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한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 김종욱 회장

2017.04.03 10:52:42 호수 1108호

“내가 잘해야 한국이 대우받죠”

[일요시사 취재 2팀] 최현목 기자 = 한인 사회의 거목이 15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일찍이 이역만리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한 김종욱 ‘골든 핸드 오브 스테이튼 아일랜드’ 회장은 최근 스포츠 오스카상으로 통하는 ‘월드 스포츠 레전드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조국을 빛냈다. <일요시사>는 출국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이 회장을 직접 만났다.



“반갑습니다. 김종욱입니다.”

3월28일 오후 8시, 약속 장소에 먼저 와 기다리던 김 회장은 취재진을 보자 인사를 건넸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42년, 한국을 찾은 지 15년 만이었지만 모국어를 잊지 않았다. “한인들끼리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까먹지 않게 되더군요.” 김 회장은 겸연쩍게 웃었다.

그랜드마스터

김 회장은 현지서 ‘태권도 그랜드마스터 김’으로 불린다.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지난 1975년 39세의 나이로 미국에 건너간 김 회장은 동양인에 대한 편견에 부딪혔다. 당시 미국으로 건너간 다른 한인들처럼 김 회장도 병원 등에서 근무했다. “동양 사람을 우습게 봤죠.” 김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하루 3∼4시간 자며 노력한 결과 롱아일랜드대 학사 학위를 1년 만에 취득했다.

동대학 석사 학위도 1년 만에 취득한 김 회장은 그 대학 부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에게 신체학과 재활심리학을 강의했다. 근무하던 병원에선 600명을 거느리는 총책임자로 올라섰다. 모든 게 그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42년 전 미국 건너가 태권도 전파
성공한 사업가 “얻은 만큼 기부”

무엇보다 지금의 김 회장을 있게 만든 건 태권도였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군 부대 통역관으로 근무하면서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김 회장은 미국서도 태권도 사랑을 이어갔다.

김 회장은 일찍이 도장을 차려 미국 내 태권도 전파에 힘썼다. 여러 수련생들이 김 회장의 도장을 찾았다. 개중에는 발표력이 부족한 아이도 있고, 학교에 잘 나가지 않는 소위 문제아(Problem Children)도 있었다. 김 회장은 한 명 한 명 놓치지 않고 태권도의 정신을 전달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매사 자신감이 없던 아이가 당당히 손을 들고 자신의 생각을 발표했다. 문제아는 예의범절을 지키기 시작했다. 수련생들의 성적도 덩달아 향상됐다.

“도장을 다니고부터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학교를 안 가던 아이들이 꼬박꼬박 등교하니 성적도 좋아졌죠. 사고만 치던 녀석들이 6개월 만에 선생님(Sir)이라며 제게 인사를 다하더군요.”

덕분에 김 회장의 태권도장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앞다퉈 김 회장의 도장에 아이들을 보냈다.

“자식 잘 키우고 싶은 생각은 동서양이 따로 없습니다. 한날은 부모가 찾아와 ‘내 아들을 이렇게 변화시켜줘서 감사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하더군요.”

문무(文武)를 모두 중시하는 김 회장의 평소 지론이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한국에 있을 당시 태권도 사범이자 도서관장으로 일하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유명 작가들의 책을 찾아보며 미국에 대해 알아갔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서 나온다’는 말처럼 도장에서 집중력, 절제 등 성공의 기초를 가르쳤습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집이 무너지듯 인생도 기초가 잘 닦여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철학을 (미국인들에게) 가르쳤다는 점입니다.”

현재 김 회장은 미국서 태권도장 13개를 운영하고 있다(스테이튼 아일랜드 3개, 뉴저지 3개, 코네티컷 3개, 필라델피아 4개).

김 회장은 곧 유명세를 탔다. CNN, NBC, ABC, CBS, 폭스 채널 등 방송과 지역신문 등이 그의 성공 스토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익히 잘 알려진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도 출연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모나코서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 스포츠 레전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이 상은 각 종목 최고 스포츠인에게 주어지는 권위 있는 상이다. 이로써 김 회장은 펠레, 무하마드 알리, 마이클 조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굉장한 사람들이 타는 상이라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현장서 상을 받고 내려왔는데 아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 외에도 김 회장은 ‘블룸버그 뉴욕시장 공로상’ ‘조지 패타키 뉴저지주지사 공로상’ ‘찰스 슈머 연방상원의원 공로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스포츠 오스카상’ 수상 영광
펠레, 알리, 조던과 나란히

김 회장은 사업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부동산 투자에 성공해 현재 20여개에 이르는 건물과 쇼핑몰을 소유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김 회장은 미국호텔경영학회 아카데미에서 주는 ‘파이브 스타 다이아몬드클럽- 평생업적상’을 수상했다.

주최 측은 “태권도 사범이자 사업가로서 뛰어난 업적을 이뤄낸 김 회장이 현재와 미래 세대에 귀감이 된다”고 전했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스포츠인인 김 회장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얻은 만큼 기부해야 한다”는 평소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지역 병원, 봉사기관 등에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 정부서 김 회장의 공로를 치하, 그의 이름을 딴 ‘그랜드마스터 김 웨이(Grand Master Kim Way)’를 만든 것만 봐도 그가 지역사회서 얼마나 존경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9번을 넘어져도 10번째 일어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무도(무예 및 무술을 통틀어 이르는 말)서뿐만 아니라 다방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도전하는 정신 덕분입니다. 어떤 고난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만 있으면 좋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김 회장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한국인은 창조적이고 부지런합니다. 그런 좋은 기초를 가지고 있어 어디서든 큰 뜻을 펼칠 수 있습니다. 전 그런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잘해야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이 대우를 받고,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앞으로 ‘코리안 프라이드(Korean Pride)’ ‘와우 코리아(Wow Korea)’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chm@ilyosisa.co.kr>


[김종욱은 누구?]

▲1936년 전남 해남군 출생
▲광주고 졸업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군부대 통역관
▲롱아일랜드대학원 MS 졸업
▲롱아일랜드대 Physical Science 전임강사
▲현 골든 핸드 오브 스테이튼 아일랜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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