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역시나 박근혜다웠던 청와대 퇴거

2017.03.13 09:34:26 호수 0호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10월2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이같이 말했다. 역설적으로 그랬던 그가 작금이 되어선 전형적인 내로남불 행태를 보이고 있다.

혹시나했지만 역시나였다. 박근혜다운 청와대 퇴거였다. 정치권은 물론 전 국민이 지난 12일, 그의 청와대 퇴거를 지켜봤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재판관 전원일치의 인용으로 판결이 나면서 이틀 만에 내려진 조치였다.

헌재법 상 판결은 내려진 직후부터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데 “전 삼성동 사저가 보일러 등 시설이 정비되지 않아 바로 들어가기 곤란하다”고 밝히면서 '퇴거 시점 논란'이 불거졌다. 이와 동시에 최고 헌법기관인 헌재의 판결에 대한 전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가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상당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대통령직 파면인데다 헌재의 결과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어하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판결 직후부터 언론과 정치권도 그의 입을 주목했지만 이렇다할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드릴 말씀이 없다”며 헌재 판결에 대해 불복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내놨다. 물론 본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각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헌재 판결은 7:1, 6:2도 아닌 8인 전원일치 인용 선고가 나왔다. 그만큼 비선 실세를 통한 국정농단 사건에는 이견이 달릴 수 없다는 단호한 판결이었다.

박근혜의 불복 메시지는 퇴거 후인 12일 저녁에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그는 삼성동 사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박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 나누며 대화를 나눴다. 취재진과 지지자들이 한 데 뒤섞여 해당 대화내용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내내 만면에 회색을 띤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국민들 상당수는 이 즈음해서 "헌재의 판단을 깊이 수용합니다"라는 그의 발언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뒤로 하고는 친박 의원들과 대화를 나눈 뒤 사저 안으로 사라졌다. 내심 기다렸던 ‘헌재 판결 수용’이나 ‘사과발언’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이는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선고 발언을 통해 “피청구인(박근혜)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헌재의 판단은 적중했다. 그는 헌법의 가치는 물론 헌재의 결정조차 무시했고 퇴거 이후에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렸다.

그는 오히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소명 마무리를 못해 죄송하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며 여전히 헌재의 탄핵 결정을 수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직접 발언한 것도 아니고 전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의 입을 빌어서였다.

상당수의 국민과 최고 헌법기관의 결정에 대한 마지막 예의마저도 포기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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