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아동 납치 시도, 왜?

2025.09.16 09:59:02 호수 1549호

학교 보내기도 무서운 세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애를 밖에 내보내기가 무섭다.” 요즘 많은 부모가 자녀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 등·하교 시간이나 학원 이동 시간 등 아이가 혼자 있을 때를 노리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 범죄는 그 해악이 엄청나기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하남에 사는 A씨는 아무리 바빠도 딸의 유치원 하원 시간을 빠뜨리지 않는다. 유치원 버스가 아파트 안쪽까지 들어와도 꼭 기다렸다가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간다. 집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남짓이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다.

대통령도…

학원가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근은 저녁 시간만 되면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의 차로 혼잡하다. 주말에는 종일 차로 꽉 막힌 상태가 된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가는 부모들 덕분에 주변 상점가도 호황일 정도라고 한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아이를 빠르게 이동시키는 기동성도 중요하지만 안전 문제도 있다. 한 학부모는 “혼자 다니는 애들을 보면 부모가 아이를 잘 안 챙기나?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 애들을 노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그동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괴, 납치 사건은 꾸준히 발생했다. 실제 1980~1990년대 아동 유괴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범인이 납치한 아이의 집에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는 음성이 방송을 통해 나오기도 했으며 부모가 눈물로 아이를 돌려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사건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아동 납치 시도는 금품보다는 성범죄를 목적으로 한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납치를 당할 뻔한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불과 사흘 사이에 서울, 제주, 경기 광명 등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하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에서 60대 남성이 학원으로 가던 여자 초등학생에게 “애기야 이리와”라고 말하며 손을 낚아채려 한 일이 일어났다.

부모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미성년자 약취 미수 혐의로 해당 남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혐의를 부인 중이라고 한다.

지난 9일에는 제주에서 30대 남성이 초등학생을 유인해 끌고 가려다 경찰에 붙잡히는 일이 일어났다. 해당 남성은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여자 초등학생에게 구경거리를 보여준다며 “알바 할래?” 등의 말로 유인해 차에 태우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이가 거부하며 차량 번호를 보려 하자 곧바로 도주했다. 이 남성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3시간 만에 긴급 체포됐다. 추행 등 전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8일에도 경기 광명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하려고 한 고등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광명경찰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미수) 혐의로 B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B군은 지난 11일 구속됐다.

B군은 8일 오후 4시20분쯤 광명시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C양을 납치하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C양을 따라가 엘리베이터 같은 층에서 내린 뒤 목을 졸랐다고 한다. B군은 수초간 강압적인 행위를 이어가다 C양이 큰 소리로 울며 저항하자 건물 밖으로 도망쳤다.

C양이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부모가 엘리베이터 내 CCTV를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자택에 있던 B군을 긴급 체포했다. B군은 성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B군과 C양은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는 아니라고 한다.

금품보다는 성범죄 목적
전국 각지에서 유괴 미수


지난 4일에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아동을 유괴하려 한 20대 남성 3명이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오후 3시30분경에 초등학교 주변 거리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차량으로 접근해 세 차례에 걸쳐 “귀엽다. 집에 데려다 줄게”라고 말을 걸며 유인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초등학생들이 귀엽게 생겨 장난삼아 던진 말인데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재밌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서대문구 유괴 미수 사건에서는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이 범행을 반복하는 동안 신고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문제의 초등학교 부근에서 약취 유인 시도가 있었다는 신고를 접수한 뒤 수사에 착수했다. 해당 초등학교도 지난 1일 가정통신문을 통해 “주말 사이 인근 초등학교 후문과 포방터 시장 공영주차장 놀이터 부근에서 흰색 차량에 탑승한 낯선 남성 두 명이 아이들에게 접근해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한 사례가 보고됐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경찰은 범죄 관련성을 확인하지 못했다. 최초 신고 뒤 CCTV를 확인하는 등 수사를 진행하고도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추가 신고가 접수됐고 범행 차량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범행을 확인했다.

경찰은 “당시 피해 아동 모친이 알려준 차량과 실제 범행 차량이 색상이나 차종이 달라서 사실관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이들을 긴급 체포한 이후 3명 가운데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수사에 부담을 안게 됐다. 늑장 수사에 대한 비판에 이어 구속영장 기각이라는 난관을 만나게 된 것이다.

김형석 서울서부지법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들에 대한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김 부장판사는 초등학생을 유괴하려 했다는 혐의 사실과 이들의 고의성 등에 다툼에 여지가 있다고 봤다.

불구속 상태로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의 주거가 일정하고 대부분 증거가 수집된 점에서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잇따른 아동 납치 미수 사건에 국민 불안감이 고조되자 경찰청은 가용 경찰력을 총동원해 예방 순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먼저 전국 초등학교 6183곳 등·하교 시간대에 맞춰 어린이들의 통행이 잦은 학교 인근, 주요 통학로 주변에 경찰관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전국 지구대·파출소 소속 지역 경찰, 기동순찰대 등은 순찰과 함께 장시간 정차하는 차량, 어린이 주변을 배회하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는 등 수상한 사람을 발견할 경우 적극 검문 검색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 미성년자 범죄 관련 신고는 ‘코드1’ 이상으로 접수할 방침이다.

경찰 112 신고 대응은 코드0~코드4까지 크게 5개로 분류되는데 코드0과 코드1은 ‘최단 시간 내 출동’을 목표로 하는 긴급 상황을 뜻한다.

예의 주시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초등학생 상대 납치·유괴 사건과 관련해 “국민들께서 큰 우려를 갖고 계신 만큼 우려를 불식할 수 있도록 신속한 수사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해 달라”며 “국민 안전에 대해서는 과잉 대응이 안 하는 것보다 백배 낫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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