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불러도…‘튈 시나리오’ 다 짜놨다

2010.09.28 09:46:10 호수 0호

2010 국감 CEO 블랙리스트


 

각 상임위별 증인 채택 “누가 불려갈까” 재계 초긴장
‘준비 태세’ 해외출장·건강이상 등 도피수법 마련



2010 국정감사 시즌이다. 오는 4일부터 23일까지 열릴 국감을 앞두고 재계는 ‘긴장 모드’다. 누가 불려갈지 몰라서다. 코앞에 닥친 국감 증인으로 기업인들이 대거 채택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임원, 특히 CEO ‘호출’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해는 누가 얼굴을 붉힐까. 떨고 있는 재계 ‘용의자’들을 추려봤다.

10월만 되면 재계는 긴장한다. 국정감사 때문이다. 해마다 단골 표적이 됐던 재계는 올해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여야는 MB정부 들어 어려운 경제 사정 등을 고려해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인 국감을 가급적 자제하자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엔 뭔가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부터 중소기업과의 상생 등 사회적 책임을 물어 ‘대기업 때리기’에 나선 마당에 눈치 볼 것 없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재계도 이를 눈치 챈 듯 분주하다. ‘국감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안테나를 여의도에 맞추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저마다 정보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

기업인 증인 20여명
각종 의혹 해소될까


국내 굴지의 기업마다 직원을 붙여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각 의원들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원실 탐색은 기본. 의원 측 진영의 숨은 실세들을 찾아내기 위한 정보전도 뜨겁다. 흡사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을 방불케 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힘은 안테나의 높이, 즉 정보력에서 비롯된다”며 “국감 전부터 마무리될 때까지 사전 정보수집을 통해 국감의 표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별도로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각 상임위는 국감을 앞두고 속속 증인을 채택하고 있다. 지난 9월17일 현재 증인으로 신청된 기업인은 20여명에 이른다.

정무위는 지난 9월15일 KB금융지주의 인사 문제와 관련 어윤대 회장과 강정원 전 행장의 증인 채택에 합의했다. KB금융지주는 강 전 행장이 지난해 12월 회장에 내정됐다가 공정성 시비와 당국의 고강도 조사에 부담을 느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어 회장이 앉는 과정에서 정권 실세의 인사개입 의혹을 받았다. KB에선 어 회장과 강 전 행장 외에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원문희 전 국민은행 노무팀장, 김종익 전 NS한마음 대표, 남경우 KB선물 사장 등이 ‘호출’을 받았다.

이밖에 불공정 거래와 관련 김명국 삼성전자 상근고문, 최춘석 롯데마트 본부장, 하광옥 이마트 부사장, 조한규 홈플러스 전무, 신재우 롯데홈쇼핑 전무 등이 증인으로 신청됐다. 또 ▲김헌표 SK가스 전무·최수종 E1 전무(LPG 가격담합) ▲이격택 삼성물산 전무(용산 역세권 개발) ▲정명순 교원 대표·복진환 아이넷스쿨 대표(학습지 피해 소비자 불만) ▲나석균 KT 개인고객사업본부장·박정훈 애플컴퓨터코리아 본부장(아이폰 불공정약관·소비자 분쟁) 등도 국감 증인석에 앉을 예정이다.

여야가 공방 중인 증인도 있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놓고서다. 라 회장은 차명계좌를 통해 권력 실세에게 거액의 비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던 중 라 회장이 2007년 타인 명의의 계좌에서 50억원을 인출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전달한 사실을 파악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라 회장의 행위가 실명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자 금감원은 지난 7월 실명제법 위반 의혹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검찰에도 협조를 요청한 상태다. 야당은 라 회장 사건을 ‘영포라인’의 비호 아래 불법 차명계좌를 관리한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 라 회장의 증인 채택을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신한금융지주 내분사태의 핵심 관계자인 라 회장은 물론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까지 국감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여당은 ‘정치 공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아직 증인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여의도발 국감 살생부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인도 있다. ‘사정권’에 들어갔던 ‘용의자’들이다. 지난 1년간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표적지에서 떨어지거나 수사가 지지부진한 기업과 경영진이 국감장에 설 가능성이 크다.

‘폭로전’ 양상 가능성
“이름 거론될라” 촉각

검찰은 기업과 오너를 향해 사정없이 예봉을 휘둘렀지만,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변죽만 울리다 흐지부지된 사건도 적지 않다.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엔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이 엮여 있다. 검찰은 남 사장이 지난해 3월 연임 과정에서 협력업체를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자리 보전을 위해 천 회장 등을 통해 정권 실세에게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마무리하는 수순이다. 남 사장과 천 회장이 국감 증인석에서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주목된다.


이번 국감은 의원들이 굵직한 치적을 만들기 위해 ‘폭로전’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차기 확고한 기반을 만드는 데는 정치·사회적 이슈 양성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실제 재계를 관리 감독하는 사정기관의 ‘컨트롤타워’격인 정무위를 중심으로 몇몇 야당 의원들은 기업들의 숨은 문제점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꼭 증인 출석이 아니더라도 지난 한해 동안 미스터리로 남은 각종 의혹의 정점에 있는 기업인들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야당 모 의원은 ‘A그룹 스폰서’의혹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A그룹이 정치권 인사의 스폰서 역할을 해왔다는 의혹으로, 접대 계산서 등 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정치권 인사가 A그룹이 받고 있던 검찰의 비리 수사에 압력을 넣어 사건을 축소했다는 정보도 입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야당 의원은 고위공직자의 자녀 특채 의혹을 걸고 넘어갈 태세다. B그룹과 C그룹은 이 고위공직자의 아들과 친인척을 채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어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둘은 비명문대 출신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B그룹 측은 “특혜는 절대 없었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 선발했다”며 “입사 전형은 블라인드 면접이기 때문에 면접 과정에서 누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C그룹 관계자는 “안 그래도 특채 의혹이 구설에 올라 이를 진화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데 국감에서 공론화될 경우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며 “국감에서 집요한 추궁에 시달리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CEO 등 기업 인사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증인석에 앉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저런 사유로 불출석할 게 뻔하다는 관측이다.

기업들도 이미 준비태세를 갖춘 모양새다. 해외출장 또는 건강상의 사유 등 ‘시나리오’를 벌써 짠 곳도 있다. 이는 기업인들이 국감 출석을 피하기 위해 이용했던 전형적인 수법. 잠시 자리를 피한 뒤 상황이 정리된 후 돌아올 요량이다.

모 기업 임원은 “회사 경영진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이미 해외에서 사업상 부득이한 출장이 잡혀 있어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일정을 조정할 수 없어 국회에 불참의사를 전했다. 법적 조치를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 직원은 “임원이 국회로부터 국감 증인 출석 요구를 통보 받았지만 지금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출석 여부가 불확실하다”며 “아무리 중요한 자리라도 아픈 몸으로 국감장에 나갈 수 없지 않느냐”고 전했다.

이미 해외출장 계획
벌써 몸아픈 증인도

국감 증인들이 출석을 회피하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때문이란 지적이다.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안 나가면 그만. 불출석 법적 조치가 약해서다.

국감 불출석 증인에 대한 처벌은 ‘국회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에 명시돼 있는데,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국감에 불출석한 증인에 대한 고발 비율은 고작 20%에 불과하다.

설사 검찰에 고발되더라도 실제 재판을 받은 경우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금까지 국회가 고발한 불출석 증인 중 징역형에 처해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대부분 무혐의, 기소중지, 기소유예 등을 통해 법적 면죄부를 받았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제재수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의원은 “국감 증인 불출석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법원의 강력한 처벌과 국회 차원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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