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뽑기-파친코 평행이론

2017.03.07 08:53:26 호수 1104호

'운9기1' 게임이냐 도박이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인형뽑기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관련 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낮은 확률에 목메는 사람들을 보고있자면 지금은 자취를 감춘 파친코가 떠오른다. 인형뽑기와 파친코의 확률 조작.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지난 5일 새벽 대전의 한 인형뽑기방을 찾은 남성 2명이 2시간 동안 인형 200개 이상을 뽑아 논란이 됐다. 공개된 CCTV에는 두 남성이 족족 인형뽑기에 성공한 뒤, 들고 온 커다란 봉투에 인형을 쓸어 담았다.

두 남성은 인형뽑기 기계의 조이스틱을 특정한 방향으로 수차례 움직여 집게가 인형을 집을 때 악력이 커지도록 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일부 인형뽑기 기계는 게임 중에 조이스틱을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면 미리 설정된 ‘뽑기 확률’을 조절할 수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누구의 잘못?

두 남성이 꼼짝없이 ‘절도죄’로 처벌되는가 싶었지만 상황이 반전됐다. 점주가 30번에 1번 꼴로 인형이 뽑히도록 ‘뽑기 확률’을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경찰이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점주가 엉뚱하게도 ‘양심고백’을 한 것이다.

사실 인형뽑기 기계의 ‘뽑기 확률’이 조작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조이스틱을 잘 조작해 인형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힘없이 놓쳐버리는가 하면 뽑기를 목전에 둔 순간 집게가 미세하게 벌어지며 인형을 떨어뜨린다.


수많은 인형뽑기방에서 20∼30회를 하면 기껏해야 1회 정도 뽑을 수 있도록 조작해놓은 것이다. 이 게임은 1회에 500원꼴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 등에서는 인형뽑기방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주로 ‘확률 조작’을 문제 삼았다.

“(인형이) 안 뽑히게 조작한 점주를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ghr*****) “기계를 부순 것도 아니고 조이스틱 조작해서 뽑은 게 왜 절도?”(gg11*****) “인형뽑기 조작이 아니라 달인이라고 해야 한다”(ddol*****)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인형뽑기 ‘확률 조작’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이 필요하다”(haru*****)는 주장도 제기됐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인형뽑기 기계를 조작한 두 남성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돈을 내고 게임을 했기 때문에 형사 입건될 만한 행동을 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를 파손하거나 외부서 확률을 조작한 게 아니라 게임 내에서 특정한 ‘기술’을 활용한 것인 만큼 절도나 사기 등 범죄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30번에 1번꼴로…“실력 아닌 운”
기계 확률 조작도 공공연한 비밀

대전서부경찰서 측은 “아직 입건 단계는 아니다. 추가로 조사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인형뽑기 조작’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를 놓고 경찰이 고민에 빠진 가운데 누리꾼들 사이에서 “뽑기 확률 조작부터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예전 파친코와 공통점이 많다. 한국에도 불법 도박장서 암암리에 파친코가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단 사행성 게임이 전면적으로 불법으로 지정되고 걸리면 족족 국가 차원의 특별 수사에 나서 말 그대로 박살을 내고 있다보니 일본처럼 양지에 버젓이 드러나지는 못하고 있다.

1950∼1960년대 파친코 영업 자체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1960년대 초 제3공화국 출범 직전 터진 4대 의혹 사건 중 하나로 정계와 사회를 뒤흔든 회전당구기 밀수사건이 터졌고 이 회전당구기가 바로 파친코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드나들던 부산의 유흥가에는 이런 요상한 구슬놀이 가게가 몇몇 있었고 불법이었기는 하지만 주된 고객이 일본관광객이라 공권력도 외화획득을 이유로 심하게 단속하지는 않았다.


1990년대에는 슬롯머신 파문이 있었고 2000년대 초에는 바다이야기 열풍과 함께 파친코 비슷한 기기들이 상륙하기도 했으나 바다이야기가 법의 철퇴를 맞으면서 함께 몰락해 음지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후 파친코는 국내서 발을 붙일 수 없었다.

모든 파친코 기계는 최소 확률 이하로 설정하는 것을 금하고 있으나 단속을 피해 그걸 조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우라 또는 우라 ROM 또는 원격조작이라 칭하는데 공식적으로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나 아무래도 확률싸움인 업계이다 보니 각종 소문이 난무했다.

이렇게 큰 리스크를 지고 롬을 조작하는 것보다 박혀있는 못의 배치를 미묘하게 바꿔 배꼽에 구슬이 들어가기 어렵게 하는 게 업소 입장에선 훨씬 쉽기 때문에 그걸 더 많이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파친코는 대박이 터진 후 게임을 한 횟수를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때쯤 하면 되겠다고 판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인형뽑기는 확률에 대해 철저히 숨겼다. 소문만 무성했지 이번 사건이 아니었으면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번에 뉴스에서 뽑기를 한 남성들이 처벌된다면 인형뽑기 확률 조작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처음 고객들이 인형을 뽑을 때 확률이 조작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까? 당연히 기계는 같은 힘으로 작용하며 본인의 컨트롤 스킬에 의해 당락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으로 ‘한 번 더’ 하게 되는 것.

한 법조계 관계자는 “만약 이 남성들을 처벌해야 한다면 인형뽑기방에 ‘본 기계는 확률이 조작된 기계입니다. 30번 중 1번만 집게의 힘이 강해지는 점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있었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류를 활용해 집게가 매번 강해지게 했다면 분명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벌 기준은?

과거 인형뽑기 사업을 했다는 네티즌은 “나도 인형뽑기 사업을 했지만 저 업주는 정말 양심이 없다. 마음 곱게 가질 사람은 업주”라며 “전국에 있는 인형뽑기 기계 99%가 조작이다. 조작에 속아 돈 날릴 일 없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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