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얼한’ 영화 <내부자들> 실사판 '재구성'

2016.09.06 08:33:34 호수 0호

영화보다 현실이 더하네…혹시 결말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우리나라 상위 1%들의 맨 얼굴이 연일 언론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사 주필, 고위 관료, 기업 총수, 검사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어두운 일면이 폭로 형식으로 터져 나온다. 이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그럴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 썩지 않은 곳이 어디냐’ 등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실사판 <내부자들>을 들여다보자.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이 최근 화제다. <내부자들>은 3류 조폭과 족보 없는 검사가 언론, 정재계, 검찰 등 우리나라 상위 1%들의 민낯을 낱낱이 노출하고 복수에 성공하는 과정을 그려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했다. 그 결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9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 개봉 당시에도 큰 화제를 모았던 <내부자들>은 2016년 현재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등장했다. 이번엔 쾌감이 아니라 찝찝한 뒷맛을 남기면서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영화가 현실을 못 따라간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영화 <내부자들> 속 에피소드가 현실에 하나씩 나타나면서 나온 말이다.

<#1> 언론+기업

영화 속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는 신문사 최대 광고주인 미래자동차에 대해 우호적인 칼럼을 쓴다. 미래자동차 오현수(김홍파) 회장은 이강희의 칼럼을 보며 “우째됐건 참 좋은 일이데이. 언론사와 기업이 마케팅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것”이라며 “이 주간 앞으로도 좋은 글 고대하고 있겠데이”라고 말한다.

이강희는 칼럼을 쓰거나 신문 편집 방향에 관여하며 미래자동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주무른다. 미래자동차는 그 대가로 신문사에는 광고를, 이강희에게는 접대를 한다. 언론과 기업이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셈.


현실도 영화와 유사하다. 지난달 29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조선일보 전 주필 송희영씨가 대우조선해양이 임대한 전세기를 타고 호화 외유를 다녔다고 폭로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송 전 주필은 2011년 9월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전 사장 등 전직 경영진의 출장에 동참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전직 경영진과 송 전 주필,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박수환 대표 등은 유럽 곳곳을 전세기로 돌아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나폴리서 초호화 요트를 타고, 영국에선 골프 라운딩을 즐기는 등 8박9일간 들어간 경비가 2억원대에 이른다는 김 의원의 폭로도 이어졌다.

문제는 송 전 주필이 출장을 떠났던 2011년 9월 전후로 대우조선해양에 우호적인 칼럼을 썼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법조계에선 출장을 전후해 송 전 주필이 쓴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한 기사, 사설, 칼럼 등의 내용에 따라 배임수재 혐의의 적용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배임수재란 타의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할 때 성립한다.

대우조선해양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송 전 주필의 출국을 금지 조치하고 의혹에 대한 전면 조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송 전 주필의 기사나 사설 등이 대우조선해양에 유리한 방향이었는지 여부와 송 전 주필이 남 전 사장의 연임 로비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다.

아울러 송 전 주필이 고재호 전 사장의 연임을 청탁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라 사건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조선일보는 일단 송 전 주필의 칼럼과 사설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에만 비합리적으로 우호적인 게 아니었다는 입장을 낸 상태이며, 지난달 31일자 신문 1면에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언론인의 일탈 행위로 실망감을 안겨드렸다”며 사과문을 냈다.

<#2> 개·돼지 발언

영화 속 오현수 회장은 이강희 논설주간의 칼럼 ‘미래자동차 비정규직 농성 확대에 관해’를 읽으며 혀를 찬다. 칼럼은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이 국가산업과 국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현수가 칼럼을 읽으며 인상을 찌푸리자 이강희는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뭐하러 개·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며 비위를 맞춘다.

언론·정재계 유착 수면 위로
성접대·기업인 자살 ‘판박이’
 


<내부자들>서 상류층이 대중을 보는 시선은 주로 이강희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이강희는 SNS에 대해 “아무런 팩트도 없이 지껄여대는 키보드 워리어들! 걔들이 노는 데가 SNS 아닙니까? 미친개가 짖는다고 날뛰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확장판 말미에선 “어차피 그들(대중)이 원하는 건 술자리나 인터넷서 씹어댈 안주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개·돼지’ 대사는 대중들 사이서 유행어처럼 자리 잡았다. 간결한 데다 여러 의미가 함축돼있고, 현 사회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폭발력을 가진 것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이 대사를 실제로 사용하면서부터다.

지난 7월7일 나 전 기획관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서울 종로서 저녁을 함께 했다. 이 자리서 나 전 기획관은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대화내용이 담긴 녹취록에서 나 전 기획관은 “개·돼지 이야기는 영화 <내부자들>서 어떤 언론인이 이야기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기자들이 수차례 해명 기회를 줬지만 나 전 기획관은 처음 발언을 거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 전 기획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대중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대중들은 나 전 기획관을 파면해야 한다며 청원을 제기했고, 이틀 만에 1만명이 이에 동조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교육부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대응하며 지난 7월13일 나 전 기획관이 국가공무원법상 품위 유지 의무를 저버렸다며 중앙징계위원회에 파면을 요구했다. 이에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는 같은 달 19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나 전 기획관의 파면을 결정했다. 파면은 공무원에게 내릴 수 있는 징계 중 가장 수위가 높은 조치로 5년간 공무원 임용이 제한되고 퇴직금도 절반만 받을 수 있다.

나 전 기획관은 지난달 23일 인사혁신처의 파면 결정에 불복,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 청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청심사제도는 공무원이 징계처분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이를 심사해 구제 여부를 결정하는 일종의 행정심판제도다. 소청심사위원회는 60일 이내에 나 전 기획관에 대한 소청심사를 결정하게 된다.

<#3> 별장 성접대

영화 속에서 이강희 논설주간, 오현수 회장, 신정당 장필우(이경영) 의원은 오현수의 별장에서 은밀한 파티를 벌인다. 파티에는 나체의 여성들이 등장하고, 세 사람 역시 나체로 음담패설을 나누며 고급술을 들이킨다.


<내부자들>을 본 관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에 하나로 꼽는 별장 성접대 신이다. 권력층의 가장 추악한 밑바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준 성접대 장면 역시 비슷한 실제 사례가 드러나 대중을 경악케 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지난 2013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은 김학의 당시 대전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에 발탁한다. 하지만 다음날 강원도 원주의 한 별장서 고위급 인사가 성접대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별장에서의 상황이 담긴 영상을 입수했는데, 여기에 김 전 차관과 유사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건은 메가톤급으로 번졌다. 영상에는 속옷 차림의 남성이 노래를 부르다가 앞에 있는 여성을 뒤에서 껴안는 장면, 10여명의 남녀가 혼음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임명 6일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은 김 전 차관과 로비 제공 의혹을 받은 건설업자 윤중천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향응 수수 의혹을 받고 있던 김 전 차관의 무혐의 처분 사유로 관련자들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일관성이 없고,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이후 2014년 7월 피해여성 이모씨가 별장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고 주장, 김 전 차관과 윤씨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해 1월 검찰은 김 전 차관에게 또 다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무혐의 사유로 동영상 속 여성이 고소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일각에선 검찰이 김 전 차관에 대한 소환조사 한번 없이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을 두고 부실수사라는 지적이 있었다.

<#4> 검찰 조사와 자살

영화 속 한결은행 석명관(권혁풍) 전 은행장은 미래자동차에 3000억원을 불법대출해 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17시간이 넘는 조사 시간동안 석명관은 묵비권을 행사한다. 서울지검 우장훈(조승우) 검사는 미래자동차 비자금 파일을 거론하며 석명관을 흔든다.

석명관은 협조와 묵비권 행사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휴대폰으로 동영상 하나를 전송받는다. 동영상 속에는 성접대를 받고 있는 석명관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이를 확인한 석명관은 조사실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후 이강희는 칼럼을 통해 석명관의 죽음은 검찰의 무리한 조사 때문이라고 몰고 간다.

실제 검찰조사를 받던 기업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사를 받던 관련자의 자살은 검찰에겐 치명적이다. 관련자의 자살 뒤엔 검찰의 무리한 강압 수사가 원인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꼬리처럼 따라붙는다. 또한 관련자가 자살하면 검찰조사는 흐지부지되게 마련이다. 동력을 잃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인의 자살에 다른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대중의 의혹어린 시선도 부담스럽다.

최근 일어난 롯데그룹 2인자 이인원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 자살 사건도 그렇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오전 7시10분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산책로의 한 가로수에 넥타이 두 개로 줄을 만들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부회장의 차 안에서 발견된 A4용지 1매 분량의 자필 유서에는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부회장은 40년이 넘게 롯데그룹에서 근무한 정통 롯데맨이다. 2011년 전문경영인 최초로 롯데 부회장에 올랐을 만큼 오너가인 신씨 일가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이 부회장의 빈소를 두 차례 찾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40여년간 그룹 내 핵심 요직을 다 거쳤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최근 진행 중인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밝힐 주요 인물로 이 부회장을 지목해왔다.

어두운 일면 폭로 형식으로 터져
주필 파문, 부적절 발언 등 유사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자 검찰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안 그래도 난항을 겪고 있는 롯데 수사가 또 다시 혼선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무리한 수사가 있었는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검찰은 “강압적인 수사는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검찰은 지난 1일, 이 부회장의 장례가 끝난지 하루 만에 다시 롯데그룹 수사를 재개했다. 일본 롯데홀딩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는 등 본격적인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

<#5> 현실의 결말은?

영화에선 내부자가 된 우장훈 검사의 폭로로 이강희 논설주간, 장필우 의원, 오현수 회장은 일순간에 치부를 드러내며 몰락한다. 이후 교도소서 출소한 조폭 안상구(이병헌)가 변호사로 전업한 우장훈을 찾아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내부자들>서 설계자 역할을 맡았던 이강희는 교도소에 들어가고, 대통령 후보로까지 선출됐던 장필우 역시 정치인생을 마감한다. 오현수 역시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된다. 그 과정이 줄 없고 ‘빽 없는’ 검사, 3류 조폭에 의해 진행됐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큰 쾌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현실에선 어떨까. 검찰은 언론과 정재계 등의 비리, 부정 의혹을 조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검찰이 제 역할을 할수록 언론, 정치, 기업의 검은 커넥션은 느슨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그 같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내부자들> 속 안상구의 표현처럼 ‘권력의 개’로 전락했다는 조롱 섞인 비판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미 그들에 대한 기대치가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때론 영화보다 훨씬 더 어두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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