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재벌가 신(新)혼맥 [제4탄] 서민과의 최강로맨스

2009.02.03 11:21:07 호수 0호

‘사람만 보고, 서로 좋아서’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5년 전인 2004년 시사지 최초로 재벌가 혼맥을 집중 해부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09년 새해를 맞아 새 식구를 포함한 재벌가 신 혼맥을 유형·테마별로 새롭게 재구성해 봤다.





재벌가의 ‘끼리끼리 사돈’은 경영 1∼2세대까지 비일비재했다. 그저 사세 확장을 위해 자녀들을 커플로 엮어준 ‘정략통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3∼4세대로 내려올수록 재벌가의 결혼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예전처럼 부모들이 정해준 배필끼리 결혼하는 광경은 흔치 않다. 반강제적인 중매가 아닌 학교와 유학 등을 같이 다니면서 인연을 쌓고 자유연애 끝에 자연스레 혼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알 만한 집안’간 결혼이라도 자녀들끼리 연애해 결혼에 골인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들만의 혈맹관계’에서 이탈한 흔적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탈 명문가’ 현상이다. 극히 일부지만 ‘사람만 보고, 서로 좋아서’ 평범한 집안의 사위나 며느리를 받아들이는 재벌가도 더러 있다. 서민과의 로맨스가 그것이다.
외부엔 재벌가 부모들이 자녀의 행복을 위해 조건을 따지지 않았다고 전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재벌 자제와 일반인이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해선 부모의 반대 등 숱한 우여곡절은 선택 아닌 필수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과 평범한 사람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사귀게 될 확률, 나아가 결혼할 확률은 극히 낮다”며 “부모의 능력에 따라 위치가 결정되는 태생적 한계가 로맨스의 벽으로 작용되기 때문에 애초 만남도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탤런트 고현정 씨가 옛 남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의 인연을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고씨는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에서 이혼한 뒤 줄곧 함구해온 8년간의 결혼생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고씨는 ‘정략결혼’이란 의혹에 대해 “그는 세련된 유머가 있는 착하고 멋있는 사람이다.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결혼이란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보고 결혼했다고 하는데 모르는 얘기다. 그를 아주 많이 좋아했다”고 일축했다.


실제 2년 정도 연애 끝에 1995년 5월 결혼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미국이다. 1993년 12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영화 같은’ 첫 만남을 가졌다.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정 부회장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고씨를 만났다. 고씨는 친지 방문 겸 휴가차 떠난 자리였다. 좌석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고씨를 정 부회장이 도와주면서 이들의 로맨스가 시작됐다. 정 부회장은 고씨의 외모를, 고씨는 정 부회장의 매너를 보고 서로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정용진-고현정 커플은 유명 인사였지만 극히 평범한 데이트를 즐겼다. 고씨가 SBS 드라마 <모래시계>를 촬영하던 와중에도 ‘달콤한 연애’에 푹 빠져 있었다.

정 부회장은 당시 평범한 고씨의 집안은 물론 고씨가 연예인이란 사실에도 불구하고 신세계 일가의 교제 허락을 받아냈다는 후문이다. 결혼을 앞두고도 큰 반대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집안에서 왕따였다’는 소문에 대해 “전혀 아니다. (시댁식구들은) 그런 분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 부회장의 집안 내력 때문에 세인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았고 급기야 불화설이 나오는가 싶더니 결국 2003년 11월 결혼 8년6개월여 만에 ‘성격 차에 따른 가정불화’를 이유로 파경을 맞았다. 

까다롭게 사람 들이기로 소문난 삼성가엔 정 부회장과 같이 평범한 집안과 인연을 맺은 후손들이 있다. 주인공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부진(현 호텔신라 전무) 씨와 범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이 전무는 1999년 8월 작은 개인사업을 하던 임현기 씨의 장남 우재(현 삼성전기 상무)씨와 결혼했다. 우재 씨는 당시 그룹 계열사에서 평직원으로 근무중이었다. 항간에서 이 결혼이 ‘남성판 신데렐라’로 비쳐진 이유다.

이 혼사는 ‘삼성가 장녀 결혼’이란 점에서 시선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국내 최고 상류가문인 삼성가 맏사위가 삼성 평사원 출신인 ‘서민’이란 점에서 어느 누구의 결혼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재계 호사가들이 고개를 갸우뚱한 대목이다. 

이 전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장녀 세령 씨가,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와 고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의 차남 김재열 제일모직 전무가 웨딩마치를 울리는 등 삼성일가의 직접적인 화려한 혼맥과 대조되기도 한다.

단국대 전자계산학과를 나온 우재 씨가 삼성에 입사한 것은 1995년 2월. 그룹 계열사인 삼성물산에서 전산 업무를 담당했다. 우재 씨는 그해 5월 이 전 회장의 한남동 자택 개발 프로젝트에 파견되면서 부진 씨와 첫 대면 뒤 서로 눈이 맞았고 호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연인사이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다. 바로 사회봉사 현장에서다. 우재 씨가 소속된 부서는 격주로 한 아동보호시설을 찾았는데 마침 이 시설은 부진 씨가 연세대 아동복지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첫 입사한 삼성복지재단이 봉사활동을 펼치는 곳이기도 했다. 엉뚱한 사회시설에서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 이들은 커플링을 나눠 끼운 연인에서 혼담이 오가는 사이로 발전했다.

문제는 당초 삼성가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집안간 레벨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까닭이다. 부진 씨가 집안 어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직접 설득에 나섰고 이들의 사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우재 씨의 소탈한 성격이 통했다. 훤칠한 외모에 서글한 눈매가 인상적인 우재 씨의 부드러운 말투에 배인 성실하고 겸손한 면모가 이 전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은 이들의 결혼식에서 “(우재 씨가) 가정교육을 잘 받은 성실한 청년

이라며 “딸의 좋은 반려자가 되리라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우재 씨 측을 배려해 결혼식에 가족을 제외한 재계 인사들을 따로 초청하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화환도 사절했다고 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로맨틱한 연애 끝에 결혼한 케이스다. 그의 아내 김희재 씨는 부산의 평범한 집안 출신이다. 김씨의 모친은 ‘김치 박사’로 유명한 김만조 박사다. 김 박사는 50년 동안 김치를 공부한 재미 식품공학박사로 한때 CJ의 김치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1983년 고려대 법대 4학년 때 씨티은행에 입사, 행원으로 근무 시절 이화여대 미대 장식미술학과를 다니던 김씨와 지인의 소개로 미팅을 통해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웠다.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뜻에 따라 1985년 9월 제일제당에 입사할 때까지 이 회장은 삼성가의 장남이란 신분을 감추고 김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가 못지않게 범 현대가 혼맥은 한마디로 서민적이다. 현대가는 전체적으로 다른 재벌그룹에 비해 자유연애를 선호했다. 그룹의 외형을 키우기 위한 재벌간 정략결혼도 드물다.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처녀였던 고 변중석 여사와 연애 결혼해 평생을 함께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생전 사돈의 출신이나 재산 등 가문을 따지지 않았다. 자녀들이 결혼 상대자를 집으로 데려오면 간단한 인사만 받고 허락했다고 한다. 혼사만큼은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한 셈이다.

실제 정 명예회장의 8남1녀의 자녀들은 대부분 내세울 게 없는 집안과 인연을 맺었다. 장남 고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의 부인 이양자 씨, 차남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부인 이정화 씨,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 회장의 부인 우경숙 씨, 4남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부인 이행자 씨 등은 소위 ‘잘 나가는’ 집안과 거리가 멀다.


정 명예회장의 유일한 사위인 정희영(현 선진해운 회장)씨도 그룹 평사원 출신이다. 정씨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입사 동기다. 정 명예회장은 외동딸 경희 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정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 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현대가는 3∼4세에 이르러서도 자유연애 전통을 잇고 있다. 정 명예회장의 맏손녀 은희 씨는 친구 소개로 만나 현대전자 평사원과 연애 끝에 1995년 8월 화촉을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일찍 세상을 떠난 큰아들(몽필)을 대신해 은희씨의 결혼식 때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의 손자 정대선(몽우 3남) BS&C 사장도 평범한 가정의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2006년 8월 백년가약을 맺었다. 정몽구 회장의 3녀 윤이 씨는 1995년 그룹 계열인 현대정공에 입사해 수출부에서 근무하던 신성재(현 현대하이스코 사장) 씨를 만나 결혼했다.

금호아시아나 가문의 장손이 겪은 ‘러브 스토리’도 구구절절하다. 1984년 타계한 고 박인천 창업주의 뒤를 이어 2대 회장에 오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마거릿 클라크 여사와 국제결혼을 한 사연이다.

박 창업주는 슬하에 성용-경애-정구-강자-삼구-찬구-현주-종구 등 5남3녀를 뒀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정·관·재계 유력 집안과 사돈을 맺고 있는 것. 박 창업주가 생전 자식들의 혼사에 매우 신경을 쓴 결과다.

그러나 유독 박 명예회장은 부친의 뜻을 거역했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미국인 클라크 여사를 만나 1년여의 열애 끝에 1964년 결혼했다. 명문가도 아니고 더구나 유교적 전통이 강한 밀양 박씨의 장손이 외국인을 맏며느리로 들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물론 박 창업주는 완강히 반대했다. 이를 엿볼 수 있는 일화 한 토막. 

클라크 여사를 아내로 맞기로 결심한 박 명예회장은 미국에서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박 창업주에게 보냈다. 둘이 찍은 사진도 동봉했다. 그러나 박 창업주는 그 자리에서 편지와 사진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박 명예회장에게 돌려보냈다. 그만큼 반대가 심했다는 얘기다. 결국 박 창업주는 이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 박 창업주는 이들의 자녀와 맏며느리로서의 소임을 게을리 하지 않는 클라크 여사의 현모양처 모습을 보고 굳게 닫았던 마음을 열었다. 파란 눈의 며느리를 받아들이는 데 3년에 가까운 시절이 지나갔다.

SK그룹 일가 분위기도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서민 집안과 사돈을 맺은 로열패밀리가 적지 않은 것.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막내딸 기원 씨는 그룹 계열인 선경정보시스템 차장으로 근무하던 김준일 씨와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두 사람의 오작교 역할을 했다. 당시 선경마그테틱의 기획부장으로 일했던 최 회장이 평소 눈여겨봤던 김씨를 여동생에게 소개한 것이다.

최신원 SKC 회장도 2006년 5월 평범한 샐러리맨을 사위로 맞았다. 최 회장의 장녀 유진 씨는 미국의 금융회사에 다니는 구본철 씨와 결혼했다. 구씨는 범 LG가와 ‘먼 친척뻘’이지만 10촌이 넘어가기 때문에 친척이라 하기는 어렵다. 유진 씨는 미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두 사람은 유학 도중 자연스럽게 만나 수년간의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했다.

효성가 3세 조현문 ‘튀는 행보’
회장님 아드님은 락커

재계에서 ‘튀는 행보’로 가장 주목받은 인사는 누구일까. 바로 효성가 3세인 조현문 ㈜효성 부사장이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인 조 부사장은 보성고,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와 동대학원 경영학과, 하버드 법대 법학박사 출신으로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다 1999년 효성에 입사한 후 전략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특이한 경력도 갖고 있다. 서울대 재학시절 가수 신해철 등과 함께 그룹 ‘무한궤도’를 결성,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는 ‘무한궤도’에서 키보드를 맡았다. 피아노뿐 아니라 작곡과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그의 곡들은 ‘무한궤도’1집에 수록돼 있다. 조 부사장은 ‘015B’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 부사장은 2003년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 근무하던 이여진 씨와 화촉을 밝혀 화제를 낳기도 했다. 여진 씨는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다. 두 사람은 조 회장 부부가 청와대 행사장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씨를 눈여겨보고 아들에게 소개해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불과 3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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