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주류업계 ‘수상한 동거’ 속사정

2011.07.05 06:00:00 호수 0호

‘대물 전용’한 이불 속 질퍽한 러브라인

국세청 출신 인사들의 ‘전관예우’ 실태가 드러났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첫 공판에서다. 국세청 간부들이 퇴직 후 주류·주정 협·단체와 업체에 ‘낙하산’으로 대거 기용된 사실이 확인됐다. 사실 매년 국감에서 지적되는 등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법정에서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얼마나 심하길래….

“고위 국세맨들 낙하산 관행” 한상률 공판서 진술
주류업계에 상당수 포진…자리 ‘대물림’ 현상도


지난달 2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502호 법정. 검찰은 ‘그림로비’ 의혹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 국세청 출신 인사들의 전관예우 실태가 담긴 진술조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검찰에 따르면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진술서에서 “전반적으로 우리가 국세청으로부터 감시를 받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관련 협회 회장이나 전무 등의 임원은 대체로 국세청에서 내려온다”고 증언했다.



전관예우 도마

그동안 국세청과 주류업계의 ‘수상한 동거’에 대해 말은 많았지만, 법정에서 이같은 진술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 현재 주류업계 임원 등 상당수는 국세청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재계 전반적으로 그렇지만, 주류업계는 ‘국세맨 모시기’에 유독 공을 들이고 있다. 일부 주류 관련 업체나 단체 고위직은 국세청 퇴직 관료들이 자리를 ‘대물림’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선 주류업계 최대 이익단체인 한국주류산업협회(구 대한주류공업협회)만 봐도 그렇다. 이 협회는 국세청 관료들이 계속 회장을 맡아왔다.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롯데주류 등 국내 굴지의 주류업체 18개사와 주정업체 10개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협회 회장은 김남문씨다. 송파세무서장과 대전지방국세청장, 국세청 법무심사국 국장, 법인납세국장 등을 지낸 김씨는 2008년 6월 명예 퇴직한 뒤 11월 3년 임기로 협회장에 취임했다.

김씨는 협회가 회원사들로부터 돈을 걷어 1997년 설립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이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이 센터는 중부청 조사1국 과장을 지낸 최동수씨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협회엔 김씨 외에도 김성준 전 대구청 세원국장이 전무로 있다.

협회 전임 회장인 김문환씨도 국세청 출신이다. 그는 2005년 1월까지 종로세무서장, 국세청 총무과장, 중부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등을 지내다 그해 11월 협회장에 선임됐다. 김씨 역시 센터 이사장을 맡았었다. 그전에도 국세청 출신들이 협회와 센터 요직을 맡아왔다.

특히 국내 병마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업체들의 경우 대놓고 국세청 간부들을 모시고(?) 있다. 바로 세왕금속공업과 삼화왕관이다. 국세청은 주세 탈세를 막기 위해 주류 제조업체가 의무적으로 납세병마개 제조업체로부터 병마개를 공급받아 사용토록 하고 있는데, 병마개를 독식하고 있는 두 업체의 고위직은 국세청 퇴직 간부들의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세왕금속공업의 김광 사장은 해남세무서장, 서울청 조사3국 과장, 국세청 소비세과장, 서울청 조사국장,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광주지방국세청장 등을 역임했다. 장인모 부사장은 수원·성북·도봉·파주세무서장 등을, 송찬수 감사는 중부청 조사2국 과장과 마포세무서장 등을 거쳤다.

뿐만 아니라 과거 임원들도 대부분 국세청 출신 인사들로 구성됐었다. 2009년엔 ‘그림로비’의혹의 핵심 인물인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이 사건 직후 입막음용으로 국세청 고위간부로부터 세왕금속공업 사장 자리를 제의받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세왕금속공업의 최대주주는 하이트홀딩스(24.85%)다. 이외에 무학(13.15%), 보해양조(12.91%·4만8810주), 금복주(12.63%·4만7729주), 기타(36.46%·13만7826주) 등 주주들이 모두 주류업체들로 이뤄져 있다.

두산그룹 계열사였다가 지난해 9월 병유리 업체인 금비에 매각된 삼화왕관도 국세청 출신들이 경영진에 포진해 있다. 석호영 사장은 국세청 납세보호과장, 전산기획 담당관, 납세지원국장 등을 지냈다. 이학찬 부사장은 영동·평택세무서장 등에서, 안춘복 감사는 마산·평택세무서장 등에서 근무했다.

에탄올(주정) 등 술 성분 제조·판매업체인 대한주정판매, 서안주정, 한국알콜산업 등 주류 관련 업체에도 전직 국세청 인사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업체는 전통적으로 국세청 간부 출신들이 주요 경영진으로 참여해왔다.

대한주정판매의 김영근 사장은 서울청 납세지원국장, 국세청 근로소득지원국장, 대전지방국세청장 등을 지냈다. 이성호 부사장은 중부청 소득재산세과장과 남양주세무서장을, 김영국 감사는 성동세무서장과 중부청 조사1국 과장 등을 역임했다.

서안주정의 주요 경영진도 모두 ‘국세맨’출신이다. 이준성 사장은 중부청 조사3국장, 서울청 조사4국장, 국세청 부동산납세관리국장 등을 거쳤다. 정태만 부사장과 진형양 감사는 각각 서울청 국제거래조사국 과장·용산세무서장 등에서, 중부국세청 조사2국 과장·도봉세무서장 등에서 잔뼈가 굵었다.

한국알콜산업의 경우 국세청 출신의 지창수 회장이 직접 경영하고 있다. 지 회장은 서울지방국세청장과 국세청 차장을 끝으로 은퇴, 1987년 사장에 취임한 뒤 1998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이처럼 국세청 출신들이 주류업계의 요직을 꿰찰 수 있는 것은 업종과 업무의 연관성이 그 이유로 꼽힌다. 국세청이 주류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주류 업체 및 단체들은 국세청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해를 살 만하다.

보험성 영입?

강길부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국세청 국감에서 “국세청 퇴직 공직자들이 주류관련 업체나 협회에 취업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은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국민적 기대에 어긋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서 안효대 한나라당 의원도 2009년 국감에서 “주류업계와 국세청이 이상한 동거를 하고 있다”며 “국세청이 각종 인허가권을 통해 주류업체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국세청 고위간부가 회사의 사장을 자기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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