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그라운드 응급의료 실태

2023.06.28 08:45:39 호수 1433호

피 흘리고 쓰러졌는데 20분 방치

[JSA뉴스] 경기 도중 큰 부상을 당한 고교 야구선수가 의료진이 없어 20분 동안 경기장에 방치됐다. 의료진이 없어 적절한 응급조치도 받지 못한 부상자 중 한 명은 앞으로 선수 활동이 불분명할 정도로 크게 다쳤다.



지난 12일 KBS에 따르면 전날 성남시 탄천 야구장서 열린 진영고와 부천고의 주말리그 경기서 6회 말 진영고 수비 도중 뜬공을 잡으려던 진영고 좌익수와 유격수가 서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두 선수가 바닥에 쓰러졌다.

충돌 사고

부상자 중 한 명인 진영고 A군은 안구 골과 턱 등 얼굴 부위 일곱 부위가 골절됐고, 치아 5개가 부러지는 등 크게 다쳤다. 사고 직후 대기 중이던 구급차가 경기장으로 들어왔지만, 구급차엔 의료진 없이 운전기사밖에 없어 응급 처치는 물론 병원 이송도 불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당시 경기 영상이 찍힌 영상 등을 보면 A군은 경기장 안에 쓰러진 뒤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한 채 경기장 내에 20분가량 쓰러져 있었다. 주변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현장에선 구급차 운전기사가 진영고 체육교사인 야구부장 B씨 도움을 받아 A군 얼굴 피를 닦는 등 초동 조치만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A군은 119 신고를 받고 의료 인력과 함께 구급차가 도착해서야 병원으로 이송됐다. 


부러진 치아마저도 부상을 당한 선수의 부친이 그라운드를 돌아다니며 찾아야 했고, 치아 3개는 결국 찾지 못했다. A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해오다 이날 고등학생으로서 첫 선발 경기를 출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 야구 경기 도중 선수 큰 부상
현장에 의료진 없이 구급차 기사만

B씨는 KBS와의 인터뷰서 “처음에 다친 학생이 그라운드에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며 “놀라서 달려가 보니 약간의 경련을 하고 있었다. 의식이 없지는 않았지만, 입안에 피가 나고 있어 호흡하는 데 힘들어했고, 부러진 치아가 입안에 남아 있어 절대 삼키지 말라고 주의시켰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SNS 등에는 당시 경기를 직관하던 관중들의 목격담들도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당시 사고 직후)피를 흘리며 경련까지 하는 선수를 두고 5분여를 우왕좌왕했다”면서 “사고가 났을 때 심판과 코치들이 의료진을 찾았지만 구급차 외에 의료진은 없었다”고 전했다.

A군의 가족이라고 밝힌 또 다른 누리꾼도 “경기장 옆면에 있던 구급차에는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119에 신고를 하고 약 20분간을 쓰러져 경련하며 피를 흘렸다”고 토로했다.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대회인 만큼 학생 선수들의 진학과 프로 진출 등이 달려 있는 중요한 대회다. 그러나 이날 상황은 기본 안전관리 매뉴얼도 지키지 않은 결과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응급조치 못 하고 발만 동동
119 출동 후에야 병원 이송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에는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기장에는 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 전문인 1명이 배치돼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도 주말리그 운영을 위해 구급차와 간호사 비용으로 하루 40만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지난 11일 경기엔 의료 관련 전문인이 배치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임수혁 사건 발생 이후 23년 후인 현재도 여전히 한국 야구의 응급 대처가 미흡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 임수혁은 2000년 4월18일 잠실구장서 열린 LG 트윈스와 경기서 2루에 주자로 나가 있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당시 이 상황을 인지하거나 대처할 인력이 없어 임수혁은 수십분 동안 그라운드에 방치됐다. 더그아웃에 옮겨졌지만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못했다.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져 맥박과 호흡은 살려냈으나 뇌에 산소 공급이 끊긴 시간이 길어 결국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임수혁 잊었나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10년 가까이 투병해 온 임수혁은 2010년 4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후 프로야구를 비롯해 각 프로 스포츠 구단은 자체적으로 응급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임수혁의 부친은 과거 “제2, 제3의 수혁이가 나오지 않도록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지만, 응급 처치 실태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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