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명동 노점의 세계

2016.05.16 11:32:09 호수 0호

하루 매출 100만원 ‘재벌 안 부럽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오늘날의 노점은 더 이상 서민을 위한 삶의 보루가 아니다.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함은 물론 ‘기업형 노점’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일정한 규제로 노점을 허용·제재하고는 있지만, 노점의 실질적 약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점에서도 논란이 제기된다. 이렇다 보니 세금을 내고 당당히 영업하는 자영업자들과의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 기본적으로 점포 임대료에 부수적 비용이 나가는 자영업자들은 가격경쟁력에서도 노점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울상이다.



늦은 밤 동네 어귀 노점에서 파는 어묵, 붕어빵, 떡볶이는 별미 중 별미다. 이들 노점상들은 대개 가게를 임대할 만한 돈이 없어 최후의 생계 수단으로 노점을 선택한다. 대부분의 노점이라 하면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생계형 수단의 장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노점의 이점 아닌 이점을 이용한 기업형 노점이 생기면서 빈곤층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노점 일부가 불법 이익 추구 대상으로 악용되고 있다.

계열사처럼…
3∼4개 운영도

노점상에도 등급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어 나왔다”라는 생계형 노점부터 하루 매출 100만원 이상 올리는 기업형 노점까지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에 노점이 생겨난지 20∼30년 이상 지나면서 노점 세계에도 부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노점 재벌이다. 마치 재벌 기업처럼 문어발식으로 노점을 운영하는 기업형 노점이 있는가 하면 상가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변에 노점을 차리는 프랜차이즈식 노점도 나타났다.

‘대한민국 노점상 1번지’라고 불리는 서울 명동의 중앙로. 이곳의 노점상들은 전국 노점상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명동에서 노점을 할 수만 있다면 로또복권 당첨 행운과 맞먹을 정도로 인생을 보장받은 셈이다. 그래서 명동은 ‘노점상의 엘도라도’라고 불린다. 유명세나 자릿세, 매출 규모에서 종로나 강남 일대의 생계형 노점상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이 지역 노점상 상당수는 개인이나 특정 조직이 여러 노점을 ‘거느리는’ 기업형인 점이 특징이다.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권리금은 최하 5000만∼7000만원선. 연간 70만원 남짓한 임대료에 월 10여만원의 사용료를 내는 종로나 강남 지역의 수십 배 이상이다.


소위 ‘노른자위’ 지점은 수천만원의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 이곳을 단속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핵심상권’의 경우 2평 남짓한 좌판의 권리금이 1억원을 웃돈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싼 ‘자릿세’에도 대다수 노점상은 ‘중앙로 입성’에 목을 맨다. 비용을 빼고도 매달 최하 800만원의 순익이 보장되기 때문.

한 상인은 “1억원 이상의 권리금이 붙는 ‘명당’의 경우 하룻밤에 200만∼300만원을 벌어들인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명동지역 전체 노점 230여개 중 중앙로 일대의 노점 수는 60여개. 노점 형태는 크게 리어카와 일명 ‘짝다리’로 불리는 키 낮은 리어카, 벽걸이 좌판 등으로 나뉜다. 영업시간은 오후 5∼10시. 일부 노점상들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거나 2교대로 영업을 한다. 화장실은 인근 은행 등을 이용하고 물은 공동수도가 없는 탓에 멀리서 차로 운반해온다. 한 노점상은 “식사는 교대로 노점을 봐주면서 인근 식당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노른자위’ 권리금만 최고 1억원
자녀에 명당자리 대물림하기도

노점상 절대 금지구역인 명동 한복판을 점령하고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들은 20년 넘게 독자적인 상권을 형성한 ‘명물’로 인정해달라는 입장이다. 모자 노점을 하는 김모(32)씨는 “수천만원의 권리금은 극히 일부 노점에 국한된 사례이며 생계형 노점이 대부분”이라며 “거리 청소와 쓰레기 관리는 물론 가급적 인근 상가에서 취급하는 품목은 판매를 자제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동의 노점은 오후 5시부터 연다. 이는 노점상끼리 만든 상조회에서 약속한 사항이다. 각자 정해진 위치에 매대가 설치되면 본격적인 장사가 시작된다. 명동 노점상들의 ‘취급품목’은 주로 여성용 액세서리나 의류, 각종 먹을거리. ‘종목’에 따라 마진도 천차만별.

가장 높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품목은 목걸이, 귀걸이 등 여성용 액세서리. 동대문, 남대문 시장에서 300∼500원에 대량 구매해 2000∼3000원에 판다. 먹을거리 노점처럼 조리기구 등 별도의 장비가 필요 없는 탓에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매출’을 올릴 수 있어 업계 선호도가 높다.

또 여성용 속옷이나 의류, 모자 등도 고수익을 보장한다. 한달 평균 500만∼1000만원의 순이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인기 업종은 기존 노점상들이 ‘꿰찬’ 경우가 많아 신입 노점상들은 좀처럼 취급할 수가 없다. 먹을거리 노점의 경우 주로 호떡, 계란빵, 어묵 등을 판매한다.

꿈 키우는 사람들
로또가 따로 없네

10년째 호떡 노점을 하고 있는 김모(45)씨의 경우 장비를 갖추는 데 100만원이 들었다. 7만∼8만원어치의 재료비로 호떡 400∼500개를 만든다. 재료비 160원에 초기 비용을 합친, 개당 원가 200원인 호떡을 500원에 팔아 300원이 남는다. 이 가게의 하루 평균 매출은 20만원선. 붕어빵이나 닭꼬치 등은 경기도에 있는 공장에서 반죽과 재료를 사서 만든다. 그러나 부대장비를 갖춰야 하고 마진이 낮아 별 인기가 없다.

이밖에 가짜 유명브랜드 의류를 판매하는 노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식 상가’들은 이들에 대해 관광특구로 지정된 만큼 외국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 쇼핑명소의 이미지를 실추한다며 당국의 단속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중구청은 노점상의 ‘완전근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음성적인 권리금 거래는 밝히기 힘들 뿐더러 조직화된 노점상들의 반발로 단속에 낭패를 겪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노점을 벌이다 적발되면 과태료만 물고 이튿날 다시 영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월 최하 500만원
조폭과 연계설도

전국 단위로 노점의 분포와 매출 규모 등을 파악한 자료는 아직 없다. 서울시가 파악한 서울시내 노점 수는 지난해 기준 약 8800곳에 달한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노점 영업이 증감하는 폭이 큰 데다 축제나 대형 행사 등 이벤트 위주로 영업하는 노점의 수는 집계하기조차 어려워 현실적으로 정책 대상이 될 노점의 수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여기에 일반 상가 건물에 매장을 갖고 있거나 임대 중인 상인이 매장 앞 보도를 이용해 노점을 여는 식의 영업 형태까지 있다. 노점상인들의 구성은 천차만별인 데 비해 노점 정책은 강경 단속과 암묵적 인정 사이에서만 왔다갔다 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만 놓고 보면 (노점상들이) 불법인 거 우리가 잘 알죠. 그런데 강제 집행해도 얼마 안 있으면 또 그 자리에 들어와 버리니까 사실 예산 낭비인 면도 있어요. 그렇다고 전면 합법화하면 일반 상인들이나 주민들 민원에다가 법령에 조례에 엄청 복잡해져서 들들 볶일 텐데, 그건 그거대로 정착할 때까지 문제가 많을 거예요.”

익명을 요구한 한 구청의 관계자도 속내는 복잡했다. 그는 오히려 법이 현실을 그대로 다 담을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물리력을 쓰지 않기로 하는 서로간의 신사협약을 맺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노점단체 관계자와도 의견이 통했다.

노점상연합 관계자는 “일단 소모적인 단속만이라도 멈추고 서로 조금씩이라도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은 서로가 너무 불신이 커 한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즉 거리를 불법점유한다는 인식을 조금만 전환하면 거리를 합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세금이 노점상들의 아킬레스건인 건 맞다. 인정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자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대기업들은 더 많이 탈세하고 일반 상가의 상인들도 길에다 비품 내놓고 도로 무단점유하는 부분도 많다. 형평성 차원에서 그 정도만이라도 양해를 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생활정보지에 창업컨설팅 광고까지
자기들끼리 조합 만들어 엄격 통제


노점은 더 이상 생계를 잇기 위해 거리로 나온 빈곤층이 아닌, 세금을 피하려는 부유한 탈세 상인으로 변질됐다. 노점 창업을 컨설팅한다는 광고가 생활정보지에 실리고 노점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했는가 하면, 노점매매 브로커까지 활개치고 있을 만큼 ‘길거리 협동조합’은 이제는 하나의 풍경이 됐다. 노점을 운영하는 박모(45)씨는 “노점상 조합은 칼만 안 들었지 깡패”라고 했다.

실제로 일부 지역의 노점상은 폭력배가 ‘관리’하고 있다. 노점조직은 일사불란하고 폐쇄적이다. 20년 넘게 독자적으로 상권을 관리해온 노하우도 상당하다. 이러한 노점 조직은 먹을거리,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의 노점 수를 알맞게 배합해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막고 있으며 노점 매매 또한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권리금을 받고 노점을 넘겼다가 조직에 적발되면 노점에 대한 영업권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이 주변 상권의 영업을 방해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도상 영업시설물’과 달리 번화가, 유흥가에 늘어선 노점을 정비하는 것은 어렵다.

서울시는 특정 지역에 ‘노점상 거리’를 꾸려 노점들을 입주시킨 뒤 관광명소로 꾸민다는 복안이다. 장기적으로는 도로점용료를 받는 등 노점상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점상 조직들은 “생존권을 말살하는 행위로 즉각 철회돼야 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계속해서 노점상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단속이 쉬운 변두리의 생계형 노점만 일시적으로 사라졌을 뿐 중심가의 조직화한 기업형 노점은 손도 대지 못했다. 게다가 번화가, 유흥가에 자리 잡은 기업형 노점은 더 이상 훈훈하지 않다. 카바이트 불빛의 ‘낭만’은 스러지고 ‘비즈니스’만 남았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포장마차 3∼4개를 철거하는 데만 1년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형 노점을 뿌리 뽑겠다고 작심한 뒤 수년간 역량을 집중해 꾸준히 단속해나가지 않는다면 노점을 정비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액세서리 장사 짭짤
알바 고용… 2교대

세금과 비싼 월세에 허덕이는 영세 상인들 눈에 싼 가격을 무기로 손님을 빼앗아가는 노점상들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렇다고 당장 먹고 살기 어려워 길거리에서 좌판을 펼쳐놓은 노점상들의 생계 터전을 철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중구청은 기업형 노점을 막기 위해 하반기 중에 ‘노점실명제’를 실시하기로 하고 다음달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한 전문가는 “세금을 내는 상인들은 장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불법 노점상들은 제도권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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