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어우동을 반면교사로 삼으시라

2016.03.30 15:25:53 호수 0호

우리 역사 최고의 ‘음부’를 들라면 누구나 서슴지 않고 조선 성종 시절 혁혁한 활동을 했던 어우동을 거론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많은 남자들과 난잡한 관계를 맺은 부분도 있지만 결론은 마무리, 즉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유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 데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우리 역사 음부의 지존이었던 세종조의 유감동을 잘못 흉내 낸 결과에 따른다. 그 사연을, 먼저 유감동의 경우를 살펴보자.

유감동은 당시 명문 사대부가의 여식으로 태어났다. 아울러 평강 현감인 최중기와 가례를 올리나 남편이 부안 현감으로 부임하자 몰래 도망하여 한양으로 올라간다. 이어 자신의 신분을 창기로 위장하여 음란한 짓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녀의 행각이 발각되어 최초로 조사를 벌이자 조선의 명재상인 황희의 아들 호조정랑 황치신, 총제 정효문, 상호군 이효량, 해주 판관 오안로, 전 도사 이곡 등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를 보고 받은 세종이 너무나 황당하여 한때 조사를 멈추라 지시할 정도로 그녀의 애정행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조사를 마쳤을 무렵 실제 연루된 것으로 판정된 인물만 40여 명에 이르렀다.

숫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남편이었던 최중기의 매부인 이효량은 물론이고 정탁과 정효문의 숙부 조카 사이와 함께 간통을 일삼을 정도로 조선의 국시인 유교를 철저하게 짓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은 단순 귀양으로 매듭짓는다.


그리고 드디어 성종 조에 어우동이 등장한다. 역시 사대부의 여식인 어우동은 애초 종실인 태강수(泰江守) 이동(李仝)과 혼인하였으나, 천한 신분의 남자를 끌어들여 문란한 성관계를 맺은 일이 발각되어 소박을 맞으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적발되어 조사를 받자 수산수 이기, 방산수 이난, 내금위 구전, 학유 홍찬, 생원 이승언, 서리 오종련·감의형, 생도 박강창, 양인 이근지, 사노 지거비라는 실명이 등장한다.

이는 소위 시쳇말로 유감동에게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형세였다. 그런데 문제는 옥에 갇혔던 어우동의 잔머리가 화근이 되었다.

자신의 간부였던 방산수 이난이 유감동이 많은 사람과 통정을 했기에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어우동 역시 살기 위해 가능한 많은 사람의 이름을 나열했다. 당시 조정의 실력자들인 어유소, 노공필, 김세적, 김칭, 김휘, 정숙지 등이 그들이었는데, 조사 결과 그들은 증거가 없어 방면된다.

이 과정에서 그 이면을 살펴보자. 당대에 실력자들이 어우동과 관계를 맺고 안 맺고를 떠나 그러한 일에 연루된다는 사실이 왕이나 대신들에게 달가울 리 없다. 통정을 했어도 함구해야 할 일이었건만 그저 유감동의 경우를 감안하여 숫자 부풀리기를 한 일이 화근으로 작용했고 이는 당시 임금이었던 성종의 분노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여자라면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그것도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성종에게 결국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 어우동의 죽음은 결국 그녀의 잔머리에서 비롯된 교활함이 화근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제 진절머리 날 정도의 홍역을 치르면서 제 정당의 공천이 마무리되었다. 그 모든 과정을 살피면서 정말 우리 정치판에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절망감에 교활한 인간들에게 이 글을 전한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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