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비로 드러난 레진코믹스의 민낯

2017.12.18 11:59:11 호수 1145호

작가 쥐어짜는 ‘웹툰 공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는 지체상금, 이른바 지각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작가가 계약서에 명시된 마감 기한을 어길 경우 수익의 일정 부분을 위약금으로 물리는 제도다. 2015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된 이 제도는 2년4개월 동안 숱한 논란을 낳았다. 논란이 지속되자 레진코믹스는 제도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내년 2월부터 지각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서 드러난 레진코믹스의 민낯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레진(Lezhin)’을 필명으로 쓰던 블로거 한희성씨와 개발자 권정혁씨가 설립한 레진엔터테인먼트는 2013년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이하 레진)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업 초기부터 도입한 부분 유료화 모델은 ‘웹툰은 공짜’라는 세간의 인식을 뒤엎고 성공을 거뒀다. 레진은 서비스 첫 달 매출 1억원을 돌파한 후 월 20∼30%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양적으로 빠르게 팽창했다.

유료서비스 도입
양적으로 급성장

네이버, 다음과 함께 3대 웹툰 사이트로 자리매김한 레진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5년간 누적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레진에 연재 중인 혹은 연재했던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레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레진은 입장문 발표 등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박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등 오히려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 대한 세무조사를 부탁드립니다’는 청원이 제기됐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자는 ▲정산CMS 오류 ▲지체상금(지각비) ▲해외 서비스 정산 미지급 등의 문제가 레진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세무조사를 요구했다. 해당 청원에는 지난 14일 기준 4만8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원 내용 중 지체상금 이른바 지각비 제도는 2015년 8월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2년4개월여 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사안이다. 

작가들의 계약서에 따르면 레진은 논의 없이 콘텐츠가 제공되지 않거나 지연될 경우 작가에게 벌칙금을 청구할 수 있다. 벌칙금은 지연이나 무단 휴재가 발생하는 건마다 콘텐츠 제공 대가, 즉 수익의 3%씩 차감하며 최대 9%를 초과할 수 없다고 돼있다.

예를 들어 일요일에 웹툰이 공개되는 작가는 서비스 2일 전인 금요일 오후 3시까지 작품을 보내야 한다. 만약 이 기한을 초과할 경우 첫 번째는 벌칙금이 없지만 두 번째부터는 월 수익의 3%, 세 번째는 6%, 네 번째는 9%를 지각비로 물린다. 

월 수익이 200만원이라면 최대 18만원까지 지각비로 책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레진은 정산 시 지각비를 차감한 돈을 작가에게 지급한다. 

서비스 지장 없어도 마감 늦으면 지각
최대 9%까지 징수 1000만원 낸 작가도

문제는 지각비가 발생하는 시점과 상한선이다. 작가는 자신의 서비스 요일에 정상적으로 작품을 업로드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레진서 정한 마감 기한에 늦으면 지각비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매출상의 손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음에도 작가는 정산상의 불이익을 받는 셈이다. 만화계 한 관계자는 “레진의 지각비 제도는 출근시간이 9시로 정해진 아르바이트생에게 왜 7시까지 오지 않느냐고 따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지각비의 최대 액수가 정해지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레진은 지각한 주가 아닌 작가가 벌어들인 해당 월 전체 수익에서 최대 9%까지 지각비를 제하고 있다. 월 수익에 따라 지각비가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수익이 많으면 차감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실제 최근 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화가협회)에 접수된 지각비 관련 제보 중에는 레진서 위약금으로 물린 지각비 액수가 1000만원에 이른다는 신고도 있다.

레진의 지각비 제도 관련 만화가협회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의 김성주 변호사는 “작가의 지각으로 연재가 늦춰졌다면 그에 대한 페널티는 사후에 설정할 일”이라며 “작가 스타일이나 작품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특정 시점을 적용해 이중의 제어장치를 둔 것은 작가들 입장에서는 부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으로 부당성이 제기되자 레진은 지난달 9일 입장문을 통해 내년 2월1일부터 지각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이하 웹툰작가협회)는 레진의 지각비 폐지 결정을 반기면서도 지난달 30일 ▲부당하게 지각비를 징수당한 작가들에 대한 보상 방법 ▲레진코믹스 운영상 과실 또는 서비스의 오류 발생으로 인해 작가들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보상정책 유무와 위 보상정책을 계약서에 명시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 ▲지각비 폐지 시점을 2월1일로 설정한 경위 등 3가지 사항에 대한 추가 답변을 요구했다.

웹툰작가협회의 공개 질의에 레진은 2주 만인 지난 12일 답변을 전해왔다. 가장 논란이 되는 사안은 지각비 폐지 시점이다. 

레진은 11월에 낸 입장문서 내년 2월1일을 지각비 폐지 예정일로 잡은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지각비 관련 부분은 계약서에 명시돼있기 때문에 작가들과 별도 서면으로 합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지각비가 운영되지 않는 상황서 오류를 막기 위해 제도를 보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등이다. 웹툰작가협회에 보낸 답변도 동일하다.

월 20∼30%
성장의 이면

하지만 지난 14일 레진 관계자에게 나온 답변은 입장문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레진 관계자는 지각비 폐지와 관련 “내년 2월1일부터 작가님들과 변경합의서 체결합니다. 관련해 보다 상세한 내용은 추후 작가님들께 전체 공지 드릴 예정입니다”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내년 2월1일에 일괄적으로 지각비가 폐지되는 게 아니라 그날부터 작가들과 개별적인 합의가 이뤄진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와의 합의 과정서 발생할 수 있는 지각비에 대해 묻자 “세부 사항은 협의 중에 있다”는 말만 돌아왔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레진이 지각비 폐지를 결정한 것은 사측도 어느 정도 문제를 인지했다는 뜻”이라며 “그런데 그 조항을 폐지하는 데 3개월, 그 이상 소요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별도의 합의서를 통해 ‘기존 계약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하되 지각비 조항에 대해서는 특정 시점부터 효력을 없애기로 한다’ 등의 취지로 충분히 진행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계약대로 진행”
양측 얘기 달라

레진이 작가들의 지각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레진은 웹툰작가협회가 질의한 보상정책 유무와 계약서 명시에 대해 “올해 2월부터 서비스 운영상 과실에 대해 작가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상호 합의하에 만족할만한 보상을 진행 중에 있다”면서도 “보상 정책은 계약서에 전부 명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웹툰작가협회의 첫 번째 질의에 대한 레진의 답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레진은 “계약 진행 과정서 작가들에게 지각비에 대해 설명했고 그들도 인지한 상태서 계약이 이뤄졌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작가가 레진과의 계약 조항에 동의해 서명했기 때문에 지각비 징수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레진이 계약을 맺은 웹툰 에이전시와 계약서 변경 없이 작가에게 지각비를 징수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즉 작가와 레진, 에이전시 간의 계약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서 지각비 차감이 진행됐다는 것.

레진은 2015년 8월 이후 에이전시에 지각비 제도 도입과 시행을 알렸다. 그러자 에이전시는 2015년 10월 ‘[작가님 전체 공지 메일] 레진코믹스 원고 마감 시점 관련 페널티 관련...’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작가들에게 보냈다. 

이메일에는 11월1일부터 ‘이틀 전 오후 3시 마감 규정이 엄수돼 진행’ ‘페널티는 최대 9%’ ‘월 1회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레진과 직접 계약을 맺은 작가들의 지각비 조항과 동일하다.

논란 계속되자 폐지 결정
합의 시작은 3개월 뒤부터

이 문제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해당 에이전시를 통해 레진에 작품을 연재한 A작가를 통해 알려졌다. 

실제 A작가는 2016년 지각비 조항에 따라 정산액을 차감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물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최근 논란이 불거진 걸 보고 그때 지각비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를 받지 못한 게 떠올랐다”고 전했다.

에이전시는 A작가의 문의에 “페널티에 대한 공지 그 자체(2015년 10월에 보낸 메일)가 계약의 효과로 진행됐던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며 “자사도 레진 측으로부터 페널티에 대한 내용을 공지로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A작가가 에이전시의 답변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자 추가 이메일이 이어졌다. 

에이전시는 “지각비 적용과 관련해 레진과 자사, 자사와 작가님 사이에 문서화된 계약서를 주고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작가가) 별도의 이견을 피력한 적이 없었기에 최근 문제 제기에 당황스럽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의 계약서에 따르면 계약의 변경은 서면 합의로만 이뤄질 수 있다. 

김성주 변호사는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해봐야 하지만 이메일을 통한 공지는 ‘통보’에 가깝다”며 “통보 자체가 계약 내용의 변경에 대한 합의로 보긴 어렵다. 작가들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레진 관계자는 (에이전시서)우리와 동일하게 지각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해당 조항이 계약서에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에이전시는 계약서에 지각비 조항이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일 SNS에는 레진에 작품을 연재 중인 B작가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B작가는 “지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논리에 경영진이 행한 이 얼토당토않은 일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당신들과의 약속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내 엄마에게 했던 그 모진 말을 용서하기 힘들어요”라고 적었다.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던 B작가의 어머니는 지각비 증빙 자료와 관련해 B작가와 말다툼을 벌이고 아파트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B작가는 “당시 그 달(10월)의 첫 번째 지각이어서 지각비 차감대상도 아니었다. 레진은 엄마가 아프다는 증거를 해당 주도 아닌 그다음 주에야 요구했다”며 “나중에 확인해보니 레진은 작가들에게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명확한 기준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엄마의 죽음과 레진의 지각비 제도가 무슨 상관이냐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그렇지만 나는 이번 일이 지각비 제도의 ‘부작용’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명확한 기준 없어
“면제하려 했다”

레진 관계자는 “저희 PD가 (B작가의) 지각비를 면제해 드리려고 증빙서류를 요청한 것 같다”면서도 “매번 지각비에 대한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만화계 한 관계자는 “레진은 유료 플랫폼 중에서도 선두주자였고 친작가주의라는 좋은 이미지로 시작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개선 의지야 레진에 달렸지만 지금까지 내놓은 입장문이나 대처 등을 보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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