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때면 ‘아이고’…과중한 격무 호소
의원 ‘스타 만들기’에 보좌관 골병들어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중앙행정부처 공무원의 ‘과로사’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중앙행정부처 공무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비서실에서도 아무개 보좌관이 쓰러졌다든지 ‘과로누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든지 하는 얘기들이 이쯤 되면 늘 끊이지 않고 들려와 동료들의 안타까움을 사곤 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와 중앙부처간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신경전이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져 ‘자료폭탄’과 ‘자료제출거부’ 등으로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와중에 국정감사 과정에서 ‘과로사’하는 중앙부처공무원과 국회 보좌직원들의 힘겨운 싸움이 반복되고 있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씁쓸한 뒷얘기들이 여의도 정가와 중앙부처에서 나돌고 있다.
올해 8월 중앙부처 여 사무관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무관은 임용 1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평소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준비하기 위해 자료요구를 시작하는 단계였다. 유족들은 올해 초부터 가족들에게 “평소 격무로 인해 힘이 든다”는 의사 표명을 했다고 전했다.
과중한 격무 시달려
또한 방통위에 근무하던 직원이 과로로 쓰러졌다가 사망했다. 이뿐만 아니다. 국가청소년위원회에 근무하던 고 강모 사무관은 국정감사 기간에 폭주하는 업무량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뇌출혈과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국회 보좌직원도 상당한 격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국감기간 중 자유선진당 모 의원실 보좌관이 쓰러져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한나라당 모의원실의 K비서는 과중한 업무로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쓰러져 병원치료를 받았으나 국감기간에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어 퇴원, 또 다시 입원해야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 같은 일은 올해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매년 국감 시기가 돌아오면 감사를 해야 하는 국회나 감사를 받아야 하는 피감기관 모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
이번 국감도 예외는 아니었다. 피감기관 담당자들은 “국회의원 요구자료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해마다 이르면 8월부터 시작해 국회에서 요구하는 현황자료를 비롯해 갖은 요구자료 답변준비로 해당부처 공무원들은 밤을 새며 업무를 처리하기 여념이 없다는 것.
국회 보좌직원들도 밤을 새며 굵은 땀을 흘리기는 마찬가지다. 해당 피감기관에서 자료요구에 대해 자료제출을 임의로 연기하거나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잔뼈가 굵은 L보좌관은 “창과 방패의 공수전환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각자의 ‘노하우’를 총 동원하다보니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과열 양상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국회보좌직원은 수감기관들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쳐 밝혀야 하고 피감기관은 ‘자신들의 허물’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처리해야 할 업무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른바 ‘자료폭탄’에 눌려 기일을 맞추려다 보니 잘못 입력한 내용이 허위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고, 민감한 사안을 숨기려는 피감기관의 ‘방어선’을 뚫기 위해 ‘위장용’ 자료와 본래 원하는 자료를 포함시키는 ‘저인망식’ 자료요구의 악순환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국정감사기간 중 국회 보좌직원들은 의원 ‘스타 만들기’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운다. 사안의 심각성을 분류해 문제가 대두되는 큰 건수일 경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전반전에 화력을 집중하게 된다. 때문에 국감 일정이 가까워질수록 양측의 ‘정보전’도 치열해진다. 한마디로 ‘총성’없는 전쟁이 치러지는 것.
‘국감스타’가 뭐길래…
쟁점화 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가 적기에 ‘폭발력’을 가질 수 있어야 이슈를 만들 수 있다. 지역현안을 해결해야 되는 의원들은 이런 요소를 잘 활용해야 자신이 약속한 ‘공약’을 실천하는데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필수사항이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국감시즌이 되면 입을 모아 ‘폭탄세례’와 같은 국회의 자료요구 실정을 성토한다. 이에 대해 한 비서관은 “막으려는 자와 뚫고 돌파해야 하는 자 사이에 불신의 고리는 불필요한 업무를 가중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보좌직원 입장에서는 “너무 순진하게 필요한 자료만을 요구했을 경우, 피감기관에서 잘못을 은폐하거나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것을 우려해 가급적이면 자료요구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게 하려고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피감기관 공무원의 경우 “너무 광범위한 자료요구보다는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일에 쓰일 자료인지 명확하다면 업무의 효율이 높아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치지 않는 체력’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방패’와 ‘창’의 모순은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국회 내부에서도 ‘국정감사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