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발 페이퍼컴퍼니 후폭풍

2016.04.11 10:37:52 호수 0호

검은돈 가득한 판도라 상자 열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열리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는 수십 년간 꽁꽁 싸매인 채 베일에 감춰져 있던 갖가지 정보들이 담겨 있다. 푸틴, 메시 등 오르내리는 이름의 면면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세상 밖으로 꺼내길 주저했던 추악한 진실이 만천하에 공개될 지도 모를 일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도피 관련 문건이 공개되면서 국제적인 파장이 일고 있다. 파나마 최대 로펌이 조세도피처 곳곳에 전 세계 유력인사들을 위한 페이퍼컴퍼니(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를 만들어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파나마 페이퍼스’로 불리는 유출 문서가 국내에 어떤 파급력을 불러올지 벌써부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문건 공개는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의 탐사보도 기자들이 익명의 취재원에게서 자료를 처음 입수하면서 시작됐다. 자료의 방대한 규모와 공적 가치를 고려한 <쥐트도이체차이퉁>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협업을 요청,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모색 폰세카
극비문서 유출

<쥐트도이체차이퉁>의 프레데릭 오베르마이어 기자는 “유출 데이터는 언론인이 입수한 것 중에 사상 최대 규모로 25만 개에 이르는 역외 회사 관련 정보를 담고 있다”며 “이 분야를 이렇게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고 밝힌 바 있다.

자료 분석을 위해 영국 <BBC>, 프랑스 <르몽드>, 독일 <NDR>, 미국 <프로퍼블리카> 등 76개국 109개 언론사, 376명의 언론인이 참여해 1977년부터 2015년 말까지 자료 1150만건을 면밀히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뉴스타파>가 참여했다.


이번에 유출된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내부자료는 2.6TB로 역대 최대규모다. 앞서 2010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문서는 1.7GB, 2013년 ICIJ의 조세도피처 프로젝트 데이터는 260GB였다.

모색 폰세카는 해외법무법인으로서는 세계 4번째 규모의 대형 법인으로 홍콩, 마이애미, 취리히 등 전 세계 35개 이상에 지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이치뱅크를 비롯해 HSBC, 크레디트스위스 등 세계 주요 금융기관과 거래를 하고 있으며, 이들 은행의 고객에게 조세당국이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 어렵도록 도움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파나마 페이퍼스가 알려지자 세계 각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 회피 의혹에 대한 관련 조사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법무부가 파나마 페이퍼스 사태와 관련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불법적인 자금의 흐름이 정당화되면 안 된다”고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다.

영국 국세청(HMRC)도 팔을 걷어붙이긴 마찬가지다. HMRC는 이날 "유출 문건을 기반으로 부유층, 고위층 인사의 자금 세탁이나 조세 회피 등 관련 의혹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도 수사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프랑스 수사 당국은 자국민과 금융 기관들이 파나마를 통해 조세 회피를 했는지 수사에 돌입했다. 이 밖에도 파나마, 독일, 뉴질랜드, 멕시코, 네덜란드 등 각국도 파나마 페이퍼스 관련 조사에 들어갔다.

최대 규모 조세회피 관련 문건 공개
세계 유력인사들 거론…엄청난 파급

어느새 파나마 페이퍼스가 촉발한 조세 회피 문제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7일 <마이니치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다음 달 일본 미에현 이세시마에서 열리는 G7정상회의 때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세금 회피 문제를 다루는 의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파나마 페이퍼스의 후폭풍은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건은 전 세계 72명의 전·현직 정상 이름뿐만 아니라 한국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출 데이터에서는 ‘Korea’로 검색되는 1만5000여건의 파일 중 한국 주소를 기재한 195명의 한국인 이름이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씨다. 파나마 페이퍼스를 분석하던 도중 해당 문건에 오른 노씨의 이름이 노 전 대통령의 장남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조사가 이뤄졌고 생년월일과 사진을 검토한 결과 동일인물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 <뉴스타파>는 모색 폰세카의 내부 유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노씨를 포함한 196명이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3곳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노씨는 2012년 5월18일 버진아일랜드에서 3개의 회사를 설립해 주주 겸 이사에 취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3개 회사 모두 1달러짜리 주식 1주만을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라고 <뉴스타파>는 전했다.


점점 커지는
파나마 후폭풍

3개 회사 이름은 ‘One Asia international’, ‘GCI Asia’, ‘Luxes international’이다. 이 가운데 Luxes international의 주주로 노씨와 GCI Asia가 등재돼 있다. 노씨는 회사 설립 당시 자신의 주소를 홍콩으로 기재했고 2013년 5월 이사직에서 사퇴했다. 이사직은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첸 카이와 한국인으로 보이는 김정환씨가 물려받았는데 두 사람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뉴스타파>는 이런 점에 견줘볼 때 노씨가 설립한 회사는 전형적인 페이퍼컴퍼니라고 설명했다. 

<뉴스타파>는 “이 회사들이 소유구조를 매우 복잡하게 내놨다”며 “이렇게 중층적으로 설계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노씨는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2005년부터 홍콩에 거주했고 2011년경부터 중국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지만 거론된 3개 회사는 사업이 무산돼 휴먼상태에 돌입했다는 주장이다.

노씨는 즉각 반박자료를 내고 “중국사업을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으나 사업진행이 안돼 계좌개설도 하지 않았다”며 “관계당국에서 필요하다면 해명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조세회피처나 비자금 등과는 일절 무관하다”고 말했다.

노씨의 조세 회피 의혹은 갖가지 의혹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정권의 비자금 유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비자금 이동 흔적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조세회피처에 1달러짜리 회사를 세웠다는 점에서 조세당국의 감시를 벗어나고자 했다는 의혹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노재헌씨
커지는 의혹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세웠던 페이퍼컴퍼니를 넘겨받은 인사가 SK텔레콤의 투자회사 관계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SK그룹과의 연관설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재헌씨의 페이퍼컴퍼니 One Asia international, GCI Asia 2곳을 넘겨받은 중국인 첸카이는 2011년 설립된 SK텔레콤 홍콩 벤처스매니지먼트 이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무작정 의심하기엔 정황상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일단 노씨가 SK와 사돈지간이라는 이유로 SK와의 연관설이 나도는 상황은 개연성이 떨어지고 SK텔레콤의 지원 의혹을 제기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실제로 SK 측은 노씨와의 연결 소문에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Korea 파일’ 1만5000여건
한국 주소 기재한 195명

파나마 페이퍼스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이름이 다수 발견되자 당국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국세청은 한국인 명단을 확보한 뒤 탈세 혐의와 관련 세원이 포착되는 경우 즉각 세무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명단을 입수하는대로 정상적인 기업활동인지 거주자인지 등의 여부를 분석해 역외탈세인지 확인한 뒤 엄정하게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인 명단을 찾아 분석하고 조사하는 데까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한 신병 확보다. 탈세 혐의를 확인한 뒤 세무조사에 착수하게 되면 출국금지 등 신병확보를 할 수 있지만 탈세 혐의자들이 세무조사 이전에 해외로 나가버리면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뉴스타파>가 버진아일랜드나 케이만 제도 등 조세회피처를 통한 역외탈세 의혹을 제기했을 당시에도 국세청이 압수수색을 하러 현장에 나가보면 자료가 다 삭제되고 당사자는 해외로 도주해버린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당시 유령회사를 설립했다고 여겨지던 한국인 182명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삼남 김선용씨,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등 유력인사의 이름이 다수 포함됐다. 그러나 182명 중 실제 세무조사를 받은 경우는 48명에 그쳤고 고발조치가 취해진 인물은 3명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추징한 금액은 총 1324억원이었다.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당장 국세청이 세무조사나 고발조치를 하기도 어렵다. 유출된 명단과 해당 인물들의 계좌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단순히 몇명만 고발 조치했다라는 수치만 갖고 미온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혐의내용이 법위반으로 드러났을 경우에만 고발조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는 점도 수사를 늦추는 장애가 될 수 있다. 통상 페이퍼컴퍼니는 서류상 법인자격을 갖추었으니 자회사를 두고 영업활동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탈세 목적의 자금세탁창구로 이용되기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유령회사라는 이름이 뒤따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번에도
유야무야?

한편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뉴스타파>는 수십명의 신원을 이미 확인했고 유력인사들이 포함된 사안에 관해서는 추가 보도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주요 명단이 추가적으로 공개되면 전체 자료 파악 후 해당 인물들에 대한 서면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큰 파장이 몰려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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