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이 조리사 쓰는 이유

2025.09.23 16:06:18 호수 1550호

‘밥맛? 몰라!’ 자격증만 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요양병원에서 적용하는 ‘조리사 가산 수가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자의 식사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현장에서는 조리사가 아닌 조리원과 영양사가 업무를 떠안고, 이 때문에 환자 식사와 위생 관리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리사 가산 수가 제도’는 환자의 식사 질과 위생 수준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집단 급식소 운영이 법적으로 엄격히 관리되는 만큼, 자격을 갖춘 조리사를 일정 규모 이상 채용한 의료기관에 추가 수가를 지급해 인력 확보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돈 때문에?

현행 제도는 환자 식대에 붙는 기본 수가에 ‘가산’을 얹어주는 구조다. 일정 인원 이상의 조리사를 채용하면 병원은 그만큼의 재정적 인센티브를 얻게 된다. 병원들은 조리사 자격증 소지자를 확보해야만 추가 수가를 받을 수 있다.

제도의 취지와 달리 형식적 채용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문제는 조리사 채용이 실제 조리 능력이나 위생 관리 역량과 무관하게, ‘자격증 보유 여부’만으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영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리사 가산 수가 제도는 실제 업무 환경과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 병원은 수가 가산 확보를 위해 자격증을 가진 조리사를 반드시 채용해야 하지만, 채용된 인력이 현장에서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잦다는 지적이다.


5년차 영양사 A씨는 “조리사라고 해서 다 조리를 하는 게 아니다”라며 “일부는 설거지는 하지 않겠다, 쌀이 무거워서 밥은 못한다, 배식은 조리원이 맡아야 한다는 식으로 업무를 피한다”고 토로했다. 또 “돈가스는 튀기지만 써는 건 조리원이 해야 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미루기도 한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실제 조리와 위생 관리의 상당 부분은 조리원과 영양사에게 전가된다. A씨는 “오히려 조리원 인력 중 더 성실하고 위생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다”며 “자격증을 가진 조리사가 무책임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영양사 역시 본래의 전문 업무인 영양 관리, 식단 관리, 위생 점검에 집중하기 어렵게 됐다. 인력 충원과 업무 조율에 매달리느라 하루 대부분을 소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산 수가만 보고 우선 채용
환자들 식사 품질 저하 우려

요양병원 조리 인력이 처해진 상황은 전형적인 저임금·고강도 노동 환경에 속한다. 주말·공휴일에도 근무가 이어지고, 조리실 환경도 열악하다. 이 때문에 자격증을 보유한 인력이라도 병원 근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조리사 자격증을 딴 뒤 현장에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병원은 하루 세 끼, 수십 명에서 수백 명 환자 식사 분량을 동시에 준비하는 대량 조리를 해야 한다. 환자가 먹을 음식이니 위생 절차도 까다롭고, 반복 노동강도가 높아 장기간 근무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자격증 취득은 쉬운 편이지만, 실무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다.

조리원 인력난도 마찬가지다. 조리원은 법적으로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지만, 음식 손질·조리 보조·배식·설거지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이들의 임금 수준은 낮고 업무 강도는 높아 지원자가 적다. 특히 지방의 중소 요양병원일수록 조리원 충원이 어려워, 기존 인력의 피로도가 더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A씨는 “(채용돼) 들어온 조리사조차도 일을 하지 않다 보니 사람이 항상 부족하다”며 “영양사가 식단 관리보다 사람 채우는 데 더 신경 쓰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현장은 점점 지치고 있다”고 호소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환자의 건강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점이다. 결국 환자에게 제공되는 식사의 질이 떨어지고, 위생 관리도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무능력·무책임자 많아”
업무는 조리원·영양사 몫

A씨는 “수가를 받으려는 병원은 어쩔 수 없이 자격증 보유자를 채용하지만, 환자 식사 품질은 나아지지 않는다”며 “실제로 영양사가 관리하지 않으면 위생은 금세 엉망이 된다”고 토로했다.

조리사 가산 수가 제도는 환자 식사의 질을 높이겠다는 명분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제도의 효과가 체감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는 자격증 취득 과정과 실제 병원 조리실 업무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조리사 자격증은 ‘국가기술자격법’에 근거한 국가 자격으로,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하면 취득할 수 있다. 자격증은 비교적 단기간의 학원 수강과 시험 준비로도 취득이 가능하다. 조리 기능 평가와 이론 시험을 거쳐 합격하면 곧바로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으며, 별도의 현장 실무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량 조리와 위생 관리가 필수인 병원 급식 업무와는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 현장 적응을 못하거나 업무를 기피하는 점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조리사 자격증 소지자라고 해도 병원 특수식, 다수 환자 대상의 대량 급식, 철저한 위생 관리 절차를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결국 병원은 가산 수가를 위해 채용을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들이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의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제도의 전제가 “자격증을 갖추면 곧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확보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격증 보유 여부가 현장 실력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유명무실

그 결과 병원은 수가 가산을 위한 형식적 채용을 반복하고, 이에 따라 조리사·조리원 간 업무 불균형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환자 식사의 질과 위생 관리라는 제도의 본래 목표는 달성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형식적 조리사 채용 위법


과거 대법원은 요양기관이 실제로 영양사와 조리사를 관리·감독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근로계약만 맺고 식대 가산을 청구한 사례에 대해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가산금 제도의 본래 취지는 전문 인력을 상근으로 고용해 환자 식사의 질과 위생을 높이는 데 있다”며, 단순히 계약서상 명목만으로는 가산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없다고 인정했다.

당시 사건에서는 한 병원이 외부 위탁업체와 계약을 맺고 급식 업무를 사실상 맡긴 뒤, 해당 인력을 자사 소속으로 기재해 식대 가산을 신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법원은 이를 “환자 식사를 책임지는 인력을 실제로 고용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요건을 충족한 것처럼 꾸민 행위”라고 판단했고, 해당 병원의 가산 청구는 기망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재판부는 영양사·조리사의 채용 과정, 식단 작성과 식자재 검수, 위생 관리 등에서 병원이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했는지가 판단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업무를 타 기관이나 외부 위탁업체가 맡고 병원이 형식적으로만 인력을 둔 경우라면, 가산금을 청구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와 배치된다는 것이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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