가우면서도 초조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여유롭게 전화를 받았다. 박 사장 음성에 힘이 들어가 있음을 느끼고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박 사장. 그래 식사했는가?”
“예, 이사님은 식사하셨어요? 제가 지금 막 법무사에 전화를 걸어 명의 이전에 필요한 구비서류를 알아봤습니다.”

“그래 잘하셨네. 그럼 어디서 만날까?”
“오 사장님께서는 뭐라고 하셨어요?”
“오 선배님도 모든 걸 좋게 해결하자고 하셨네. 오 선배는 내가 책임지고 설득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만나서 진행하자고.”
“잘 됐네요. 이사님, 그러면 오늘은 제가 인감 등 구비서류를 준비하고 내일 오전에 만나면 어떨까요?”
“아, 그런가? 그럼 그렇게 하지. 다만 내가 오후에는 회사 중요한 업무가 있어 시간을 낼 수가 없으니 오전 약속을 틀림없이 지켜주기 바라네.”


나는 여전히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또 하루를 보내야 했다. 다음 날이 되자마자 오 선배와 나는 박 사장이 일러준 서초동 소재 법무사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는 박 사장과 건축업자 추 사장이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법무사가 건네준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자신들이 가지고온 토지 매매계약 관련 서류들을 꺼내 사무장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발생해버렸다.

오 선배가 명의이전에 필요한 이전등기 비용 일체를 박 사장에게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일이 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어서 공사를 중단하고 수억원 이상 되는 부동산을 대물변제해주는 박 사장에게 이전등기 비용까지 지불하라고 하면, 어려운 처지의 박 사장이 어디 가서 비용을 구한단 말인가.
이전비용 문제로 일이 다시 꼬일까봐 걱정이 됐다. 나는 오 선배를 잠시 불러 둘이서 얘기를 나누었다.

“선배님! 까닥 잘못하면 ‘소탐대실’ 할 수가 있어요. 비용을 납부치 않으면 등기를 할 수가 없게 되고, 이게 소문이라도 나면 박 사장의 채권자들이 달려들 게 빤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먼저 먹는 자가 임자라고 누군가가 박 사장을 설득해서 현장을 낚아채 갈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 선배는 내 말을 무시하며 자신만만했다.
“임 이사, 너무 걱정 마. 이미 각서까지 썼고 법무사에 도장 찍어놨는데 박 사장이 변심이야 하겠어?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얼만데, 등기비용까지 물어 줄 수는 없지 않는가?”

낙동강 오리알 격

오 선배의 입장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안이 중요한지라 답답하였으나 그렇다고 억지로 비용을 지불하라고 권할 수도 없었다. 
우리 일행은 법무사에서 대지권에 대해 명의이전을 받기 위한 수순을 마친 후, 건축물 권리이전을 위해 관할 구청으로 가야 했다. 신축건물은 아직 준공이 나지 않은 미완성 건물로 미등기인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걸 질투한 악마의 장난인지 난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법무사를 나온 오 선배가 갑자기 우거지상이 되어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을 찾았다. 배탈이 난 모양이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일은 바쁜데 엉뚱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화장실에 다녀온 오 선배가 자신은 구청에 가지 않을 테니 박 사장 혼자 동의서를 작성해서 권리이전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오 선배에게 당사자가 함께 참석해서 이전 받는 게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 선배는 영 귀찮다는 표정으로, 굳이 함께 갈 이유가 뭐 있겠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무래도 일이 잘못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본인이 가지 않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때 건축업자 추 사장이 나서면서 자신이 박 사장과 동행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나 역시 사무실에 들어가 임원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시간이 촉박하여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박 사장에게 약속대로 잘 마무리해 달라고 다짐하고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되고 말았다. 내가 염려하고 있던 상황이 현실로 된 것이다. 구청으로 이전 동의서를 작성하러 간 박 사장이 동행해서 따라간 추 사장에게 신축 건물을 넘겨주고 만 것이다. 건축업자 추 사장은 만일을 대비해서 자신의 처 명의로 이전을 해놓고 말았다.

추 사장 입장에서야 공사현장을 오 선배에게 양도해주고 나면 자신이 공사에 투입한 자재대금 등의 책임 여지가 있었기에 자구책을 쓴 것이다. 여차하면 빚만 안게 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판이니, 박 사장을 꼬드겨서 공사한 건축물을 공사대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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