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단상> 극중 세력이 나오지 않기를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2022.08.25 12:50:03 호수 0호

세계 각 나라의 정당사를 보면,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이 지역을 기반으로 양분된 양당제하에서는 순수한 중도파 정당인 제3세력이 나오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제3세력은 거대 양당에서 소외된 세력이 힘을 합쳐 중도세력을 만들기 마련이다.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중도개혁의 가치를 내세우며 2016년 2월 출범한 옛 국민의당도 순수한 중도파 정당이기 보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서 창당한 제3세력이다. 또 중도실용주의를 주장하며 2018년 2월 출범한 바른미래당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탈당해 만든 바른정당과 옛 국민의당이 통합해서 만든 제3세력이다.

그러나 중도파 정당인 옛 국민의당은 2017 대선에서 패하면서부터 퇴색하기 시작하다 바른정당과 통합하면서 2년 만에 해산됐고, 바른미래당도 2020 총선도 치르기 전에 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국내 좌파 정당은 전라도를 기반으로, 우파 정당은 경상도를 기반으로 정당의 맥을 이어 오면서 우리나라 정당의 양대 산맥을 형성해왔다. 그렇다면 경기도나 충청도나 강원도가 기반이 된 중도파 정당도 생길만한데, 왜 중도파 정당은 제3세력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전정신이 강한 인물이 없어서는 아닌 것 같고, 혹시 평상시에는 국민으로부터 욕을 먹거나 정당에 방해가 되는 듯 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세를 규합하는 구심력을 발휘해 선거를 승리로 견인하는 극좌나 극우 같은 세력, 즉 극중이 중도파에는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2017년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당 전당대회에 나설 때,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당에 대항해 가치 중심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하면서, 바로 “그 가치가 극중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극중주의는 좌파나 우파의 이념에 경도(기울어 넘어짐)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에 치열하게 매진하는 것, 즉 중도에 대한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 후보가 외쳤던 극중은 고사하고 그 이후 지지부진했던 중도도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좌파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을, 우파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을 뜻한다. 좌파(좌익)와 우파(우익)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 때부터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볼 때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자코뱅당이 왼쪽에 앉고,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지롱드당이 오른쪽에 앉은 것이 그 기원이다. 그 후 영국에서도 자유당이 왼쪽에 앉고, 보수당이 오른쪽에 앉음으로 ‘진보=왼쪽’, ‘보수=오른쪽’이라는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리고 자코뱅당은 “혁명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에서 반란을 상징하는 붉은기를 사용하고, 지롱드당은 이와 반대로 청색기를 사용하면서 붉은색은 좌파를, 파란색은 우파를 상징하는 색이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좌파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파란색을, 우파 정당인 국민의힘은 붉은 색을 시용하고 있어, 외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보수 우파로, 국민의힘을 진보 좌파로 이해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정당을 좌파와 우파, 그리고 중도파 정도로 구분하고 있는데, 좌파 정당 내의 극좌(極左, far-left)와 우파 정당 내의 극우(極右, far-right)가 존재하면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선거 때마다 세를 규합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극좌와 극우는 좌파나 우파에 비해 상대 진영을 무조건 비판하는 경향이 있고, 사상도 지나치게 편향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극좌와 극우는 사상의 극단성이 심하며, 폭력적 행동이 동반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극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같은 혁명가가 있으며, 극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 극좌든 극우든 ‘극(極)’이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폭력과 전체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 정가에 극좌나 극우가 아닌 극중(極中)을 내세우며 중도우파나 중도좌파를 만들려는 세력이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이 다시 등장하려는 중도파 정당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원래 극중은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가든스가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극중주의(極中主義) 시대가 도래했다고 1994년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극중주의는 좌파와 우파를 뛰어넘어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합리적인 정치이념을 표방하는 대화정치와 생활정치가 그 핵심이다.


앤서니 가든스는 좌파와 우파를 뛰어 넘는 가치를 중도라 하지 않고 극중으로 표현한 점은 아마도 극좌나 극우를 무시하고 중도를 최고의 가치로 올려놓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앤서니 가든스의 영향을 받아 1997년 영국 총선거에서 승리한 블레어 전 총리와, 사회당 출신이지만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프랑스의 마크롱 현 대통령이 극중주의를 추구하는 대표적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정가에서 비밀리에 회자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 일부와 민주당 의원 일부가 통합해 만들 것으로 예상되는 중도파 정당의 극중(極中)은 28년 전 앤서니 가든스가 언급한 합리적인 극중이나 5년 전 안 의원이 언급한 극도의 신념이 깃든 극중과는 다른 것 같아 걱정이다.

바로 최근 비밀리에 회자되고 있는 극중은 좌파나 우파의 중간 영역인 중도를 지키고 중도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극좌나 극우처럼 강력한 사상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힘(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수준)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론, 우리나라 최근 정치 환경이 대선과 지선에서 패한 좌파 정당(민주당)이 무너지고 우파 정당(국민의힘) 세력이 강해지면서 민주당은 정치 동력을 잃고, 국민의힘은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기에, 양당에서 소외당한 세력들을 규합해 극중을 내세우며 중도파 정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좌파-중도파-우파’나 ‘극좌-극중-극우’의 도식관계를 보더라도, 중도파는 분명 존재감이 있지만, 극중은 우리 사회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될 나쁜 중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우리 정치가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접두사 극(極)이 '정도가 심한'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명사 극(極) 역시 ‘어떤 정도가 더할 수 없을 만큼 막다른 지경’의 뜻을 가지고 있어, 양극과 음극, 남극과 북극이라는 말은 있어도 중극(中極)이라는 말은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극중(極中)은 존재할 수 없는 정치 용어고, 말도 안 되는 정치 용어가 확실하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극좌(極左)나 극우(極右)처럼 선거에는 정당에 도움이 되지만, 평상시에는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극중(極中) 세력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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