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사회조사> 싹트는 기부 불신 '왜?'

2017.11.13 10:55:30 호수 1140호

찬바람 부는데 따뜻한 손길 ‘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올해도 채 40여일이 남지 않았다. 매년 12월이면 옷깃을 여미는 사람들 주변으로 구세군들의 기부 요청 종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데 최근 이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기부금 사용에 대한 불신이 싹텄기 때문이다.
 



인천에 사는 30대 직장인 주모씨는 최근 기부금 통장을 정리했다. 기부를 위해 월급서 일정 부분 떼어둔 돈을 모은 통장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매월 두 개 단체에 돈을 보내왔던 주씨는 언론의 사회단체의 기부금 횡령 의혹 보도를 접하고 불신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주씨는 “솔직히 기부금을 낼 때도 이 돈이 내가 후원하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쓰일까 걱정한 것은 사실”이라며 “기부금 관련 사건을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못 믿겠다”

최근 들어 국민들의 기부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기부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26.7%로 나타났다. 국민 4명 중 3명은 지난해 한 번도 기부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부 경험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11년만 해도 최근 1년간 기부를 해봤다는 사람은 36.4%였다. 하지만 2년 뒤인 2013년 34.6%, 2015년 29.9%로 급속히 떨어졌다. 6년 새 10%포인트 가량 줄어든 셈이다.


기부를 하지 않은 이유로는 ‘경제적 이유’가 첫 손에 꼽혔다. 기부 비경험자의 절반 이상(57.3%)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뒤를 이어 기부에 관심이 없어서(23.2%), 기부 단체를 신뢰할 수 없어서(8.9%) 등이 꼽혔다.

주목할 것은 ‘무관심’ 응답이 2년 전에 비해 늘어났다는 점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응답은 6.2%포인트 줄어든 반면 기부에 관심이 없어서라는 응답은 되려 8.0%포인트 늘었다.

향후 기부할 생각이 있다고 의사를 드러낸 비율도 하락세다. 2013년에는 국민의 절반 가까이(48.4%)가 앞으로 기부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비율은 2015년 45.2%, 올해 41.2%까지 떨어졌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 기부지수는 중위권에 머무른다.

돈 맡겼더니 먹튀…기부포비아 확산
‘어금니 아빠’ 등 온정 문화에 찬물

국제 자선단체 영국자선지원재단이 발표한 ‘세계기부지수 2017’에 따르면 국내 기부 참여지수는 34%로 139개 조사 대상국 중 62위에 그쳤다. OECD 35개국 중에서는 21위다.
 

이 지수는 전 세계 주요 139개국서 100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해 1년 동안 낯선 사람을 도와준 비율, 기부 경험의 비율, 자원봉사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산출한 점수다.

국내의 경우 낯선 사람을 도와준 비율은 44%로 94위, 기부 경험 비율은 41%로 31위, 자원봉사 시간은 17%로 78위에 머물렀다.

최근 기부를 악용한 사례가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안 그래도 얼어붙고 있는 기부 심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특히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가 수년간 개인계좌로 받은 딸 치료 후원금으로 호화생활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씨는 2005년 희소병인 거대백악종에 걸린 부녀 사연으로 얼굴을 알린 후 딸 또는 부인 계좌를 이용해 수시로 후원을 요청했다.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은 이씨의 호화생활에 사용됐다.

이씨는 값비싼 혈통견을 분양받거나 고급 승용차를 모는 데 후원금을 썼다. 13년간 치료비 명목 등으로 받은 13억원의 후원금 중 750만원만 병원비로 쓴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후원계좌 3개를 통해 2005년부터 올해까지 12억80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경찰은 나머지 수술비용은 후원 단체가 지불한 것으로 보고, 이씨가 병원비에 사용해야 할 돈을 빼돌려 다른 목적으로 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 사용처를 조사했다.

이씨의 사례가 기부 문화에 끼친 영향은 상당하다. 

앞서 기부단체 ‘새희망씨앗’서 기부금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거진 불신의 눈초리가 어금니 아빠 사건을 계기로 더 확산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새희망씨앗은 ‘지역 아동과 1대1로 연결된다’ ‘교육 콘텐츠 사업을 한다’ ‘미래꿈나무를 키울 수 있다’는 내용으로 후원자 5만여명을 모집해 이들에게 후원금 명목으로 약 128억원을 받았다.

이중 실제 후원으로 이어진 액수는 2억1000여만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돈은 본사와 수도권 및 21개 지점서 4대 6 비율로 나눠가졌다. 사단법인 새희망씨앗 회장과 주식회사 새희망씨앗 대표를 포함, 지점장들은 이 돈을 아파트 구매, 해외 골프여행, 요트 여행, 고급 외제차 구입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 4명 중 1명만 기부 경험
‘앞으로도 하겠다’ 점차 줄어

‘한국의 마더 테레사’로 불렸던 한 목사의 기부금 횡령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9월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천사목사와 정의사제-헌신인가, 기만인가’ 편에서는 소설가 공지영씨와 전직 천주교 신부 김씨 간에 고소 사건이 다뤄졌다.

두 사람 모두 인지도가 있는 인물들이었고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왔기에 진실공방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과정서 등장한 게 이모 목사. 그녀는 김 전 신부와 함께 장애인 복지센터를 운영하면서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는 이름으로 이미 언론에도 수차례 소개된 바 있다.

이들은 지난 6월 허위 경력서를 만들어 장애인 복지시설을 설립한 뒤 후원금 명목으로 3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와 면허 없이 봉침을 시술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달 30일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공 작가는 “이 목사는 자신이 미혼모이며 5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홀로 키우는 것처럼 홍보해 많은 기부금 및 물품들을 끌어 모았다”며 “입양아 중 일부는 사실상 다른 사람의 손에서 키워졌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것처럼 사람들의 기부를 끌어낸 사실이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고 전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목사가 대표로 있는 복지 센터는 국비를 포함해 4억7000여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김 의원은 “이번 봉침목사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샀던 ‘어금니 아빠’ 사건의 판박이로 기부 포비아를 확산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복지부가 즉각 보조금 환수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전조사 필요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내 기부자들은 작은 성의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의심 없이 기부하지만 그 기부금이 어떠한 곳에 쓰이는지는 확인하지 않는다”며 “기부·후원자들은 수혜자 및 단체에 대한 사전 조사를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기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부와 후원, 수혜 과정까지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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