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19)한남운수 해고자 이병삼씨

2015.12.14 10:09:57 호수 0호

모범사원 사장에 찍혀 ‘집으로’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열아홉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남운수 해고 노동자 이병삼씨입니다.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배동 인근 고급 빌라 앞에서 아침 일찍부터 1인 시위를 벌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옛 직장의 대표가 살고 있는 이곳을 며칠 전부터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연신 너털웃음을 짓고 있지만 눈빛에는 비장함이 감돈다. 대체 그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부당한 해고

1962년 설립된 한남운수는 서울시 관악구를 기반으로 다수의 간선 및 지선버스를 운행하는 운송회사다. 2008년 자금난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박복규 대표가 이듬해 회사를 인수한 이후 나름 탄탄한 입지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한남운수는 수년 째 잡음을 양산하고 있다. 부당한 대우에 항거한 이유로 쫓기듯 회사를 등져야 했던 해고노동자의 원성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삼씨 역시 그들 중 한명이다.

이씨는 2002년 한남운수 입사 이래 회사 내부 평가에서 매번 수위권을 차지했던 25년 경력의 유능한 정비사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돌연 해고를 당하자 많은 사람들이 놀란 건 당연했다. 


갈등은 박 대표의 취임과 함께 시작됐다. 2009년 박 대표는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15% 임금삭감과 1년 단위 비정규직 전환을 회사 내 정비직 노동자들에게 강요했다. 정비사들에게 재입사 형식으로 계약서를 다시 쓰게 하면서 지금껏 이어진 정비사들의 호봉은 무용지물이 됐다. 사실상 연봉 인상을 바랄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렸다.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한 정비 노동자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사측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버스 운전기사가 부족하다며 정비 인력 6명을 운전직으로 강제 전직시키는 일도 서슴없었다. 강제 전직된 한남운수 정비직 노동자들은 정비 업무에 필요한 차고지 내 시범 운전을 위해 선택적으로 대형면허를 취득했을 뿐 대형버스 운전에 대한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긴 어려웠다. 이씨를 비롯한 2명의 정비 노동자는 결국 회사를 떠난다.

이씨는 “현실을 못 이겨 결국 회사와 타협했지만 이후 앙심을 품고 주모자로 꼽힌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며 “정비직 노동자 6명을 운전직으로 부당 전보하고 반년 가까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부당한 대우가 이어졌다”고 탄식했다. 

내부 평가 수위권 유능한 정비사
임금삭감에 강제전직…결국 해고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운송사업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필수 규정마저 회사는 등한시 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버스사업주가 운행 버스 1대당 정비 노동자 0.1458명을 고용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한 회사에서 100대의 버스를 운영한다면 정비기사는 최소 15명이 필요하다.

한남운수가 보유한 버스 대수는 100대를 훌쩍 넘는다. 그러나 한남운수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남아있는 정비기사들에게 과도한 노동의 짐을 지우게 했다. 인건비 지출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서울시 버스 체계를 감안하면 회사의 이 같은 입장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서울시는 2004년 7월부터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해 시내버스 회사가 벌어들인 돈에서 운송비를 제외한 적자분을 전액 보전해 주고 있다.

버스 준공영제는 민간운수업체가 서비스를 공급하는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노선입찰제, 수입금 공동관리제 및 재정지원 등을 통해 버스 운영체계의 공익성을 강화한 것이다. 버스 준공영제를 통해 수익성 있는 구간에만 편중될 수 있는 버스노선이 변두리 취약지역까지 확대 조정되도록 할 심산이었다.
 

이씨는 민간 운송사업자인 한남운수가 버스 준공영제의 취지를 망각한 채 정비 노동자들을 착복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보고 있다. 줄어든 정비 노동자 몫의 임금이 회사의 다른 호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주장이다. 현직에 종사는 정비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차량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결국 시민의 안전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서울시가 적정이윤까지 보장해주는데 왜 정비직 노동자 임금을 삭감해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2010년 10월에 해고된 이래 지난 5년 간 복직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씨의 복직은 기약이 없다. 법원은 이씨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해고 이후 이씨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지방법원에서 승소했지만 고등법원에서는 패소했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희망적인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이 사안을 개인과 회사 간 노사분규쯤으로 바라보고 있다. 기대를 걸 수 없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박 대표는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회 회장을 연임할 만큼 운송업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인물로 꼽힌다. 달리 말하자면 한남운수에서 쫒겨난 이씨가 다른 운송업체에 간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씨는 사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불완전한 현실이지만 한남운수에 근접한 서울대학교 근방에서 간이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인 지 1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한남운수 대표가 살고 있는 방배동 인근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롯한 정비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요원한 복직

이씨는 “정비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며 “그릇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작은 몸부림에 불과할지라도 의미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운전기사 구인난

올해 상반기 정부가 산업 직종별 노동력 수급을 조사한 결과 구인난이 가장 심각했던 곳은 운송업에 종사하는 운전기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직종별 인력수급불일치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산업 중에서 미충원율(채용 실패 인원을 희망 구인인원으로 나눈 비율)이 가장 높은 직종은 ‘운전 및 운송관련업’이었다. 이들의 미충원율은 33%에 달했다. 택배나 택시·버스 등 운송회사들이 채용 목표인원 10명 중 3명은 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들 업종이 구인난을 겪는 큰 이유는 근로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사업체가 제시하는 임금수준이나 근로조건이 구직자의 기대보다 떨어져 구직자들이 기피하는 경우가 전체 37.5%를 차지했다. 회사가 요구하는 자격의 구직자를 찾지 못해 채용에 실패한 사례가 26.8%였고, 해당 직종의 구직 인원 자체가 부족한 탓이 21.0%였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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