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가스라이팅’의 나라

  • 이윤호 교수
2023.01.27 09:00:00 호수 1412호

어느 부부가 회사 동료를 감금한 상태에서 낮에는 아이를 돌보게 하고, 밤에는 성매매를 시켜 수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는 기사가 사회면을 장식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의 전형적 사례다. 



가스라이팅은 학대자가 피학대자를 통제하면서 피학대자의 판단력과 현실감을 잃게 하고, 이를 통해 학대자가 피학대자를 착취하는 행위를 뜻한다. Webster사전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자신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의문시하도록 만드는 심리적 조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가스라이팅은 최근 들어 아주 귀에 익은 외래어로 인식되고 있으며, 가스라이팅을 주제로 하는 소설·영화·드라마 등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대중적 관심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스라이팅에 대한 인식을 높여 건강하지 못하고 위협적인 관계를 피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학술적으로도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가스라이팅이란 단어가 익숙하다는 건 그만큼 빈번한 사회현상으로 비춰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Webster사전은 가스라이팅을 ‘2022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된 ‘가스라이팅’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가스등을 밝힘’ 정도로 풀이된다. 그런데 아름다운 단어일 것 같은 이 가스등이 왜 문제가 될까. 

가스라이팅은 학대적인 관계에서 주로 일어나고, 다른 형태의 물리적 학대와 감정적 학대와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연인 관계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고, 가족·친구·직장 관계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미국 언론이나 SNS 등에서는 ‘가스등이 켜진 나라(Gaslit Nation)’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사용될 정도다.


얼마 전까지 가스라이팅은 개인 간 문제로 인식돼왔지만 최근에는 집단에서 비난의 화살을 상대에게 돌리기 위한 가스라이팅이 발생하는 등 예전과는 다른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직장에서는 갑질이나 성희롱 등 내부 비리를 신고하는 직원이 오히려 과잉반응하거나 오해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내부고발자 가스라이팅(Whistle-blower gaslighting)’은 사회적 문제로 거론될 정도다. 

가스라이팅은 취약계층이나 약자를 희생양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게 다가온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아동이 성인보다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될 개연성이 더 높다. 이런 면에서 가스라이팅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권력 분배에 있어서 불평등성이 근본적 문제라는 극단적 주장마저 제기된다.

본인이 잘못된 사고를 지녔다고 일관되게 듣게 된다면 아마도 정신건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경우 현실과 믿음을 의심하게 된 가스라이팅 피학대자는 소외감과 무력함을 느끼게 된다.

가스라이팅 학대 증후군은 낮은 자존감, 방향감각의 상실이나 혼미함, 자기 도태, 사회적 상황에서의 어려움 등을 포함한다. 실제로 가스라이팅을 경험한 사람은 불안, 우울, 자살 충동 등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가스라이팅 이전부터 불안정한 심리상태로 인해 고통을 경험했던 사람일수록 가스라이팅에 더욱 취약하며, 궁극적으로 그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더 악화시킬 위험이 존재한다.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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