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웅의 영사기] <러블리 본즈>…'통영 살해사건' 유족, 두려운 진실과 대면하길

2012.08.09 14:48:08 호수 0호



[일요시사=박대웅 기자] "14살, 나는 살해 당했다(14, I was murdered)"



영화 <러블리 본즈>(2010)의 첫 대사이자 이 영화의 카피 문구다. 영화 <반지의 제왕>과 <킹콩>의 피터 잭슨 감독의 5년만의 신작이자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 손대는 영화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두 거장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의기투합해 만든 작품인 <러블리 본즈>는 이 문구 하나로 전 세계 영화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14살 소녀의 살해 사건을 다루지만 그 보다 근본적으로 '떠나지 못 하는 소녀'와 '보내지 못하는 가족'이 '살해'라는 두려운 진실과 대면하는 과정을 통해 소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러블리 본즈>는 너무도 끔찍해서 혹은 너무도 두려워서 들춰내고 싶지 않은 딸의 죽음, 그것도 이웃집 남자에 의해 살해당한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극복해 나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14살 소녀의 감수성에 빗대어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신비스럽게 스크린에 담아낸다. 영화와 현실의 간극은 이 부분에서 대척점을 이룬다. 실제로 많은 피해 가족들이 불안감과 공포, 두려움과 주위의 편견과 동정 등으로 2차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16일 경남 통영의 한아름(10) 양은 학교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지만 결국 영화 속 수지(시얼샤 로넌 분)처럼 다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자신의 집과 직선거리로 7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웃집 남자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피해자 가족은 오열했고 이웃사촌으로 지냈던 88살의 가해자의 아버지는 "다 자식 잘못 키운 탓"이라며 무릎을 꿇었다. 국민들은 공분했고 호신용품 업체는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현실은 영화처럼 그리 아름답지 않다. 이제 한 양의 죽음으로 생긴 '상실'이란 '공백'을 채우는 일은 오롯이 가족들의 몫이다. 물론 그 공백이 메워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제안한 '사망단계설'처럼 한 양의 유족들은 '부정과 고립-분노-타협-절망-수용'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혹은 순환적으로 아니면 아예 겪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무거운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사람들은 영화관을 찾곤 한다.

스크린 넘어 속 펼쳐지는 '있을법한 이야기'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환상. 그리고 해 볼 수 없었던 것 혹은 닿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대리만족. 영화는 현실에 지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보듬으며 일종의 치유자적인 역할을 한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한 양의 유가족들이 영화를 찾게 된다면 필자는 이 영화 <러블리 본즈>를 권한다. '아픔을 통해 더욱 깊고 단단해지는 사랑'이라는 '러블리 본즈'의 뜻처럼 치유의 본질에 다가가길 바랍니다.


# 한 줄 정리

고(故) 한아름 양의 명복을 빕니다

#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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