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강호순이 끄집어낸 ‘사형제도’

2009.02.10 10:38:58 호수 0호

‘강호순’이란 이름 석자가 정초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매스컴이란 매스컴은 모두 앞다퉈 연쇄살인범 강호순으로 도배를 하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도 강호순은 여지없이 단골메뉴다.



심지어 인터넷상에 강호순을 옹호하는 팬카페가 개설돼 물의를 빚는가 하면, 그를 검거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CCTV 관련업체 주가가 폭등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강호순은 그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경기 서남권 부녀자 연쇄살인으로 일약 대한민국의 최대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무려 여섯명의 애꿎은 목숨을 앗아간 용산 철거민 참사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 운운하며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도발도 강호순 앞에선 한낱 ‘언저리 뉴스’에 불과하다. ‘직접살인’과 ‘간접살인’이란 차이일 뿐 용산참사도 엄연히 공권력에 의한 인명 살상 사건이고, 북한의 도발 협박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중대사인데도 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당장의 여론에만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냄비근성’의 단적인 예다. 그랬기에 과거 정권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이 형성될 때마다 곳간에 곶감 숨기듯 아껴뒀던 사건들을 터뜨려 국민여론을 조장하고 호도(糊塗)했던 것이다.

이 사건 역시 그런 냄새를 진하게 풍기지만 그것을 지적하고자 함이 아니다.

일단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은 열흘간의 경찰 조사 끝에 검찰로 송치된 상태다. 문제는 그로 인해 불거진 사형제도 존폐 논란이다. 그간 사실상 폐지되다시피 했던 사형제도가 강호순으로 다시 도마에 오른 것은 그의 범죄가 너무도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이기 때문이다.


연약한 7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것도 모자라 무참히 살해하고 암매장한 인면수심(人面獸心) 만행에 어찌 인권을 운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전 고심 끝에 주변 지인들에게 사형제도에 대해 낱낱이 물었다. 대다수는 ‘강호순 같은 살인마는 사형을 적용해야 마땅하다’고 답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의 인권을 처참하게 유린하고 짓밟은 잔혹한 살인범에게 법의 형평성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과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다수결이 행세하는 사회라 하더라도 소수의 목소리가 묵살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지금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는 사형제도의 폐지보다는 존치(存置)를 원하는 모양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전의 논리를 악용해 인간이길 포기한 흉폭한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선 사형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중적 논리가 그것이다. 오죽하면 인권보호를 업으로 삼고있는 변호사들조차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도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현재 세계 200여 나라 가운데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나라는 84개국, 법률상 예외 범죄를 제외하고 사형을 규정하지 않는 국가는 12개국,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사형제도는 유지하되 형을 집행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폐지한 것이나 다름없는 나라는 24개국이다.

절반이 넘는 나라가 이미 오래전에 사형을 폐지했지만 아직 76개국이 사형제를 존치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이들 나라는 중국, 북한, 이라크 등 대부분 인권후진국이다. 하지만 인권선진국임을 자부하는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이 아직도 사형 존치국임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형집행이 확정되고도 미결구금된 범죄자는 61명이다. 이들은 모두 육체적 사형은 보류된 상태지만 정신적으론 사형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죗값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단 여론이 대세다. 사형제도는 표면상 범죄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법정최고형이지만 강력범죄를 억제하는 기능도 하고 있기에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일단 사형제도를 유지하되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몇 가지 철저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형 범죄의 종류와 수를 줄이고 ▲사형의 구형과 선고를 억제해야 하며 ▲사형수의 재심의 길을 폭넓게 열어 주어야 하고 ▲사형의 집행을 신중히 해야 하며 ▲재심의 신청이나 개시가 없더라도 사형 확정 후 상당기간 집행을 유예 또는 연기해 줌으로써 개과천선의 여부를 살펴 그 이후 집행여부를 판정하도록 해야 하고 ▲종국에는 사형을 대신할 만한 대체형이 고안되어야 마땅하다.

당국은 사형제도를 유지함에 있어 백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을 되새겨 더 이상 이 땅에 강호순 같은 흉폭한 범죄자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법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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