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 감시?’ 스마트폰의 두 얼굴

2016.11.14 11:26:58 호수 0호

일단 폰부터 들이대고 보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국민 90%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정도로 우리는 스마트폰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7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스몸비(스마트폰+좀비의 합성어)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이처럼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가 돼있다. 그러면서 어떤 순간에든 스마트폰부터 꺼내드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서 지하철 정비업체 직원이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한 20대 남성 조모씨는 강남역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 정비 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끔찍한 사고의 원인이 ‘설비 유지·보수 외주화’ 등 인재로 밝혀지면서 누리꾼들의 공분이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누리꾼을 들끓게 한 건 현장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올린 글이었다.

나몰라” 역효과

자신을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이라고 밝힌 누리꾼은 “쿵 하는 순간 피 튀기고 살점이 날아가는데,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이어지는 건 시민들의 구조가 아니었다”며 “사람 죽어가는 걸 자기 SNS에 올리려고 하는 건지. 그 죽어가는 사람을 찍느라 정신없는 스마트폰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사건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보다 그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찍거나 찰칵찰칵 소리 내면서 사진 찍는 분들 때문에 더 무서웠다. 당신들은 분명 사람이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실제 SNS상에 숨진 조모씨의 사진이 배포됐다가 삭제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방관자 효과'라는 말이 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지난 8월 대전 서구의 한 도로에서 60대 이모씨가 몰던 택시가 앞차와 추돌한 후 30m가량 주행을 이어가다 멈췄다.

이씨는 운전 중 심정지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문제는 함께 타고 있던 남녀 승객이 119 신고 등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짐을 챙겨 현장을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공항버스 시간이 촉박하다며 황급히 자리를 뜬 승객들은 귀국 후 경찰에게 자신의 입장을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승객들은 “사고가 났을 때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전부 신고하고 있었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승객들의 행동은 일종의 방관자 효과라 볼 수 있다. 지난 10월에도 서울서 이와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누리꾼들은 승객들의 행동에 대해 “야멸차다”며 비난했다.

스마트폰의 발달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하면서 실시간 SNS 사용을 가능케 했다. 문제는 사고 현장에서 자리를 뜨는 수준이 아니라 SNS에 올리기 위해 현장을 촬영한 뒤 실질적인 조치 없이 사라지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률 90% 육박
양면성 공존하는 손 안의 컴퓨터

지난달 인터넷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짧은 동영상이 올라왔다. 동영상에는 지하철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옆에 앉은 노인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노인은 여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허리를 만지는 등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동영상을 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노인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영상 촬영자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학생이 성추행 당하는 동안 촬영자는 스마트폰만 들이대고 있었느냐’는 비판과 ‘증거 수집을 위해 촬영한 것 같다’는 옹호가 뒤섞였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람이 사후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같은 사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올라오곤 한다. 길에서 행인끼리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하는 모습, 여성이 술을 먹고 길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 심지어는 보행자가 자동차에 치이는 모습 등이 촬영돼 SNS에 올라온 일도 있었다.


스마트폰을 통해 촬영된 영상이 SNS에 올라가는 순간 비극적인 사고 현장이 볼거리나 유흥거리로 전락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각)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정부군이 진행한 모술 탈환작전이 스마트폰을 통해 생중계됐다. 포탄이 터지면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 장면이 SNS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면서 시청자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전쟁 참상이 스마트폰 중계를 통해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스마트폰은 대학가 풍경도 바꿔놓았다. 최근에는 대학 강의 시간에 교수가 준비한 자료나 판서를 노트 필기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교수가 칠판에 판서를 한 후 자리를 살짝 비켜주면 학생들은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 촬영을 통해 기록하는 게 일상처럼 돼버렸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런 대학 강의실 풍경이 담긴 사진이 올라오자 누리꾼들은 “열심히 준비한 교수가 허무할 듯” “씁쓸하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스마트폰이 수십년 동안 이어진 강의실 풍경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손 안의 컴퓨터’가 마냥 씁쓸한 상황만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범죄가 일어났을 때 스마트폰 그 자체가 증거가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9년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디지털 포렌식'(데이터를 복원, 수집, 분석하는 수사방법)은 658건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컴퓨터와 CCTV 분석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모바일 기기 증거 분석은 매년 80% 이상씩 급증했고 2013년에는 7332건으로 급증했다. 2013년 7월 기준으로 성인 스마트폰 사용률이 70%가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016년 현재 전체 디지털 포렌식의 70% 이상이 모바일 기기 분석일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지난 2013년 9월 경기도서 등교하던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 CCTV를 뒤져 20대 남성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잠복 끝에 검거했다.

이 남성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피해자의 사진을 지우고, 경찰에 “증거를 대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이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복원한 사진을 들이밀자 범행을 인정했다.

스마트폰이 증거물로서 가치가 높은 것은 개인이 늘 갖고 다니며 사용하기에 사건 전후의 행적과 성향 등 사용자 정보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통화 기록을 포함해 사진, 동영상, 문자메시지, SNS 사용 내역 등은 사건 해결의 유용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스마트폰에 남은 인터넷 검색 기록 역시 수사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2013년 8월 서울 강동구에서 부친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의 스마트폰에서는 ‘혈흔 지우는 법’ 등을 검색한 흔적이 나왔다.

스마트폰은 ‘손 안의 카메라’ 기능을 하며 억울한 상황의 증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SNS를 통해 억울한 일을 고발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일각에선 SNS가 ‘국민신문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봤다. 그 과정서 스마트폰을 통해 수집한 사진이나 영상, 음성 자료 등은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지킴이 역할도

스마트폰으로 찍고 SNS에 게시된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긴급상황을 알리는 것은 이미 일상처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고가의 자전거를 잃어버린 이용자가 사진을 올리고 도움을 요청하자 전국에서 관련 사진이 올라와 결국 범인을 잡고 물건도 찾은 사례도 있었다. 잃어버린 반려동물, 실종된 사람 등을 찾는 데도 스마트폰은 CCTV 노릇을 하며 가족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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