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한국 추상미술 1세대 권옥연

2016.04.11 10:36:29 호수 0호

노스탤지어를 그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이자 초현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권옥연의 회고전이 가나아트부산에서 오는 16일까지 열린다. 이번 회고전에선 서구 미술을 가까이 접하며 한국적 향토성을 융화시키려 했던 권옥연의 조형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권옥연(1923∼2011)은 생전에 “그림의 톤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색채와 형체 못지않게 톤이 그 사람 특유의 포에지(poesie)를 나타낸다고 하는 사실은 훌륭한 작가의 그림은 사방 1㎝만 잘라 놓아도 그 그림의 제작자를 알 수 있다는 데서 드러난다. 처음 들어 보는 자기 자신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좋은 작가라면 섬뜩할 정도의 개성을 풍겨야 한다. 그때 비로소 예술이란 과정의 걸음마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섬뜩할 정도의 개성

그의 화면은 구상적인 형태에 비구상의 모티브가 섞여 있거나 비구상화면임에도 구상적인 형태들이 엿보인다. 주로 청색, 갈색, 회색의 일관되고 절제된 색조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구성은 구상과 비구상,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회화가 이렇듯 특유의 개성적 양식을 갖게 된 것은 1950년대 말 파리 유학 시절부터다. 권옥연은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머물러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모색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와 모티브를 만들어갔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초현실주의 운동의 선구자였던 앙드레 브르통은 “당신이야말로 진정으로 현실을 넘어섰다(sur)”며 “동양적 초현실주의”라고 극찬했다. 
 


권옥연은 어머니 곁을 지켜야 한다는 장남의 책임감으로 브르통이 제안한 파리 개인전을 뒤로 한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절제된 색채를 바탕으로 한 풍경과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청회색과 상념에 빠진 듯한 인물이 특징인 권옥연의 인물화는 청색, 회색, 녹색 등을 여러 번 덧칠해 미묘한 회색조의 변화와 함께 독특한 질감을 가진다.

초현실주의 미술 대표하는 작가
서구 예술과 한국적 향토성 융화

그의 인물화에서 주목할 또 다른 점은 대부분 모델이 없이 그려졌다는 점이다. 명백한 구상 형태의 인물이지만 지칭하는 대상이 없는 그림 속 인물들은 그의 추상화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화면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말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림 속 여인들에게서 우리는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고 특유의 신비로움에 이끌리게 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권옥연은 마티에르를 통한 질감이나 대략의 형태들만 표현했던 파리 시기 작품들과 달리 솟대, 호롱불, 당산나무와 오방색의 천, 달과 기러기 등을 그렸다. 

권옥연은 “내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것은 서양은 나와 전혀 관계없는 세계라는 사실이었다”며 “이전에 보았던 갑사의 분홍빛 흙벽이 떠올랐고 고향의 초가집과 싸리울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우리의 자연과 전통적인 이미지, 전통 기물에서 오는 공간 분할, 꿈에 대한 감성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재 선택을 통해 우리의 원시적 근원에 대한 향수를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이는 옛 것이라는 과거의 모티브를 통해 함흥이라는 찾아갈 수 없는 고향, 전쟁을 통한 상실의 경험, 유학 중 겪었던 이방인으로서의 기억 등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반영한 것이다.

슬픔과 아름다움을

가나아트부산 측은 “특유의 색채와 서정성, 환상적이고 비애적인 화면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감성을 그리고자 했다”며 “1950년대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인물, 풍경, 정물, 추상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별했다”고 전했다. 

<shin@ilyosisa.co.kr>

 

[권옥연 화백은?]

1923년 함남도 함흥 출생.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 졸업 후 도쿄제국미술학교와 파리 아카데미 뒤 페(Academie du Feu)에 유학하면서 상징주의, 후기인상주의, 앵포르멜, 초현실주의 등 동시대의 주요한 미술사조를 접했다. 레알리떼 누벨(Salon des Realites Nouvelles) 초대전(1959),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1983), 보관문화훈장을 수상(1990),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올해의 작가’로 선정(2001). 2011년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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