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재벌가 신(新)혼맥 [제3탄] 라이벌 껴안기

2009.01.28 11:51:51 호수 0호

사돈 전 앙숙이거나, 사돈 후 원수되거나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5년 전인 2004년 시사지 최초로 재벌가 혼맥을 집중 해부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09년 새해를 맞아 새 식구를 포함한 재벌가 신 혼맥을 유형·테마별로 새롭게 재구성해 봤다.

 

재벌 가문와 정치인 집안 간 결합이 눈에 띄게 줄면서 재벌가끼리 사돈을 맺는 ‘그들만의 혈맹관계’가 두드러졌다(본지 680호 참고). 재벌가간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비즈니스 패밀리’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들은 ‘뭔가를 노리고’ 앞 다퉈 정치인들과 사돈을 맺었지만 ‘정경유착’으로 의심받는 등 득보다 실이 많자 재벌 가문끼리만 사돈을 맺기 시작했다”며 “대기업 자녀들은 대부분 학교와 유학 등을 같이 다니면서 인연을 쌓고 자연스레 혼인으로 이어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재벌그룹 일가간 혼인은 그저 사세 확장을 위해 자녀들을 커플로 엮어준 ‘정략결혼’도 적지 않다. 특히 라이벌 그룹 집안끼리 혼사를 맺은 통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정글’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 사돈도 예외가 아니다. 시댁, 또는 처가라 해서 사업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윈윈(win-win)’모델은 드물다. 오히려 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한 사업을 놓고 사돈끼리 갈등을 겪기도 한다. ‘사돈집과 화장실이 멀수록 좋다’는 말이 되새겨지는 대목이다.

재계의 최대 양대 산맥이자 최고 맞수인 삼성그룹과 LG그룹이 대표적이다. 두 그룹 총수 일가는 ‘라이벌 껴안기’를 통해 직접적으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사돈 사이다. 1958년 이 창업주의 차녀 숙희 씨와 구 창업주의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결혼한 것.


뿐만 아니다. 두 창업주의 인연은 남다르다. 이들은 모두 경남 출신으로 초등학교(진주 지수초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같은 시기에 같은 분야로 사업을 시작했다. 구 창업주는 “이 창업주와 같은 반에서 책상을 나란히 맞대고 공부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집안은 결과적으로 앙숙이나 다름없다. 사돈관계가 되면서 두 사람은 불필요한 사업 경쟁은 피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맺었지만 소용없었다. 삼성그룹과 LG그룹은 창업 이후 반세기 넘게 가전부터 반도체, 통신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물고 물리는’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감정싸움이 벌어졌고 때론 불협화음이 나오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인 만큼 ‘별들의 전쟁’무대는 한국을 넘어 해외로 확대되는 추세다.

삼성그룹과 LG그룹은 한때 손을 잡은 적이 있다. 1964년 구 창업주가 이 창업주의 달콤한 동업 제안을 받아들여 각각 50대50의 비율로 공동출자한 방송사업(라디오서울·동양TV)이다.

그러나 ‘공동경영’에서 두 회사 임직원간 알력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 이별도 순탄치 않았다. 당초 LG그룹이 동양TV를, 삼성그룹이 라디오서울을 갖기로 합의했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삼성그룹이 라디오·TV 사업을 모두 가져갔다. 

당시 LG그룹 내부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고, 구 창업주는 이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1969년 삼성전자 설립 전 이 창업주가 한발 앞서 1958년 금성사를 설립한 구 창업주를 찾아가 전자사업 얘기를 꺼냈다가 대놓고 면박을 받은 일화도 유명하다.

LG그룹 일가는 범현대가와도 사돈지간이다. 구 창업주의 셋째 동생인 구태회 LS그룹 명예회장의 손녀 은희 씨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4남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장남 정일선 BNG스틸 사장이 부부사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각각 심리학과 경영학을 공부하던 중 만나 1996년 결혼했다. 정 사장은 2006년 8월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결혼한 정대선 BS&C 사장의 친형이다.

두 집안은 ‘반도체 빅딜’사건 이후 서먹해졌다. LG그룹은 1979년 출범한 반도체 사업을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빅딜정책에 따라 거의 반강제적으로 당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넘겨줬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구 회장이 반도체 빅딜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전경련에 지금까지 등을 돌리고 있는 이유다. LG그룹은 2007년 3월 창립 60주년 사에서 “1998년은 혹독한 아픔의 시간이었다. 정부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고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재벌간 혼인 사세확장 노림수…맞수 집안도 ‘OK’
서로 도움 ‘윈윈’ 모델 드물어 “툭하면 으르렁”

반도체 빅딜로 한창 시끄럽던 그해 재계엔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장녀 세령 씨가 웨딩마치를 울린 것. 이들의 만남은 모친들의 ‘사전 교감’에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결혼이 발표되자 여러 해석들이 쏟아졌고 그 관심 또한 어느 누구의 결혼 못지않았다. 재벌간 혼사는 물론 ‘삼성 황태자’의 결혼이란 점에서 시선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조미료 시장을 두고 뜨거운 경쟁을 벌였던 두 그룹간 결합이란 점은 호사가들의 안줏감으로 충분했다.

삼성그룹과 대상그룹은 1970년대 식품문화의 새로운 장을 연 각각 ‘미풍’과 ‘미원’으로 불꽃 튀는 ‘조미료 전쟁’을 벌였다. 전형적인 영·호남 대표기업이란 지역적 특수성까지 겹치면서 양 그룹은 그야말로 사활을 건 전면전을 펼쳤다. ‘조미료 맞장’에서 대상그룹의 미원이 우세를 보이자 이 창업주는 “미풍이 미원을 이기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대상은 1980년대 ‘맛나’와 ‘다시다’로 다시 맞붙었지만 엎치락뒤치락하는 승부를 반복하다 이재용-임세령 결혼을 전후해 화해무드가 조성됐다. 각종 매스컴에선 이들의 결혼식을 두고 ‘조미료 전쟁 청산’, ‘영·호남 재벌 화합’등의 제목으로 기사화했다.

이도 잠시. 숙명의 라이벌전은 CJ그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1993년 독립경영을 선언한 뒤 계열 분리가 완전히 마무리된 2000년대 들어 조미료를 비롯해 고추장, 된장, 식용유 등 다양한 먹거리 분야에서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삼성그룹 일가는 삼성계열이자 사돈기업인 중앙일보의 강력한 라이벌 관계였던 동아일보 사주 가문와 사돈을 맺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의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는 2000년 고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의 차남이자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의 동생 김재열 제일모직 전무와 결혼했다. 이 전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누나다.

사돈기업간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롯데그룹과 태광그룹이 주인공.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의 사위다. 이 회장이 신격호 회장의 조카사위인 셈이다. 이 회장의 부인 신유나 씨는 지난해 7월 새로 설립한 주류소매업체 메르드뱅 대표이사로 있다.

그러나 롯데그룹과 태광그룹은 원수지간이 된 지 오래다. 2006년 롯데그룹이 태광그룹의 ‘다 된 밥’에 숟가락을 꽂으면서 사돈기업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됐다. 우리홈쇼핑 얘기다.

롯데그룹은 기존 우리홈쇼핑 인수를 추진하던 태광그룹이 지분 45.04%를 확보한 상황에서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들어 지분 53.03%를 인수, 경영권을 차지했다. 이 회장은 “태광그룹이 인수하려 했던 우리홈쇼핑을 사돈이 중간에 가로챘다”며 울분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신경전은 결국 법정소송으로 비화됐다. 태광그룹이 2007년 2월 “우리홈쇼핑의 최대주주를 롯데쇼핑으로 변경한 것은 위법”이라며 방송위원회를 상대로 승인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 현재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패소한 태광그룹이 지난해 3월 다시 대법원에 상고해 사돈관계인 두 그룹간 지루한 법정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본의 아니게 한두 다리 건너 라이벌 회사와 혼맥으로 연결된 재벌가도 있다. 항공업계 영원한 숙적인 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 혼맥의 본산인 범LG가를 통해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LG그룹 일가와 사돈관계를, LG그룹 일가가 한진그룹 일가와 사돈인 것.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장남 고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 씨는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의 3녀 문정 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 고 구철회 LIG손보 창업주의 3남이다. 구 창업주의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 명진 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과 결혼하면서 한진-금호간 ‘사돈의 사돈’관계를 완성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품에 안은 대우건설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박삼구 회장의 친형인 고 박정구 전 회장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사돈 간이다. 박 전 회장의 장녀 은형 씨는 김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 아도니스CC 사장과 혼인했다. 

박 회장이 사돈의 옛 회사를 가져간 꼴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당시 사돈관계인 김 전 회장이 모종의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결혼 재벌은?
상류층 총출동 진풍경
 

지난해에도 재벌가 혼사가 잇달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외아들 윤홍씨는 모 중소기업 오너의 딸과 지난해 8월 결혼했다. 윤홍 씨는 2002년 당시 LG칼텍스(현 GS칼텍스)에 입사해 2005년 GS건설(당시 LG건설)로 자리를 옮겨 현재 GS건설 과장으로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 경후 씨도 같은달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은 평범한 집안의 아들인 정종환씨. 정씨는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뉴욕 시티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후씨는 지난해 초 미국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했으며 향후 미국에서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 두 사람은 미국 유학 중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수 고려대 총장 주례로 열린 이날 결혼식엔 양가 부모와 가까운 친인척을 비롯해 그룹 계열사 CEO, 재계인사 등 3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특히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삼성일가, 신세계일가, 한솔일가 등 범삼성가 가족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또 사회 유명 인사들도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해 9월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사돈을 맺어 화제를 모았다. 이 전 실장의 장녀와 강 회장의 장남이 충북 충주시 시그너스골프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

언론인 출신인 이 전 실장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참모로 활동한 뒤 참여정부의 청와대 홍보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오랜 후원자다. 이런 인연으로 주례는 노 전 대통령이 섰다. 또 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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