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직원, 백억대 상품권깡 파문 일파만파

2011.07.26 11:30:00 호수 0호

‘빵빵’ 뚫린 구멍으로 ‘쭉쭉’ 빼가 재미봤다

하나은행이 발칵 뒤집어졌다. 170억원대의 ‘상품권깡’ 사건이 드러나서다. 액수도 액수지만 기간도 무시 못한다. 3년여에 걸쳐 220회나 벌어졌다. 문제는 그 동안 하나은행이 범죄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뒤늦게 내부 감사를 통해 횡령사실을 인지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긴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모든 손실을 뒤집어쓰게 생겼다. 감사시스템의 부재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3년 동안 20억원 챙기고 상품권 174억원 유통시켜
“3년 간 전혀 몰랐다”…감사 시스템 문제 ‘적나라’

시간은 지난 2008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근무하던 신모(41)대리는 자신이 판매를 담당하던 국민관광상품권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제작·판매하는 이 상품권은 시중은행이 판매를 대행하고 있다. 전국 백화점·면세점·식당·호텔 등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구매 고객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 혼자 전담



신씨는 법인이 해당 상품권을 대량으로 구매할 경우 대금을 즉시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관행에 주목했다. 그리고 치밀하게 ‘상품권깡’을 계획했다. 우선 신씨는 과거 거래내역이 있는 한 공기업의 이름을 도용해 한 번에 2000만~5000만원씩, 한 달에 3~4차례에 걸쳐 상품권 구매서류를 작성했다.

상품권 수령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영업소에 방문해 “본점에서 계약을 체결해 담당자인 내가 직접 전달한다”는 말만 하면 두말없이 상품권을 내줬다. 한 번에 구매하는 금액이 크지 않은 데다, 매달 일정 금액씩 꾸준히 거래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이렇게 빼돌려진 상품권은 명동 일대의 상품권 판매상에 흘러 들어갔다. 신씨는 판매상에게 상품권 액면가의 5~6%가량을 할인해 넘겼다. 예컨대, 10만원권의 경우 9만4000~9만5000원의 현금을 신씨가 챙겼다. 판매상은 여기서 다시 1~2%정도의 이윤만 남기고 일반 소비자들에게 유통시켰다.

이 같은 수법으로 신씨는 3년간 220회에 걸쳐 액면가 174억7000만원에 달하는 상품권을 횡령했다. 이 가운데 신씨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간 돈은 드러난 것만 20여억원. 신씨는 이 돈 대부분을 생활비와 유흥비 등에 탕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씨가 그 동안 감쪽같이 상품권을 횡령할 수 있었던 것은 돌려막기를 통해 매달 정확한 금액을 결제했기 때문이었다. 앞서 구매한 것처럼 꾸민 상품권의 결제 만기일이 돌아오면 상품권을 다시 빼돌려 판매한 금액으로 결제대금을 충당했다. 경찰조차도 혀를 내두른 수법이었다.

상품권 판매 전 과정을 신씨 한명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도 범행을 더욱 손쉽게 만들었다. 구매승인부터 교환·환불 등 판매와 관련된 업무는 신씨가 전담했다. 신씨를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씨 개인의 도덕성에 모든 걸 맡겨 놓은 상황이었다. 신씨가 아닌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횡령할 수 있는 구조였다. 결국 감시체계의 부재가 화를 키운 꼴이었다.

모르쇠 일관

그러다보니 하나은행은 서씨의 범행을 3년 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판매실적이 우수하다는 명목으로 8000만원의 인센티브를 주기도 했다. 최근에서야 내부 감사를 통해 신씨의 횡령사실을 파악한 하나은행은 부랴부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상품권의 대부분이 시중에 유통된 때문이다. 결국 하나은행은 손실을 떠안아야 할 처지가 됐다.

이와 관련, 하나은행의 측 관계자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자세한 내용은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17일 신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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