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차에 블박 없는 이유

2017.12.19 12:40:47 호수 1144호

개망신 당할라 ‘욕 금지령’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최근 몇 년새 재계 회장님들 사이서 ‘블랙박스 없애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블랙박스서 나온 정보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블랙박스 없애기 앞과 뒤를 알아봤다.
 



A기업 회장의 차에는 블랙박스가 없다. 2억원 상당의 고가 차량에 사고라도 발생할 경우 블랙박스가 없으면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사적인 얘기가 공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비밀을 사수하라

회장이 개인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는 상당히 사적인 이야기가 오고간다. 특히 휴대전화를 통해 나누는 대화에 민감한 내용이 많이 포함된다. 회사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은 물론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다양한 주제가 거론된다. 

휴대전화를 통해 나누는 대화가 공개될 경우 불필요하게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때론 자신의 치부가 기록될까 두려워 블랙박스를 없애는 경우도 있다. 차량 내서 발생하는 갑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날까 우려하기도 한다.

10여년 경력의 수행기사 B씨가 모는 차량에도 블랙박스가 없다. 현재 ‘모시는(?)’ 회장에게 이따금 언어적인 무시와 폭력에 시달리지만 증거로 쓸 수 있는 블랙박스가 없다. 그는 사고가 났을 때 블랙박스가 없으면 자신이 책임질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지만 회사 측에 요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회장 차량에 블랙박스를 설치하지 않는 이유가 비밀유지에 있다고 보는데 이를 요구할 경우 회사 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회사 측은 블랙박스 제거뿐만 아니라 수행기사와의 비밀유지 계약을 통해 수행기사의 입단속을 한다.

과거에는 수행기사들이 회장의 갑질을 참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적극적인 제보를 통해 갑질 회장의 민낯을 공개하기도 한다. 이 경우 운전기사가 녹취한 내용이 ‘결정적 한 방’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잇단 운전기사 폭로에 블랙박스 없애
대화기록 부담…회사 기밀유출 우려도

 

운전기사들이 회장의 갑질을 폭로하는 일이 잦아지자 아예 정보가 기록될 가능성을 철저하게 막는 분위기다. 특히 블랙박스를 떼는 주요 이유는 회장이 운전기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사 내 운전기사의 존재감은 어떨까. 

회장의 일상을 보좌하는 운전기사는 회사서 고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회장의 사적인 시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 운전기사가 아닌 직함이 있는 경우도 있다. 회장의 복심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회사 내에서 존재감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점 때문에 관리와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회장과 수행기사 사이에 신뢰가 높다고 해도 블랙박스의 존재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기자가 만났던 수십년간 대기업 F회장의 수행기사였던 E씨는 불만스레 회장의 비밀(?)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요즘 같이 블랙박스에 기록돼있는 경우 진작에 회장의 갑질을 언론에 제보했을 것”이라고 했다. 퇴사 당시 퇴직금도 챙겨주지 않는 등 서운하게 내쫓다시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수행기사가 회장의 갑질을 참는 이유가 퇴직 후 어느 정도 퇴직금 명목으로 금전적인 혜택을 주는데 자신은 버려지다시피 수행기사를 그만뒀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경우에 블랙박스에 회장의 갑질 등의 일탈이 기록돼있다면 적잖은 리스크가 될 우려가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회장뿐 아니라 차량이 지급되는 임원 업무용 차량에도 블랙박스를 떼는 경우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차량서 개인 사생활은 물론 회사 전반에 대한 내용이 대화 소재로 오를 수 있는데 이 같은 부분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과거 중견기업 오너 일가의 운전을 하던 E씨는 “녹취 우려가 있는 운전기사 개인 휴대폰을 관리하기도 한다”며 “시대가 변해 블랙박스를 통해 차량 내 상황을 녹취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이 발달하면서 (회장들이)이 부분을 신경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정치권서 넘어왔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블랙박스를 없애는 분위기가 정치권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서약으로 입단속

재계 한 관계자는 “개인 사생활이나 회사의 비밀이 새 나가는 것에 대한 단속 목적도 있겠지만 운전기사들이 폭로를 블랙박스 없애는 것으로 막는다는 발상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근본적으로 회장 스스로가 갑질 등 약점 잡힐만한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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