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거부자들, 그 후…

2015.11.25 14:29:33 호수 0호

“입시 반대” 어떻게 사나 보니

[일요시사 사회팀] 박호민 기자 = 올해도 수능이 끝났다. 청년모임 ‘투명가방끈’에게는 수능일의 의미가 다르다.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꼬집고 입시 거부의 목소리를 내는 시간. 대학입시를 거부한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12일 대학과 입시를 거부하는 청년 모임 투명가방끈이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했다. 2011년에 처음 선언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4회째다. 그동안 사회에 진출한 회원도 있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회원도 있다.

시련의 연속

투명가방끈은 이날 선언식에서 “이 나라의 입시경쟁은 청소년들에게 사람이 아닌 기계의 삶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입시경쟁의 줄 세우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며, 기계로 살아갈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수능 한파가 없었지만 투명가방끈에게는 쌀쌀했을 것이다. 매년 선언식을 통해 사회적인 편견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선언식에서의 투명가방끈은 제도권 교육에 대해 투쟁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투명가방끈 회원들의 모습은 인간적인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투명가방끈이 수능일마다 사회와 만나 제 목소리를 내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한다는 취지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고졸자가 된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자는 취지다.


지난 2011년 대학거부를 선언한 김서린(29)씨는 “일각에서 투명가방끈이 학생들의 대학 거부를 부추긴다고 말한다”면서 “투명가방끈은 사정에 따라 대학진학을 하지 않은 고졸자들이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학을 거부했던 학생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투명가방끈 회원이든 아니든 고졸자들은 사회적인 편견과 싸워야한다. 이들은 공장이나 텔레마케터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는 등 불안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생계위협이라는 편견이 그들에겐 도전인 셈이다. 우선 고졸을 뽑는 회사가 없어 선택의 폭이 좁다. 따라서 고졸자로 세상에 나왔을 때 상당한 방황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대학거부 선언을 한 함이로(20)씨는 지난 1년동안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함 씨는 “최근 한 쇼핑몰에 취업해 전공을 살려 일하고 있다”면서 “저 같은 경우 전공이 있어 취업에 성공했지만 별다른 전공이 없는 인문계 학생들이 대학 거부를 하게 될 경우 사회에 나와 시련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같은 일을 하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 교육단체에서 일했던 A씨는 고졸이라는 이유로 월급이 차등 지급되기도 했다. 일반 기업이 아닌 교육단체에서의 학력 차별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는 후문이다.

사회적 편견에 번번이 좌절
대개 비정규직…알바 전전도
견디다 못해 다시 대학으로

김서린씨에게도 지난 4년은 시련 극복의 시간이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김씨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자퇴를 결정하고 투명가방끈에서 대학거부 선언을 했다. 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김씨는 “전공을 살리려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지만 공무 쪽엔 뜻이 없어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대학 간판’의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김 씨는 대학교를 중퇴한 사실을 굳이 말하지는 않지만 대학교를 한때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대우가 달라지곤 한다고 말했다. 현재 김씨는 환경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김씨는 원래부터 사회와 관련된 단체에서 일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대학간판을 따지지 않은 단체라 비교적 차별을 덜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일반 기업에 취업해야하는 다른 고졸자의 경우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아 막막할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안한 생계를 이유로 투명가방끈 회원을 걱정하기도 했다. 김 씨는 “투명가방끈 회원들에게 대학 교육이 필요하면 당당하게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며 “다양한 이유로 대학을 거부했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든 존중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공현(28) 씨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교를 다니다 자퇴서를 제출하고 대학거부선언을 한 경우다. 그는 대학교 간판으로 결정되는 사회에 반대했다. 고등학교 때 인권단체에서 활동한 공 씨는 “학교 성적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그런 차별 속에서 나 자신 또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씨는 한 인권단체에 주3회 근무를 하고, 교육 격월간지에서 글을 쓰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정기적인 수입은 100만원 내외. 공씨 역시 고졸로서 겪는 당연한(?) 일들을 겪고 있다. 공공기관에 인권교육을 나갈 때 강연비가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있는 것. 그는 "고졸과 대졸의 사회적인 인식을 대학거부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며 "누군가 학력을 물었을 때 "고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후회는 없다

이들에게 대학 거부선언은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인터뷰에 응한 투명가방끈 회원들은 생계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후회했던 적은 없었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다만 예비 투명가방끈 회원에게 대학 거부로 인한 사회적인 편견과 불안한 생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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