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쇠박사 자퇴유감

2009.01.20 09:40:00 호수 0호

‘쇠박사’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스스로 무거운 ‘갑옷’을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간단다. 수년간 거함 포스코를 무난하게 이끌어왔던 글로벌기업 리더치고는 퍽이나 쓸쓸한 퇴장이다.



더욱이 세계경제가 극심한 불황 속에 허덕이고 있고 국가경제가 끝도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글로벌기업 리더의 자진(?)사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지난해 연간 매출이 서울시 1년 예산과 맞먹는 30조6400억에 달하고 6조5000억원의 영업이익과 4조4000억원의 순이익이 난 알짜 민영기업이 바로 포스코다. 사실 포스코는 단일 품목으로는 단연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성적 안 좋은 국가대표팀 감독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처럼 임기를 1년이나 남겨두고 자진해서 물러났다.

그렇다면 그의 성적은 과연 어떠했을까? 단순 숫자놀음이 아닌 대한민국 대표경영자로서의 성과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3년 3월 당시 사장이었던 이 회장은 유상부 전임 회장이 갑작스레 물러나면서 포스코의 지휘봉을 잡았다.


포스코 회장의 보장된 임기는 3년. 그러나 그는 유 회장의 잔여임기 1년에다 자신의 임기 3년을 보태 4년 동안 포스코를 무리없이 이끌었다. 그로 인해 2007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재신임을 받아 연임에 성공, 창업자인 박태준 명예회장 다음으로 장기집권 가도를 달리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민영화 이후 전임 유 회장에 이어 ‘6시그마운동’을 통한 기업의 투명성 제고에 나름의 역할을 했던 그였고, 2007년에는 세계 최초로 ‘파이넥스공법’을 상용화하면서 혁신적인 원가절감과 친환경적인 경영을 펼쳐왔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어느 여가수의 노래 제목 ‘총 맞은 것처럼’ 돌연 물러난다니 세인들의 표정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그 자체다.

불혹(不惑)의 성상을 거치는 동안 역대 정권교체기마다 바람 잘 날 없었던 포스코였기 때문이다.

1968년 당시 불모지였던 경북 포항에 대일청구권자금을 들여와 포항제철을 설립, 지금의 포스코 대역사를 쓴 박태준 초대 회장이 그랬고,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그리고 전임자였던 5대 유상부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정권으로부터 총(?)을 맞지 않았느냐는 의혹 어린 시선이 짙다.

그도 그럴 것이 포스코는 2000년 완전 민영화 이후에도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공기업으로서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정부당국자들의 인식이 그러했기에 일반 국민들 역시 공기업 시절 사명(社名)이었던 ‘포철’에서 진일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여러 자리에서 정부당국자들로부터 이 같은 인식을 귀가 따갑게 듣기도 했다. 그때마다 포스코의 역사와 민영기업으로서의 가치를 입 아프게 설명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기에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노무현정부 때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일까.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포스코는 더더욱 포철로 굳어지는 듯했다.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포스코가 아닌) 포철 회장으로 누가 간다더라’란 말이 나돌기 시작했고, 결국 이는 현실이 되고 말았으니 아연실색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아직 하마평만 무성할 뿐 이 회장 후임자는 결정이 안 난 상태다. 일각에서는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간다느니,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아니면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장관이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관행적으로 정권이 바뀌면 포스코 경영자도 바뀌었다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발상을 가질 수 있는지 시절이 하수상할 따름이다. 제 아무리 정부를 ‘백’으로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회사경영을 잘못하면 백이면 백 욕먹고,?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 십상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기업에는 훌륭한 경영자만이 있을 뿐이다. 기업경영에 이념이나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작금의 대한민국은 진보는커녕 후퇴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강퇴’ 냄새가 짙은 이 회장의 ‘자퇴’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며, 물은 이미 엎질러졌지만 글로벌 경제정글 속에서 세계 유수의 철강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포스코의 새 수장이 ‘쇠’를 아는 사람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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