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치싸움으로 번진 ‘제2세종문화회관’ 이전의 진실

2023.03.06 10:26:16 호수 1417호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애꿎은 정치싸움에 피해를 보는 건 항상 일반 시민들이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영등포구민은 “슬리퍼 신고 문화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깨졌다. 계속 지연되더니 결국 최종 승인이 안 났나 보다”며 “이러니 정치를 믿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정치인들의 어떤 헛발질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을까?



세종문화회관은 나라 세금으로 고퀄리티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종의 ‘문화 향유소’다. 1978년 종로에 지어진 세종문화회관은 3800석 이상의 대극장과 532석의 소극장 등을 갖춘 당시로선 최대 규모의 문화시설이었다. 서울시무용단, 국악관현악단, 오페라단, 합창단 등 예술단체가 골고루 세종문화회관에 속해 있으며, 지금껏 이들이 이곳에서 제공한 문화 콘텐츠만 해도 수백, 수천가지가 넘는다.

문래동에…

그러나 이 ‘문화 향유권’을 서울 일부 지역에서만 누린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세종문화회관이 서울 중심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접근이 어려운 지역, 특히 서울 인구의 30%가 거주하는 서울 서남권 지역 시민들이 이곳을 이용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사안에 관심이 많은 한 영등포구민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종로가 접근성이 좋다곤 하지만, 우리 지역에서 보기엔 접근성이 최하 수준”이라며 “평일 퇴근 후 공연을 보러 가려면 (교통체증 때문에)이동 시간을 1시간에서 1시간30분으로 잡아야 하고, 주말 이동도 차량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만일 이것(제2세종문화회관)이 서남권 지역에 제대로 지어졌다면 맘 편히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입고 공연을 관람하러 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와 서남권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시민들의 이 같은 불만을 수용해 2010년 초부터 제2의 세종문화회관을 구상해왔고, 영등포구 문래동 지역에 문화회관 건립 계획을 세웠다. 서울시와 영등포구청 관계자들은 지난 10년간 해당 사업을 진행시켰고, 지난해 초 최종 승인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건립 계획이 차질을 빚은 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다. 

지난 4년간 해당 사업을 진행시켜왔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이 재선에 실패하고, 국민의힘 최호권 구청장이 당선되면서다. 구청장이 바뀌면서 관련 실무진도 대거 교체됐고, 그 과정에서 문화회관 건립에 대한 새로운 문제점이 지적됐다.

구민 “슬리퍼 신고 관람 하나 했는데”
구유지 사용…무상이냐 유상이냐 쟁점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은 영등포구가 토지 사용을 무상으로 보장하고, 서울시가 그 위에 건물을 짓는 일종의 ‘협업’ 형태로 진행되고 있던 사업이었다.

협업 내용에 따르면 영등포구가 구유지(구청에서 소유한 토지) 사용권을 서울시에 제공하고, 서울시는 건물 건립에 대한 비용을 일제히 부담한 뒤 운영권과 소유권을 넘겨받을 예정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영등포구청은 지역구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한다는 이익이 생기고, 서울시는 문화회관에서 발생하는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이익이 생긴다.

서로 윈-윈하는 합의 내용이었으나, 구청장이 바뀐 영등포구청 측은 “해당 합의가 구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며 느닷없이 서울시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구유지 사용권’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해당 사업을 진행시켜온 이전 구청 직원들은 ‘구유지 사용권’을 영구적인 것으로 봤던 반면, 현재 구청 직원들은 5년마다 사용권을 갱신해야 하는 ‘제한된 사용권’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합의문에는 구유지 무상 사용을 5년마다 갱신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토지 사용을 무상으로 할지, 유상으로 할지는 영등포구 공유재산 심의회 소속 위원들이 표결로 결정하고, 만일 이 심의회에서 토지 사용을 유상으로 결정한다면 영등포구에서 서울시가 지불한 건물 건립 비용을 구청 측에서 모두 물어줘야 한다.

지난해 2월 합의문엔 ‘무상 사용’ 가닥
전 구청장 늑장? “MOU? 중요치 않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심의회 위원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형태도 아닐뿐더러, 지난 회의 때 ‘이걸 왜 무상으로 해주냐’는 의견을 낸 위원도 있었다”며 “처음 이 문화회관이 구상될 때는 구민 편의시설이라든지 구민 이용시설이 일부 들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구민 이용시설 등이 모두 빠졌다”며 합의 무산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사안 진행을 직접 관장했던 민주당 관계자는 해당 사실이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라고 성토했다. 이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는데, 결국엔 정치적 문제”며 “문화회관을 건립함으로써 생길 민주당의 정치적 이익을 구청과 시가 ‘합작’해 막아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위원이 이거(제공된 구유지)를 유상으로 돌리자고 주장할 수 있겠나. 이 사안을 아는 사람들은 이것이 다 관례적으로 통용되고 있었다는 데 합의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문제삼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는 매우 치사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구유지 무상 사용 논쟁은 그동안 꾸준히 있어왔으며, 오랜 논의 끝에 이미 합의에 넘어간 단계였다. 즉, 해결된 문제를 구청장이 바뀌니 이제 와서 걸고 넘어진다는 게 민주당 측의 설명이었다.

이는 협약서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협약서 제5조에는 ‘대상 토지 무상 사용 허가 기간은 5년으로 하고, 기간 종료 1개월 이전에 서울시는 영등포구에 사용기간 연장 신청을 해야 하며 영등포구는 제7조 제1항 각호의 해지 사유가 없는 한 5년간 무상으로 사용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또 다른 민주당 측 관계자는 최종 무산된 이유에 대해 채 전 구청장의 늑장 대응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마 갖고 계신 협약서가 최종본일 것”이라며 “날짜는 지난해 2월로 당시 재임 중이었던 채현일 구청장의 이름이 마지막에 들어가 있다. 그때 채 전 구청장이 그것만 사인했어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라 지적했다.

정치적 이유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채 전 구청장은 “당시 협약서를 전혀 보고받지 못했다”며 “협약서 작성이 사안의 본질이 아니다. 해당 협약서는 필수 절차가 아닌 심사 협정의 성격이 강하다”고 해명했다. 이어 “강제성 없는 MOU 협정으로 이 협약서와는 상관없이 해당 사업은 마땅히 진행됐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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