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거리로 나오는 아이들 ‘왜?’

2010.11.09 10:14:05 호수 0호

집안의 온기보다 차가운 거리가 좋아 ‘가출중독’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집으로부터 ‘탈옥’을 꿈꾸고, 실제 ‘가출’을 감행하는 청소년들의 최초 가출 연령은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춥고 배고픈 거리의 생활에서 집안의 온기보다 편안함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으며, 가출 청소년의 약 30%는 6개월 이상 장기 가출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청소년 가출이 반복되면서 자칫 가출에 중독되는 청소년들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관계기관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갔다가도 스스로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며칠 사이 다시 거리로 나오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가출과 함께 각종 범죄의 유혹에 노출된 우리 아이들이 오늘도 거리에 방치되어 있다.

초·중·고교생 열에 한 명 꼴 가출 충동 경험
가출 청소년 대부분 크고 작은 범죄 휘말리기 일쑤
배고픔·범죄 유혹에도 한 번 가출하면 다시 거리로

고등학교 1학년인 심모(17)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가출을 했다.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선 뒤 무작정 거리를 배회했고, 그날 밤 지구대 경찰의 눈에 띄어 바로 귀가조치 됐다. 하지만 이후 심군은 잦은 가출로 부모를 힘들게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일 년에 2차례 많게는 5~6번 가출 하는 일이 잦았고, 중3때 탈선이 본격화 되면서 출석일수를 맞추지 못해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울 뻔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가출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가출했을 때 배운 음주와 흡연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가출 연령 점점 낮아져

지난달 여성가족부의 발표에 따르면 청소년의 평균 가출 연령은 남학생 13.3세, 여학생 13.8세로 나타났다. 이는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남녀 각각 0.1세, 0.7세 낮아진 수치다.

이번 조사는 여성가족부가는 지난 6월부터 2달간 전국 79개 청소년 쉼터를 이용하는 청소년 533명과 운영요원 268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가출 횟수는 남학생 평균 9.5회, 여학생 평균 5.9회로 확인됐다. 이어 평균 가출기간은 남학생 161.1일, 여학생 182.3일로 집계돼 가출 청소년의 27.2%는 6개월 이상 장기 가출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가출 원인을 묻자, 21.3%가 ‘부모 간의 불화’를 꼽았고, 13.0%는 ‘부모의 폭행’이라고 답했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라는 10.3%의 의견도 있어 가정적 요인이 무려 59.8%를 차지했다. 이 밖에 ‘답답함(11.6%)’ 등 개인적 요인은 21.3%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실제 연간 가출 청소년은 얼마나 될까.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중고교생 19만4817명을 대상으로 가정 및 학교생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소년 10명 중 1명은 “가출 충동을 느꼈다”고 답했다.

초등생 9.34%, 중학생 11.66%, 고교생 9.94%가 이 같이 답했지만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가출의 유혹에 넘어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경찰은 지난해 2만2000여 명의 청소년이 가출했다고 밝혔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경찰보다 10배나 많은 22만명이 청소년이 가출했다고 보고 있다.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거리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출 청소년 대부분은 크고 작은 범죄에 휘말리기 일쑤다. 막연한 자유를 꿈꾸며 집을 나왔지만 갖고 있던 돈이 떨어지고 지낼 곳이 없어지면 범행에 가담하기도 하고, 직접 범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남학생들의 경우, 죄의식 없이 강도나 폭행을 통해 돈을 빼앗고, 여학생들은 너무 쉽게 성매매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실제 대전 동부경찰서는 지난 3일 대구 동구, 청도, 양산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빈집에 침입해 금품을 훔친 혐의로 A(16)군을 구속했다. 또 함께 범행을 저지른 10대 7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가출 청소년들로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며, 가출 이후 돈이 떨어지자 지난달 12일부터 25일까지 동구 신암동, 청도, 양산 일대를 돌며 43회에 걸쳐 빈집에서 347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부산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이 성인 남성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지난 2일 인터넷 채팅으로 성인 남성들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이모(16·여)양을 불구속 입건하고, 이양과 성관계를 가진 정모(34)씨 등 4명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지난 8월 초 가출한 이양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 접속해 성인 남성들과 ‘조건만남’을 약속하고 부산진구 부전동 모텔 등지에서 성매매를 일삼았다.
정씨 등 20~30대 남성들은 같은 기간 한 차례에 10만원씩을 지급하고 이양의 성을 매수했으며, 경찰은 채팅 사이트에서 이뤄지는 성매매 흔적을 살피던 중 이양의 채팅기록과 IP주소를 추적해 이들을 검거했다.

가출 청소년들의 범죄행위와 더불어 가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또 있다. 잦은 가출은 가출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일상화되는 ‘가출중독’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된 여성가족부의 조사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남학생의 평균 가출 횟수는 9.5회, 여학생은 5.9회로 가출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출을 치기어린 청소년들의 방황쯤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지난해 청소년 가출카페가 성행하면서 청소년들은 카페를 통해 가출 친구를 구하고, 동거인을 구하는 등 가출은 점점 그룹화 되고 조직화 되고 있다. 집을 나와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또래와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생각에 습관성 가출이 계속되고 있는 것.
상황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가출을 예방하려는 어른들의 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부모와의 불화와 폭행, 간섭을 피해 집을 나온 가출 청소년들은 어두운 기억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지만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출 청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 뿐이다.

별다른 교육이나 사회적 보살핌 없이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또 다시 안 좋은 환경에 놓이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된다.
이와 관련 여성가족부는 “위기 가정을 유형화해 상담 매뉴얼을 개발하고 보급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가출의 근본적 원인인 가정 해체를 막지 못하면 문제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출, ‘중독’이 문제

또 현재 운영되고 있는 청소년 상담시설과 쉼터마저 청소년들에게 외면받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가 나서서 가정문제에 일일이 개입할 수 없다보니 아이들의 탈선이 계속되고 있고, 그나마 존재하는 쉼터 입소조차 꺼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현재 전국에는 일시·단기·중장기 보호시설 등 총 83개 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대부분 시 외곽에 위치해 접근성이 낮다. 또 전화 연결 후 쉼터를 찾아가야 하고, 입소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 대부분은 ‘자유로운 생활 억압’ ‘답답한 쉼터 규율’ ‘친구와 격리’ 등의 이유로 쉼터 생활에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에 처한 청소년의 심리적 안정을 지원하고 사회적응을 도와야할 쉼터가 오히려 청소년을 압박해 입소를 거부하도록 유도, 가출을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