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회장, 왕좌 탈환 시나리오 대추적

2010.11.09 09:25:22 호수 0호

퇴진부터 복귀까지 ‘모든 건 계획대로였다’

경영위기 초래한 장본인 복귀에 세인들 ‘눈살’
“부실경영 경영진 복귀해 회생한 전례 드물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돌아왔다. ‘형제의 난’으로 왕좌에서 물러난 지 15개월만이다. 하지만 재계는 시큰둥하다. 놀랄 것도 없다는 반응이다. 이미 예견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짜여진 각본대로 흘러갔다는 것. 박 회장 퇴진부터 복귀까지 전과정이 망라된 박 회장의 ‘컴백시나리오’를 들여다봤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1일 경영에 복귀했다. 지난 해 7월 박삼구-박찬구 형제의 경영권 분쟁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지 15개월만의 일이다.

과거 금호가의 모범적인 형제경영은 골육상쟁이 난무하던 재계의 ‘좋은 예’였다. 집안의 대소사부터 그룹의 경영현안까지 중요한 의사결정은 철저한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할 정도였다.

적어도 ‘형제의 난’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태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을 인수했고, 이 여세를 몰아 지난 2008년 물류업계 1위인 대한통운을 집어삼키면서 재계서열 11위에서 8위(민영화 공기업 제외)로 급부상했다. 그룹 측은 2건의 대형 인수·합병(M&A)에 자그마치 10조원에 이르는 돈을 쏟아 부었다. 국내 M&A 사상 최대의 자금이 투입된 것이다.

형제의 난 이후
15개월 만에 복귀


당시 박찬구 회장은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을 무리하게 M&A하면 경영 상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적극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박삼구 회장이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의 우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박찬구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두 대어를 낚기 위해 늘린 회사채가 부채 증가로 이어지면서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왔다.

자연스레 박삼구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무리한 덩치 키우기가 그룹의 재무건전성을 망쳤다는 추궁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박찬구 회장도 이에 가세했다. 박삼구 회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은 것. 이 때문에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금호가 형제 불화설이 나돌았다. 그룹 측은 “전혀 근거 없는 악의적인 음해성 악성 루머”라고 일축했지만 이는 이내 현실로 나타났다.

형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박찬구 회장이 돌연 그룹 경영권을 노린 ‘쿠데타’를 일으킨 것. 곪을 대로 곪은 환부가 터져 나온 것이다.

박찬구 회장은 아들과 함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당초 10.01%에서 18.47%로 늘렸다. ‘10.01%’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5남 박종구 씨를 제외한 금호가 4형제(성용-정구-삼구-찬구) 일가가 동일하게 보유해온 이른바 ‘황금 지분율’이다. 뒤늦게 박삼구 회장도 금호석유화학 지분(11.77%)을 사들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동생에게 뒤통수를 맞은 박삼구 회장이 꺼내 든 것은 ‘동반퇴진’ 카드였다. 박삼구 회장은 당시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다른 친인척들의 지분을 동원, 박 전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을 박탈했다.

박삼구 회장은 퇴진 기자회견에서 “동생이 공동경영 합의를 위반해 그룹의 정상적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며 박찬구 회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박삼구 회장은 “더 이상 형제상속은 없다”며 박찬구 회장의 경영권 승계 여부에 대해 못을 박았다.

‘형제경영의 모범’이라 불릴 만큼 형제애를 과시했던 금호가의 25년 아름다운 전통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금호가 두 형제가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동안 두 선장을 잃은 ‘금호호’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풋백옵션’을 감당하지 못해 인수 2년여 만에 다시 시장에 내놓게 됐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로 계열사들이 실적부진을 겪으며 금호산업,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작업)을 개시하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 등도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됐다. 결국 그룹의 운명이 채권단 손에 넘어가게 된 것.

그룹 워크아웃을 진행하고 있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금호가 오너의 사재출연을 요구했고 채권단과 최종 합의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산업은행은 “금호 일가가 주식·부동산 처분권을 채권단에 넘긴다는 경영책임 이행 합의서를 제출했다”며 “금호가가 제시한 ‘분리 경영안’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수용했다”고 밝혔다.

동반 퇴진
사재 출연

두 형제는 2세들 지분까지 포함해 대주주 주식 의결·처분권을 채권단에 넘겼다. 이들이 채권단에 위임한 사재는 집을 제외한 주식과 부동산 등을 합쳐 25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당초 금호가는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하며 버티다 막판에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대신 박삼구-박찬구 형제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요 계열사 경영을 각각 나눠서 맡기로 했다. 간신히 공중분해는 면했지만 산산조각 나는 비극을 맞게 된 셈이다.

비록 왕좌에서 물러나게 된 박삼구 회장이지만 복귀 가능성은 열어뒀다. 평소 막역한 사이인 전문경영인 박찬법 전 회장을 그룹 수장으로 내세운 것만 봐도 그렇다.

취임직후 박찬법 전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삼구 회장이 큰일에 있어 잘 도와준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오너-전문경영인 공존체제를 암시한 것. 박삼구 회장이 비록 명예회장으로 있더라도 그룹을 원격조종 하리란 게 예상되는 대목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역시 “박찬법 신임 회장이 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박삼구 명예회장은 재무구조개선 약정 이행 관련 부분에 대해 책임지는 형태로 두 사람이 역할 분담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박삼구 회장이 오너체제 완전 폐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사태가 잠잠해지면 금호일가가 다시 경영일선에 나설 수도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삼구 회장은 ‘회장’타이틀을 뗀 뒤에도 완전히 ‘지휘봉’을 놓지 않았다. 다만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1년간 그룹의 오너로서 중대 사안에 깊숙이 관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지난 7월31일 박찬법 전 회장이 사임 의사를 밝혀 왔다.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박찬법 전 회장이 지난해 7월31일 제5대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지 꼭 1년 만의 일이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박삼구 회장의 경영복귀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지난 8월2일,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박삼구 회장이 복귀를 선언했다. 박삼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으로 임직원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경영복귀의 뜻을 내비쳤다. 당시 메일을 통해 박삼구 회장은 “주요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등 우리 그룹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어려움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임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며 “새로운 모습으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여러분과 함께 기필코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박삼구 회장은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몇 가지 다짐을 하고자 한다”며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 조기 정상화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 및 극대화 방안 모색 ▲집념과 도전의 기업문화 재정비 및 강화 등의 방침을 제시했다.

박삼구 회장은 또 “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조직의 DNA 중 그룹의 미래전략과 관계없는 부분은 과감히 정리, 수정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강력한 구조조정의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달이 지난 지금, 박삼구 회장은 일선으로 돌아왔다. 현재 금호그룹의 각 계열사는 이미 내년 사업 계획 수립을 마쳤거나 최종 점검 단계에 있다. 박삼구 회장의 복귀 시점에 맞춰 철저한 준비를 마친 것으로 해석된다. 퇴진부터 복귀까지,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대로였다는 얘기다.

도덕적 해이
국민 비판 직면

두산그룹 일가가 2005년 형제간 분쟁으로 동반 퇴진했다가 잊혀질 즈음 낯빛을 고치고 그룹 경영을 재장악한 사례와 절묘하게 겹쳐진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박삼구 회장은 공식적인 외부 행사 없이 조용히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삼구 회장의 ‘컴백’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우량기업을 위기로 내몬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삼구 회장이 아무런 반성과 책임을 지지 않고 경영일선에 복귀할 경우 도덕적 해이는 물론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것이란 지적이다.

특히,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는 경영진이 그룹에 복귀해 기업회생에 성공했던 전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박삼구 회장의 복귀가 금호그룹의 워크아웃 조기탈출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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