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태광쇼크 대해부下]미스터리 키맨들

2010.10.26 09:23:25 호수 0호

사방에 바리케이드…‘방탄 세력’ 검 칼 막는다

태광 비자금 수사 급물살 “이호진 꽁꽁 묶는다”
‘판도라의 상자’ 열쇠 쥔 그룹 핵심인사 줄소환


‘태광 사태’가 종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태광그룹이 받고 있는 혐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질 정도다. 의심의 눈초리는 모두 그룹 오너인 이호진 회장에 쏠린다.

각 사건의 유력 용의자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하지만 혼자 했을 리 없다. 누군가 뒤에 있거나 도왔을 정황이 분명하다. 이들이 ‘키맨’이란 얘기다. 이들의 입에 따라 정·관계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 ‘판도라의 상자’열쇠를 쥔 이 회장의 앞잡이와 막후 세력들을 털어봤다.

‘왕상무’ 이 회장 모친 ‘몸통’
검은돈 만진 집사들 긴장


태광그룹 비자금을 뒤지고 있는 검찰의 칼끝은 이호진 회장을 겨누고 있다. 검찰은 일단 각종 의혹으로 이 회장을 단단히 옭아맨 모양새다. 큰 줄기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줄줄이 딸린 가지들부터 하나하나 쳐낼 요량으로 보인다.

그 첫 가지가 이 회장의 모친 이선애씨다.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씨는 수천억∼수조원대 비자금 조성에 깊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미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이씨가 비자금 조성 및 운용을 총괄지휘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이에 따라 검찰은 출국금지 조치한 이씨의 관련 계좌 추적과 함께 지난 21일 이씨의 서울 장충동 자택을 압수수색해 각종 회계장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파일 등을 확보했다. 검찰이 결정적 단서를 잡았다면 비자금 의혹의 전모를 밝힐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태광산업 상무직(일주&선화갤러리 관장)을 맡아 그룹 내에서 ‘왕상무’로 불리는 이씨는 고 이임용 창업주의 부인이다. 그의 동생이 과거 야당 거물 정치인으로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다.

슬하에 3남3녀를 뒀는데, 이 회장이 막내아들이다. 장남 고 이식진씨는 태광산업 부회장까지 올랐으나 지병으로 타계했고, 차남 고 이영진씨도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다. 결국 이 회장이 그룹을 물려받게 됐다.

외곽 거물급 비호세력 타깃
100명 ‘태광 리스트’ 확보

  

이씨는 집안에만 있지 않았다. 그룹의 모기업인 태광산업 설립 초창기인 1962년 이사직을 맡는 등 이 창업주 시절부터 회사 경영 전반을 쥐락펴락해왔다. 특히 이씨는 재무를 쥐었다. 올해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룹 본사 주차장 매출까지 챙길 정도로 사내 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지배력도 상당하다. 이씨는 태광산업 지분 0.12%만 보유해 아들(이 회장 15.14%)과 손자들(원준 7.49%, 동준 1.80%, 태준 1.80%)보다 적지만,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일주학원을 통해 그룹 전반을 주물렀다. 일주학원은 그룹의 양대 축인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지분을 각각 5%씩 소유한 주요주주다.

태광산업 전 직원은 “‘왕상무’는 태광의 사명을 지은 당사자로 오래 전부터 회사경영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며 “이 회장도 어머니 앞에선 꼼짝 못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이씨는) 경영 전략은 물론 주요 사안에 대해 최종 결재권을 갖고 있다”며 “이씨에게 밉보여 해고된 임직원이 한두 명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경영 전면엔 나서지 않았다. 이 창업주가 1996년 작고한 이후 조용히 뒤에서 지휘봉을 휘둘렀다. 이씨가 지금까지 절대 권력을 잃지 않은 이유다. 다만 이씨가 이 회장을 그저 꼭두각시로 내세운 것인지, 이 회장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조력한 것인지 그 의도는 알 수 없다.

일각에선 이씨가 아들을 위해 총대를 멜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건의 본류가 이 회장에서 이씨 쪽으로 틀어지는 양상이 감지되는 이유에서다. 실제 이씨는 태광그룹이 2006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를 인수하면서 직원들의 차명계좌를 동원해 쌍용화재 주식을 사들였다는 의혹이 불거져 검찰의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 결과 이씨가 이들 차명계좌를 실질적으로 소유해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드러나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된 바 있다.

큰 줄기 잡아두고
가지부터 쳐낸다



이씨 다음으로 검찰의 표적은 박명석 대한화섬 사장이다. 물론 이 회장을 꽁꽁 묶기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검찰은 지난 19일 박 사장을 전격 소환해 비자금의 조성 경위와 사용처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박 사장은 ‘비자금 키맨’으로 의심받고 있다. 검찰은 그를 털면 태광그룹 정·관계 ‘검은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사장은 그룹 재무통이다. 이 회장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태광 집사’로 통한다. 그룹 안팎에선 그를 ‘삼성 집사’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에 비교하기도 한다. 박 사장은 이 창업주 때부터 회계와 경리부장을 시작으로 20여년 동안 ‘태광 금고지기’로 있었다. 각 계열사의 자금 관리 담당 위에 군림, 그룹 자금을 관리하는 총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태광일가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이 회장이 2004년 회장직에 오른 이후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통해 ‘구세력’이 대부분 숙청될 당시 박 사장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히려 더 잘나갔다. 박 사장은 그해부터 대한화섬 대표에 태광산업 전무, 4개 계열사 감사까지 겸임했다.

전직 계열사 임원은 “박 사장은 그룹 전반의 자금줄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며 “이 회장의 아들 현준군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편법 증여 작업도 지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세청…금감위…’
검찰도 예외 아니다

박 사장 외 눈여겨봐야 할 인물은 또 있다. 오용일 태광산업 부회장이다. 검찰은 지난 14일 오 부회장을 소환해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 또 이 회장 아들의 편법 증여 부분과 티브로드가 큐릭스를 인수하면서 수백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는지도 추궁했다.

‘태광 로비스트’로 알려진 오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이 회장에 이어 실질적인 ‘태광 2인자’다. 이 회장의 최측근으로 태광산업은 물론 국내 1위의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티브로드 부회장도 맡아 그룹 주요업무를 사실상 통괄하고 있다.
 
1975년 태광산업에 입사해 자금과장과 경영지원실장 등을 거쳐 2004년 흥국생명 전무, 2006년 흥국쌍용화재(현 흥국화재)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2007년 태광산업과 티브로드 사장을 맡다 지난 6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오 부회장은 태광그룹의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사건에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 사건으로 벌금형이 확정된 전직 태광그룹 계열사 직원 문모씨로부터 거액을 요구하는 소송을 당한 것. 문씨는 “오 부회장 등 회사의 지시에 따라 성접대를 했는데, 회사는 모든 책임을 내게 돌리고 해임했다”고 주장했다.

태광그룹 운명은…
가신들 입에 달렸다

김영식 가야골프센터 대표도 주목받는 ‘태광맨’가운데 한명이다. 검찰 주변에선 김 대표가 ‘판도라의 상자’열쇠를 쥔 인물로 꼽히고 있다. 검찰은 지난 16일 부산 가야동의 태광산업 소유 가야골프센터를 압수수색했다. 이 골프연습장 책임자가 김 대표다.
 
김 대표 역시 창업주 때부터 태광일가의 자금을 관리해 왔다. 이런 이유로 여러 차례 검찰 조사를 받은 그는 비자금 창구로 의심받는 그룹 계열사 고려상호저축은행의 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13일 고려상호저축은행을 압수수색해 차명계좌에 보관된 3000억원대 예금과 차명 주식, 800억원대 보험계좌 등을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태광그룹 핵심인사들을 잇따라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는 이들에게 없는 단서를 뽑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보한 물증의 확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상황에 따라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는 대목이다.

태광그룹 수뇌부는 이 회장을 필두로 오 부회장과 박 사장 2인 아래 3인 체제로 구성돼 있다. 이상훈 태광산업 사장, 이상윤 티브로드 사장, 이화동 강서방송 사장 등이다. 3명 모두 이씨라 ‘삼이 체제’로 불린다.

이상훈 사장은 한국바스프 부사장과 사장 등을 거쳐 2007년 태광산업에 스카우트된 뒤 경영관리를 총괄했다. 이상윤 사장은 티브로드 상무, 전무와 안양방송·수원방송·태광산업개발 대표를 역임했다. 이 회장의 작은아버지 이화동 사장은 그룹 부회장급이다. 태광산업 사장, 흥국쌍용화재 부회장을 지내다 올해부터 강서방송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도 맡고 있다.

그런가하면 회사를 그만둔 전직 거물급 임원에도 시선이 쏠린다. 이 회장과 함께 회사를 키운 유석기 전 부회장과 진헌진 전 사장이다. 유 전 부회장은 그룹에 40여년 몸담았던 태광의 산증인이다. 1966년 태광산업에 입사해 태광산업 전무와 대표이사 부사장, 대한합섬·안양방송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흥국생명 대표이사를 맡은 유 전 부회장은 2006년 재선임됐지만, 경영에 복귀한 지 1년4개월여 만에 돌연 물러났다.

진 전 사장은 이 회장과 ‘절친’사이다. 이 회장과 같은 대원고, 서울대를 졸업한 진 전 사장은 한양투자금융, 한국코트럴에 근무하다 이 회장의 제의로 그룹에 합류했다. 티브로드·태광관광개발 대표이사로 재직하다 2008년 흥국생명 사장에 취임했지만, 1년3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다. 이 회장의 측근 중 측근인 만큼 그의 퇴진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검찰은 태광일가를 보좌하며 비자금 조성을 도운 그룹 내 핵심 인물들뿐만 아니라 외곽 비호세력까지 털어낼 복안이다. 태광그룹이 사업영역을 거침없이 확대하는 과정에 도움을 준 정·관계 인사들이 타깃이다. 타깃을 가늠할 수 있는 근거는 그동안 태광그룹을 때렸던 솜방망이 처벌이다. 그 대상엔 검찰을 비롯한 사정당국과 금융감독위원회,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국회 등이 거론된다.

검찰은 태광그룹이 2006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를 인수하면서 수백억원대의 차명계좌를 동원했지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고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그룹 계열사 흥국생명이 2006년 쌍용화재를 인수할 자격이 없었으나 승인했다.

국세청은 2007년 태광그룹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를 벌여 790억원대의 추징금을 부과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태광그룹을 종합편성채널사업자 및 보도채널사업자로 선정하면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다. 검찰은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그룹이 관리해온 ‘태광 리스트’를 확보했는데, 이 명단에 정치인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태광 창업주와 같은 고향인 ‘밀양라인’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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