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보다 센 ‘폭풍간지’ 누가 막으랴

2010.11.02 09:24:44 호수 0호

[일요기획]재계 ‘미존’ 6인방 스토리


강한 카리스마로 막후서 그룹 전반 쥐락펴락
경영일선서 물러나 오너 못지않은 파워 과시



‘미친 존재감(미존)’에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다. 연예계를 강타한 ‘미존’은 주연보다 더 눈에 띄는 조연을 일컫는 신조어로, 잠깐 등장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당연히 폭발적 관심을 받아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재계도 예외가 아니다.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오너 못지않은 파워로 ‘미존’을 과시하는 막후 실력자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각 기업에서 ‘미친 존재감(미존)’을 드러내고 있는 막후 실력자들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오너에 대한 충성심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연예계 ‘미존’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지 개성 강한 외모가 아닌 오너의 신임을 앞세운 강렬한 카리스마로 경영전반을 ‘쥐락펴락’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탓에 먼발치에서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런데도 캐릭터 자체의 강력한 아우라는 오너 또는 전문경영인(CEO)보다 항상 더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렇다면 오너 못지않은 파워로 ‘미존’을 과시하는 인사들은 누가 있을까.

평상시 ‘절대권력’
위기땐 ‘방패막이’

삼성그룹의 영원한 2인자 이학수 고문이 재계 ‘미존’의 대표 주자다. 1971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이 고문은 1982년 고 이병철 창업주의 비서실 팀장으로 발탁된 후 삼성일가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왔다. 1997년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에 오른 후엔 더욱 그랬다. 계열사 사장들은 이 회장에게 보고하기 전 이 고문을 거쳐야 했다. 한때 이 회장의 인감이 이 고문 손에 있었을 정도다. 그룹의 주요 결정권이 그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회장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고문은 삼성그룹이 위기 때마다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다. 그는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정치권에 385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고문은 “정치권에 건넨 돈은 내가 판단하고 결정한 것”이라며 혐의를 뒤집어썼다. 또 ▲1996년 세풍 ▲2005년 X파일 ▲2006년 에버랜드CB 등 잇따른 ‘외풍’도 몸소 막아냈다. 이런 과정을 거칠수록 그룹 내에서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하지만 2008년 4월 ‘특검 쓰나미’는 피하지 못했다. 이 고문은 특검에 의해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됐고, ‘삼성 쇄신안’에 따라 그룹 컨트롤타워에서 내려왔다. 삼성그룹은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과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전진 배치했으나 이 고문의 빈자리는 클 수밖에 없었다.

이 고문은 2년 넘게 이렇다 할 업무를 맡고 있지 않지만 거대한 존재감은 여전하다. 경영 전면에서 물러난 뒤에도 항상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 회장이 가는 곳엔 항상 이 고문이 먼저 나타난다.

특히 이 고문은 이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인 만큼 퇴진 후에도 삼성그룹과 이 회장 사이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이 고문이 연말 쯤 경영에 복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그동안 숨기고 있었던 파워가 수면 위에서 제대로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에선 손길승 명예회장이 ‘미존’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명예회장도 이 고문과 마찬가지로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지만 그룹 내 영향력은 그대로다. 1965년 SK그룹 첫 공채로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에 입사한 손 명예회장은 그룹 경영기획실장 등을 맡으면서 유공(현 SK에너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고 최종현 회장의 눈에 들어왔다. ‘최종현 분신’으로 불릴 정도로 오너의 믿음을 받았다. 손 명예회장은 “최종현 회장과는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무한신뢰’를 주고받은 이들의 관계는 1998년 8월 최종현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38세란 젊은 나이에 ‘지휘봉’을 물려받은 최태원 회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손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에 오른 것도 이때다. 2003년까지 SK그룹을 진두지휘했다. 재계 관계자는 “30대의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오른 최 회장에 대한 의문과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영원한 친구이자 파트너인 손 명예회장이 그를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해준 후견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최태원-손길승 투톱체제는 절묘한 호흡을 자랑하며 지금의 SK그룹을 있게 했다. 파트너십은 위기 때 빛이 났다. 1990년대 후반 IMF의 혹독한 시련기를 완벽한 구조조정으로 잘 넘긴 사례가 그것이다. 오히려 당시 SK그룹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손 명예회장은 2004년 터진 SK사태(분식회계)와 1조원 유용 혐의로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룹을 위해 총대를 멘 셈이다. 그는 8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후 보석으로 풀려났고, 2008년 8·15 특사로 사면됐다. 명예회장이란 직함으로 ‘친정’에 돌아온 것은 그해 말이다. 원로에 대한 예우 차원이란 게 그룹 측의 설명이었다. 다만 “손 명예회장의 추대가 경영일선 복귀 의미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손 명예회장도 “경영에 간섭할 뜻이 없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이후 지금까지 강연 등 외부 활동에 더 매달렸다. 바깥으로만 나돈다고 해서 ‘뒷방 늙은이’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손 명예회장과 최 회장은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눈다고 한다. 최 회장이 손 명예회장을 찾아 조언을 구하는 식이다. 손 명예회장을 다시 모신 것도 최 회장이다. 최 회장이 손 명예회장에게 명예회장직 추대를 제안했고, 손 명예회장은 여러 차례 고사 끝에 결국 수락했다. 손 명예회장은 서울 워커힐호텔에 집무실을 꾸렸는데, 이 역시 최 회장이 직접 마련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절묘한 호흡 자랑
꼭 필요한 중심축

손 명예회장은 존재감만으로도 충분히 SK그룹 전체가 술렁일 만하다. 예전보다 그 수가 줄긴 했지만 그룹 내부엔 손 명예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또 서울대 상대 선후배 사이인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의 친분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손 명예회장이 귀환해 특별한 임무를 수행 중이란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그가 최태원-최신원(SKC 회장) 사촌형제의 분가 실타래를 푸는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CJ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에도 ‘미존’의 역할이 돋보인다. 주인공은 각각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손 회장은 외곽에서 CJ그룹을 지원하고 있다. 대한상의 회장과 CJ그룹 회장직을 겸하고 있는 손 회장은 그룹에 없어선 안 될 꼭 필요한 중심축이다. CJ그룹은 1993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됐다. 당시 이재현 회장의 나이는 36세. 연륜과 경험 등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이 회장을 부축할 임무로 CJ그룹에 합류한 인물이 손 회장이다. 그전까지 삼성그룹에 있었다.

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 회장은 이 회장의 후견인으로 CJ그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역할을 해왔다. 삼성그룹의 우산 아래에서 떨어져 나온 CJ그룹이 지금까지 큰 위기를 겪지 않고 오늘날에 이른 데는 손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게 그룹 안팎의 평가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2006년 CJ푸드시스템의 집단급식 사고 때도 손 회장이 직접 나서 사태를 잘 수습했다. 손 회장은 2005년부터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CJ그룹 본사를 찾아 경영 현안을 보고받으면서 그룹 경영의 ‘큰 그림’에 관여하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10.80%)다. 정 전 대표는 1978년 대리로 현대중공업그룹에 입사해 1982년 사장, 1987년 회장에 올랐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실질적인 오너로 경영을 맡다 2002년 대선 출마 직전 고문직을 끝으로 물러난 이후 대주주로서 주총결의에 따른 배당수익만 받고 있다. 앞서 1988년 울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찌감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한 그는 현재 그룹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경영은 CEO 민계식 회장에게 맡겼다.

하지만 소유권을 통해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면 CEO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해도 그 영향권은 유효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대주주로서의 권한이 살아있는 것. 실제 정 전 대표는 회사의 중요한 결정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대표도 “(회사가) 작은 일은 상의하지 않지만 큰일은 상의한다”고 말해 직간접적으로 경영 관여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 전 대표는 경영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지만 가장 막강한 의사결정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대주주의 권리를 행사한다면 사실상 회장의 역할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현정은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 이사장은 현대그룹의 든든한 아군이다. 사위인 고 정몽헌 회장이 2003년 사망하고 현 회장이 그룹을 승계한 뒤부터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한 김 이사장은 현 회장의 사업적 위기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현 회장이 2003년 정상영 KCC 명예회장, 2006년 정 전 대표 등 시댁식구들과 경영권 분쟁을 치를 땐 직접 지분출자를 통해 딸의 경영권 수호에 두 팔을 걷었다.

지금은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현대엘리베이터의 개인 최대주주(9.8%)다. 현 회장 지분은 3.9%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최대주주(20.6%)이기도 하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인 탓에 김 이사장의 자리가 클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그룹은 김 이사장의 경영개입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경영에 김 이사장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현대그룹이 김 이사장의 회사’란 말까지 나돌았다. 최근엔 현대건설을 놓고 현대차그룹과 경쟁하고 있는 현대그룹에 김 이사장이 어떤 식으로든 힘을 실어주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종 의사결정자”
사실상 오너 역할

포스코 뒤에도 ‘미존’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설립자인 박태준 명예회장이다. 포스코 경영에서 손 뗀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 그의 그룹 내 입지는 견고하다. 자리도 비서도 월급도 없지만, 박 명예회장의 파워를 의심하는 시선은 적다. 그동안 고위 임원진의 인사 때마다 박 명예회장의 압력이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1981∼1992년 포스코 사장·회장을 역임한 그는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직후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했다가 2002년 되찾았다. 2007년 6월엔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포스코 울타리’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 재단은 포스코의 사회공헌활동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공익재단으로, 장학활동과 아시아권 인문사회학 발전 등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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