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엘코리아 해고 잔혹사

2015.12.28 10:39:25 호수 0호

‘해외로’ 휴가 간 사장님 ‘집으로’ 잘리는 직원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인력 감축을 원하는 사측과 이를 용납 못하는 노조의 충돌은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다. 사측과 노조는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바이엘코리아 내부에서 불거진 노사 갈등 역시 비슷하다. 권고사직을 빌미로 인력 감축을 원하는 사측과 이를 막고자하는 노조의 첨예한 대립은 전형적인 노사 갈등구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독일에 본거지를 둔 바이엘은 150여 개국에 약 350개의 자회사와 둔 다국적 제약회사다. 해열진통제 ‘아스피린’으로 명성을 쌓은 바이엘은 가장 존경받는 화학기업으로 손꼽힐 만큼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쌓아 왔다. 하지만 국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어느 순간부터 바이엘을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으로 변모했다. 잇단 구조조정의 잡음이 부각된 탓이다.

인력 반토막

바이엘코리아는 몇 해 전부터 몸집 줄이기에 한창이다. 최근 3년간 시행된 인력 감축으로 바이엘코리아 전체 직원 약 600명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인원이 퇴사했다. 지난 2012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부 직원을 협박 및 감금하고 강제퇴직 각서를 받아냈다는 소문이 돌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역시 감원 바람은 계속됐다. 직원 일부가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떠났고 대기발령을 받은 채 아직 퇴사 처리 되지 않은 인원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듭된 인원 감축에 노동조합이 불만을 나타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 18일 바이엘코리아 노조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회사의 불공정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날 규탄대회에는 100명이 넘는 직원과 각 지부 조합원 등이 참여했다.


노조에 따르면 바이엘코리아는 여성건강사업부 영업부 팀장 7명 중 3명에 대해 내년 1월1일자 권고사직 처분을 내렸다. 보는 시각에 따라 부서 축소 방침에 따른 조치로 이해할 수 있지만 노조는 명분 없는 사측의 일방적인 인력 감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처분이 내려진 3명 중 2명은 근속 20년차, 1명은 10년차이며, 이들 모두 수년 간 영업성과가 최상위권이었다. 이들에 대한 조치를 두고 사유 불문한 일방적 통보쯤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의 거짓 약속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진행된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도 잉그리드 드렉셀 대표이사를 비롯한 사측은 인원 감축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측이 일방적인 권고사직을 통보했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묻지마식 권고사직의 추가 발생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노조 관계자는 “합당한 권고사직 이유를 요구해도 사측은 종합적 판단이라고만 되풀이한다”며 “구성원 대다수가 회사의 권고사직 결정기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해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권고사직을 두고 벌어지는 팽팽한 대립은 극단적인 파열음을 양산해 낼 조짐마저 나타내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노조위원장 자해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또 한 번 불거져도 그리 놀랍지 않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사측으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김기형 전 바이엘 노조위원장은 부당해고를 이유로 할복을 시도해 충격을 줬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김 전 위원장은 입원치료가 불가피했다. 사건 직후 양측의 입장은 엇갈렸지만 인원 감축 문제가 대립을 양산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존경받는 기업 맞아?…퇴직 쓰나미 덮쳐
3년새 직원 절반 감축 “분위기 뒤숭숭”

바이엘코리아측은 독일 본사 차원에서 회사의 핵심 역량 강화를 추진 중이고 이번 사안은 그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즉,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그러나 바이엘코리아의 인력 감축은 독일 바이엘 본사가 취하는 일련의 행동과 사뭇 다르다. 

2001년부터 연간 근로시간 계좌제를 실시한 바이엘은 24시간 연중무휴로 생산시설을 가동해왔다. 덕분에 인건비가 저렴한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지 않고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근로시간 유연화로 직원들의 연장근로를 줄인 대신 생산 효율은 높인 셈이다. 무엇보다 인력 감축을 최소화한 채 생산성 극대화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바이엘이 존경받는 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제는 남아있는 인력들조차 앞날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핵심은 ‘일반해고’로 귀결된다. 악용 가능성 때문에 표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업무 능력을 해고 사유로 집어넣은 셈이다.


비록 합리적 기준에 따라 근로자를 평가하고 해고 최소화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우려의 목소리를 희석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만약 정부의 의지대로 해고 요건이 완화된다면 사측의 감원 의지가 더욱 확고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이미 반 토막 난 바이엘코리아의 내부 인력이 더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무관하지 않다.

대표는 어디로?

바이엘코리아의 한 직원은 “언제 인력 변동이 있을지 몰라 알게 모르게 뜬소문이 떠돈다”며 “대표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외국으로 휴가를 갔다던데 정작 회사는 연말에 뒤숭숭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국적기업 조세회피 방지책

기획재정부가 무형자산을 활용한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는 대책 도입을 검토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승인된 ‘세원 잠식과 소득 이전(BEPS : 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프로젝트를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 중 하나다.

G20은 무형자산 비중이 커지는 사이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도 급증했다고 보고 국제기준을 손보기로 했다. 무형자산을 빌미로 다국적 기업이 국제기준을 인위적으로 우회해 조세부담을 줄이는 일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현행 국제기준에서는 외국 기업이 다른 나라에 외국 기업 명의의 계약을 체결할 권한을 반복적으로 행사하는 '종속대리인'을 두면 그 기업은 고정사업장을 둔 것으로 간주해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 다국적기업 상당수는 자신의 명의로 대신 계약을 체결하던 종속대리인과 위탁 판매 계약을 체결해 조세를 회피해왔다.

정부는 조약 개정 권고안을 반영하기 위해 OECD가 추진하는 다자협정에 지난달 가입, 다자협정 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협정 서명 여부는 최종 다자협정 결과를 보고 결정할 방침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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