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대구의 한 도심 대로에서 전동 킥보드가 역주행하다 배달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2일, 자동차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엔 ‘킥보드 역주행 사고’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 A씨는 “지난 21일 새벽 3시께, 오토바이 배달 중 역주행하던 킥보드 두 대와 마주쳐 그중 한 대와 부딪혔다”며 블랙박스 영상을 공유했다.
영상엔 왕복 5차선 도로 반대편에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한 여성이 탄 킥보드가 접근해 A씨와 충돌하는 장면이 담겼다.
그는 “경찰에 신고하진 않았고, 미성년자로 보여 보호자와 협의하려 했지만 연락처를 받지 못했다”며 “합의할 경우 과실 비율이나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조언을 구했다.
사연을 접한 회원들은 “사고가 나면 경찰 신고가 우선이다” “과속이나 신호 위반도 아니고 사고 직전 멈추기까지 한 상황에서 충돌했으니 킥보드 측 과실 100%로 보인다” “오토바이에 흠집이 생겼다면 수리비도 받아야 마땅하다” “다친 데는 없으시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회원은 “전동 킥보드도 차량으로 분류된다. 역주행으로 오토바이와 부딪혔다면 대물 사고로 처리할 수 있다”면서 “신고해서 정신 차리게 해주는 게 저들을 돕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는 “왜 신고를 안 하느냐” “당시 음주였거나 무면허 등 걸릴 게 있어 신고를 안 하신 건 아니냐” “과실 비율 등은 보험사와 얘기하면 되는데 보험이 없어 여기에 묻는 것 같다” “무보험, 번호판 미부착 등으로 신고 못하는 게 아닐까” 등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다른 회원은 “일반적으로 무번호판, 음주 등 문제가 있었다면 글로 묻지도 않고, 그냥 욕 한번 하고 넘어갔을 것”이라며 “잘못은 킥보드 운전자가 했는데 왜 오토바이 운전자를 지적하는지 모르겠다”고 A씨를 옹호했다.
논란이 일자 A씨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튿날, 기존 글을 삭제한 뒤 새 글을 통해 “제가 무면허, 음주 문제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한 것은 전혀 아니”라며 “합의를 보려 했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보호자 연락 여부에 대해선 “상대방이 부모님의 이혼소송, 바쁜 일정 등을 이유로 보호자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며 “경찰 신고를 언급하자 오히려 제가 갑자기 멈춰서 사고가 난 것 아니냐며 책임을 돌렸다”고 주장했다.
A씨는 “미성년자 상대로 합의를 보려 한 점은 부끄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오토바이 카울이 빠지고 저 역시 넘어지며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 신고에 대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반응해 괘씸한 마음에 신고했다”고 부연했다.
앞서 지난 2018년, 국내 최초의 공유 킥보드 서비스가 등장한 이후 개인형 이동장치(PM, Personal Mobility)의 보급이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이와 함께 안전 문제에 대한 논란도 커졌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PM은 최고속도 시속 25km 미만, 중량 30kg 미만의 전동 이동수단으로, 전동 킥보드, 세그웨이(전동이륜평행차) 등이 포함된다. 보도 통행은 전면 금지돼있으며, 자전거도로나 차도 우측 가장자리로만 주행할 수 있다.
하지만 자전거도로가 끊겨있는 구간이 많아 이용자들이 차도로 갑자기 뛰어드는 등 돌발적으로 움직이는 사례가 잦다.
이런 모습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차량 앞으로 뛰어드는 고라니에 빗댄 ‘킥라니(전동 킥보드와 고라니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실제로 PM 관련 사고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사고 건수는 지난 2020년 897건에서 2023년 2389건으로 증가했으며, 지난해엔 2232건으로 소폭 줄었다. 연령별로는 가해 운전자의 약 44.6%가 20세 이하인 것으로 집계됐다.
일각에선 PM 이용이 확대됨에 따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PM은 차량 등록과 번호판 부착 의무가 없어 사고 후 도주, 이른바 ‘뺑소니’나 ‘물피 도주’가 발생해도 추적이 쉽지 않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PM이 자동차로 분류되는 만큼, 사고 후 도주하는 행위는 중대 범죄”라며 “골목 통행이 용이하고 번호판이 부재하다는 등의 전동 킥보드 특성을 악용한 도주 행위에 대해선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공유 킥보드의 경우 면허 확인 절차가 허술해 미성년자도 사실상 무면허로 대여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운전자의 무면허 운전 행위만 금지할 뿐, 대여 과정에서의 확인 의무는 규정하지 않아 제도적 공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 등 10인은 PM 임대 시 운전 자격 확인 시스템 구축 의무화와 PM 전용 면허 신설 등을 담은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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