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특임발 개헌안, ‘불발탄’인가 ‘잠복기’인가

2010.12.21 09:27:43 호수 0호

예산안 날치기 여파, 이재오 ‘고장난명(孤掌難鳴)’ 내막



대통령은 외교·통상 담당, 총리는 민생·복지 담당
대통령 4년 중임제+국회서 총리 선출 ‘분권형 개헌’

이명박 대통령(MB)은 취임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입니다. 국민 모두가 꿈을 갖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MB의 최측근인 이재오 특임장관도 지금 꿈을 꾸고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헌법 제70조 조항을 바꾸자는, 이른바 ‘개헌’의 꿈이다. 4년 중임의 대통령제, 국회에서 총리와 내각을 결정 한다는 것이 주요 포인트다. 이 꿈이, 야권에서 말하는 ‘예산안 날치기에 따른 국면전환’ 차원인지, 이 장관이 말하는 보다 성숙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초석인지 여부는 국민이 직접 판단하면 된다.



정치의 본질은 사람들의 꿈을 하나 둘씩 실현시켜주는데 있다. 국회의원들도 사람이기에 꿈을 꾼다. 훗날 내각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꿈 말이다. 정말 이러한 꿈을 품고 있다면, ‘국회에서의 총리 및 내각 선출’이란 명제와 관련된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개헌 의도 순수하면
여야 모두 참여 가능

여당의 예산안 단독처리로 정국이 헝클어진 지난 9일 이후, 이 장관은 ‘분권형 개헌’과 관련된 이슈를 다시 꺼내들었다. 정국 전환용 아니냐는 질문엔 “사전에 G20과 정기 국회가 끝난 뒤 논의하자 말했고, 지금이 그 타이밍”이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는 국방·외교·통상 등 외치(外治)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하고, 민생·복지 등 내치와 관련된 것은 국회에서 꾸민 내각이 책임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추진하자고 주장했다. 출장을 바쁘게 마치고 돌아온 MB에게 배추값 폭등 보고를 해야 되는 상황이, 그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했다. 내치와 관련된 소소한 것은 총리가 직접 챙기고, 대통령은 보다 큰 틀에서의 고민을 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 장관은 “만일 한 정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수가 되면 혼자 내각을 꾸리고, 안 되면 연정을 해야 한다”면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면 대통령을 만들지 못한 정당도 원내 제1당이 될 수 있고, 1당이 안 돼도 대통령을 낼 수 있다. 동서 갈등도 해소할 수 있다”고 지난 1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여당의 예산안 단독처리 이전만 하더라도 이 장관의 꿈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18대 국회의원 상당수가 개헌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는 상태였고, 야권 일부에서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 결과 2008년 7월, 여야 국회의원 186명이 두루 참가해 미래한국헌법연구회를 출범시켰다. 또한 지난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주도했던 헌법연구자문위원회(위원장 김종인)에서 600쪽이 넘는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며, ‘개헌의 범위와 한계’를 정리했다. 개헌 관련 가이드라인은 어느 정도 나온 상태다.

머릿속 복잡한 박지원
더 복잡한 박근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8월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민주당의 협력 없이는 개헌이 안 된다”며 “나는 개헌찬성론자이고 민주당 상당수 의원들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지만, 이재오 방식으로 정략적으로 접근한다면 이 정권에서 개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개헌 관련 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그 후 이 장관과 박 원내대표의 ‘개헌-4대강’ 빅딜설도 심심찮게 제기됐다. 이에 유시민 국민참여당 국민정책연구원장은 지난 10월 26일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친이계 의원들이 비공개 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 장관,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박 원내대표가 연대해 이미 200석 가량의 의석을 확보했다는 시나리오도 흘러나왔다. 개헌 가능 의석이 확보되면, 그걸 토대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충분히 회유 또는 압박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이 장관이 말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권한을 일부 줄여 박 전 대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지만, 4년 중임은 박 전 대표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당근책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공은 고심하는 박 전 대표에 넘기고, 연대 혹은 이별의 취사선택을 강요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이 시나리오의 요체다. 재적 의원 297명의 현 상황에서, 헌법 개정 의결정족수는 재적 인원의 2/3인 198명이다.

개헌 관련 이야기들에 대해, 지난 2달여 간 유력 대권 후보군에서는 부정적인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친박 측 한 인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그거(개헌) 말씀하시는 분들은, 전부 현 정치권에 지분이 어느 정도 있으신 분들 아니냐. 액면 그대로 순수하게 믿기가 좀..(어렵지 않겠냐)”라며 “받아들이기까지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친박 측에서도 “특정인, 특정 정파가 주도하는 개헌은 성사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유력 대선 후보들
개헌 주장은 “정략적”


한편 박 전 대표는 아직 개헌과 관련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꾸할 일고의 가치가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안에 대해 장고(長考)중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오히려 주변에서 설왕설래중이다. 또 다른 여권 대선 후보군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5년 단임은 비효율적이라 개헌 논의는 필요하나, 적용은 차기로 넘어가야 된다”며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5년 단임제는 큰 문제가 없고, 개헌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선명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야권 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 유시민 원장도 한 목소리로 개헌 반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손 대표는 지난 10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명박 정부가 2년밖에 남지 않은 이제, 한나라당이 개헌을 하자는 것 자체가 억지”라며 “다음 정권에서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유 원장도 “이것은 정치도의에 어긋나고 국민을 매우 무시하는 정략적인 개헌추진 시도”라며, 개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 정부 내에서는 아니라고 본다”며 “여러가지 발표도 하고 회의도 하고 그랬지만 국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지 않나? 이는 국민들이 (개헌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얼어붙은 현 정국과 관련해 “지금은 개헌 논의보다 자숙할 때다. 자성하고, 풀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9일 여당의 예산안 단독처리 이후, 개헌을 지지하던 민주당측 일부 인사들이 반대로 입장을 선회했다. 박 원내대표는 “국회를 짓밟아 놓고, 무슨 개헌 얘기냐? 한나라당 내에서 통일된 의견이 나올 수 없다. 나도 개헌 찬성론자지만 지금은 물리적,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동참하려 한 민주당 인사들이 발을 뺀다면, 이 장관을 위시한 친이계만 남아 추진 동력을 잃게 된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되든 안 되든 이건 내 정치 일생의 마지막 소신이다. 내년 상반기 안으로 결론을 내야 한다. 되면 되는 것이고, 안 되면 개헌 논의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안 강행 처리를 끝으로, 이재오발 개헌안이 불발탄으로 남게 될 지, 혹은 일시적인 잠복기를 거친 뒤 다시 논의될 지. 이는 이 장관의 진정성, 그리고 의원들의 꿈과 현실의 간극 차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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