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두산 ‘중대생 사찰’ 진실게임

2010.08.03 09:37:39 호수 0호

“일거수일투족 감시”vs“동정만 살폈을 뿐”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 정국의 최대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대학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일고 있다. 두산이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퇴학 처분을 받은 중앙대 학생을 사찰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이를 두고 두산 측과 학생 쪽의 주장이 서로 상반되면서 파문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급기야 법정 소송으로 비화되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두산중 직원 소지한 시위자 동향 보고서 발각
행적·동선 기록…‘학교? 회사?’지시자 미궁


두산의 ‘중대생 사찰’의혹이 법정 소송으로 비화됐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27일 사찰 의혹과 관련해 두산중공업과 학교법인 중앙대학교를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 혜화경찰서에 고소했다. 총학생회 측은 “정당한 방법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을 감시한 것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며 “중앙대와 박범훈 총장은 거짓말만 반복하고 해명도 성의와 객관성이 없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정 소송으로 비화

이번 사건의 발단은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대는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이후 18개 단과대·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46개 학과·학부로 통폐합하는 ‘대학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와 함께 총장 직선제 폐지, 교수 차등 연봉제 전환, 전교생 회계학 수강 의무화 등의 조치도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을 위한 구조조정이란 지적이 나왔고, 이를 항의하던 학생들이 지난 4월 2명 퇴학, 1명 무기정학, 1명 유기정학, 1명 서면경고 등의 처분을 받았다.

이번 사찰 논란의 중심에 선 노모씨도 그중 한명이었다. 중앙대 독어독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노씨는 30m타워크레인에 올라 시위를 벌이다 퇴학 조치됐다. 당시 중앙대 측은 퇴학 이유에 대해 “학생들의 시위가 언론에 보도돼 학교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밝혔다. 총학생회는 이후에도 100㎞ 삼보일배와 삭발 항의 등의 시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달 24일 일이 터졌다.

총학생회는 이날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와 두산인프라코어 노조, 동명모트롤 노조 등과 함께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두산그룹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수상한 사람이 집회 장면을 몰래 촬영하다 학생들에게 발각됐다. 두산그룹의 계열사 두산중공업 소속 직원 오모 대리였다. 오 대리는 도주를 시도했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문제는 노씨가 갖고 있던 문건이다. 그는 ‘노○○ 관련 동향 보고’란 제목의 A4용지 5장 분량 문건을 소지하고 있었다. 문건의 당사자인 노씨도 현장에서 이를 확인했다. 1장은 노씨의 동향 보고서, 2장은 집회 때 사용된 유인물, 나머지 2장은 중앙대 교직원과 재단 사무처 직원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이었다. 이 문건엔 우선 집회 내용이 담겼다.

‘7월24일 14:40 예정…동대문 두산타워 건너편 서울운동장 집결 예정…현재 교내 ‘대안포럼’행사 관계로 학생 집회 참여가 저조할 것으로 파악….’ ‘7월25일 10:00 예정…7월18일 노○○ 주최 명동성당 1인시위 취소(우천관계) 25일로 연기…시위 피켓제작, 피켓 글자에 LED조명 부착….’ 노씨의 행적과 동선도 기록돼 있다. ‘7월23일 노○○ 고대 갔다가 지금 들어오는 중입니다…문과대 유○○ 실장이 노○○ 퇴학자를 면담해 집회계획 확인…내일 현장지도는 유○○ 실장, 두산 오○○ 대리, 제가 지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총학생회는 “개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군사독재시절을 연상케 하는 학생 사찰이 학교도 아닌 두산에 의해 자행됐다”며 “두산이 교육에 대한 어떤 존중도 없이 퇴학생을 불순분자 노조원 다루듯 미행·감시하고 뒤를 캐온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사생활 침해 논란까지 일으킬 수 있는 문제”라며 “관련자를 파면하고 박용성 이사장은 즉각 공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중앙대와 두산중공업은 “사찰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사찰이나 뒷조사를 한 것은 아니다”라며 “대화내용을 정리한 간단한 내부 보고용으로 동정 수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건에 연루된 해당 직원은 두산이 2008년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파견됐기 때문에 두산중공업 소속이 아닌 학교 사무처 소속으로 봐야 한다”며 “학교에서 이 직원을 시위 현장에 보냈고, 보고 내용도 학교 측에 전달되는 등 두산중공업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두 기관의 수장도 각각 공식 입장을 통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박범훈 총장은 “문서는 퇴학 조치된 노군이 일부 재학생, 두산계열사 노조원들과 집회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먼저 학교에 알려와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된 내용일 뿐 사찰은 없었다”며 “재학생 지도 차원에서 현장에 나간 직원이 내부 보고 자료를 지참한 것을 마치 두산에서 사찰을 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내부 보고용”

박 총장은 “문서는 모두 5장으로 첫번째 장은 노군의 집회 관련 보고 내용이고 두번째와 세번째 장은 이에 관한 대학 내부보고용 이메일 문서, 네번째와 다섯번째 장은 학생들이 만든 전단지”라며 “이 문건이 과연 사찰 결과를 담고 있느냐”고 말했다. 박용만 두산 회장도 박 총장의 해명에 맞장구쳤다. 박 회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중앙대 일은 박범훈 총장께서 발표를 하셨더군요. 그것이 팩트(사실) 입니다”란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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