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거부 차용규 수수께끼 추적

2011.05.30 11:03:54 호수 0호

2004년 카자흐스탄에선 무슨 일이…

재계에 ‘차용규’란 이름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1조 거부’ 차씨가 재산을 모은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캐기 위해 국세청이 나섰기 때문이다. 차씨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국내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부자지만 별로 알려진 사실이 없다. 그래서 그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한둘이 아니다.

국세청 수천억 탈세 조사…역대 최대 추징금?
인생역전 ‘카작무스 대박’ 둘러싼 의혹 증폭



국세청이 차용규씨에 대해 전격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최근 차씨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탈루한 정황을 포착, 역외 탈세 혐의를 조사 중이다. 국세청은 차씨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1조원대의 소득과 국내 부동산 매입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씨는 카자흐스탄에서 돈을 벌어 해외 부동산펀드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서울 강남 빌딩과 상가, 강북 백화점, 여의도 호텔, 제주도 부동산 등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사상 최대의 추징금 얘기가 돌고 있다. 그의 탈세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난달 국세청이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게 추징했던 4100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어떻게 돈 모았나

차씨는 무일푼으로 1조원을 벌어들인 ‘대박의 사나이’다. 그러나 철저히 베일에 싸인 인물로 그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사실이 없다. 재벌도 아니면서 거부 반열에 오른 ‘성공 신화’만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올해 55세인 차씨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1995년 독일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중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로 배치됐다. 삼성물산은 파산상태에 몰린 ‘카작무스’의 위탁 경영을 맡게 되자 그를 현지에 파견했다. 카작무스는 카자흐스탄 최대의 구리 채광·제련 업체다.

삼성물산 지휘 하에 카작무스는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위탁경영이 만료된 2000년엔 자산가치 30억달러, 세계 9위 구리 제련업체로 거듭났다. 이런 이유로 카자흐스탄 정부는 위탁 경영이 만료된 삼성물산에 카작무스 지분 매입을 요청했고, 삼성물산은 이를 수락해 2000년 지분 42%를 취득했다.

카작무스 사업을 진두지휘한 것이 차씨다. 그는 1998년 부장으로 승진한 후 1999년 이사를 거쳐 2000년 대표에 올랐다. 말 그대로 ‘고속 승진’이었다. 그러던 중 삼성물산은 2004년 사업에서 손을 떼고 철수했다. 지분은 모두 카작무스 파트너들에게 매각했다. 차씨는 잔류를 선택했다. 카자흐스탄을 ‘기회의 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지 고려인 3세인 블라디미르 김씨와 함께 카작무스의 지분을 대거 인수했고, 각각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을 맡았다. 김씨는 과거 사회주의 시절 지역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만큼 현지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차 전 대표의 ‘인생역전’은 2005년 시작됐다. 카작무스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면서 대박을 터뜨린 것. 시가총액이 무려 100억달러에 달했다. 그는 2006년 카작무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2007년 보유 지분(4.5%·2100만주)을 모두 처분했다. 당시 한화로 1조원이 넘었다.

차씨는 이 돈으로 그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국내 부호 7위에 올랐다. <포브스>가 산정한 차씨의 재산규모는 현대중공업그룹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같은 13억달러였다.

재계는 물론 세간의 관심이 차씨에게 쏠렸지만, 차씨는 종적을 감췄다. 소재와 근황이 전혀 확인되지 않아 항간엔 ‘망명설’, ‘실종설’, ‘납치설’이 나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사망설’까지 나돌았다. 심지어 국정원이 차씨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유수의 언론들도 거부로 떠오른 그의 행방을 추적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차씨가 잠적한 사이 의혹도 증폭됐다. 1조원대 재산형성 과정을 두고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됐다. 우선 삼성물산의 카작무스 철수 배경이 석연치 않다. ‘상장 대박’을 불과 1년 정도 앞둔 상황에서 지분을 넘긴 탓이다. 헐값으로 차씨에게 매각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차씨의 카작무스 지분 매입 배경도 수수께끼다. ‘실탄’을 어디서 구했냐는 것이다. 차씨는 자신이 100% 지분을 갖고 있던 ‘페리 파트너스’를 통해 지분을 인수했는데, 스위스계 투자사인 금융기관의 자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을 뿐 정확한 자금 루트는 밝혀진 바 없다. 차씨의 재산이 ‘차명 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경제개혁연대는 2007년 카작무스 지분 매각과 관련 ▲매각판단의 이유 ▲매각가액 산정 근거 ▲인수 상대방 확정 경위 ▲회사 손해발생에 대한 책임추궁 문제 등을 삼성물산에 공개 질의했다. 이어 이듬해 삼성 비리 의혹을 수사했던 조준웅 특검팀에 삼성물산의 카작무스 지분 헐값매각 의혹에 대한 공식수사를 요청했다.

해외 잠적…침묵

경제개혁연대는 “삼성물산의 카작무스 지분 매각 과정에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며 “런던증권거래소 상장계획이 구체화되던 시점에 지분을 매각한 것과 주당 순자산가액 및 당시 시장 거래가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 그 지분을 차씨가 인수한 배경 등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삼성물산은 차씨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회사 측은 지난 18일 해명자료를 통해 “구리시장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해 카작무스 주식을 팔고 철수했다”며 “지분은 페리 파트너스사에 매각한 것으로 차씨에게 매각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헐값매각도 아니다. 선진국 증권거래소 상장은 장기간 어렵다고 보고 무수익 자산 처분에 나선 것”이라며 “카작무스를 매각하기 전인 2003년 회사를 퇴직한 차씨와 전혀 접촉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행방이 묘연한 차씨는 현재 홍콩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속이 아닌 자수성가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는 점에서 샐러리맨들의 모델이 되고 있는 차씨. 차씨의 성공 신화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실이 밝혀질지, 이번 국세청 조사 결과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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