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2015.09.21 09:09:08 호수 0호

게이버 메이트 저 / 김영사 / 1만8000원

이 책의 저자 게이버 메이트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다. 나치의 통치를 받던 부다페스트에서 생애의 첫해를 보냈고 가족들 대부분이 나치에 의해 살해되거나 추방당했다.
극한의 고통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유아기를 보낸 저자는 자신이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그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참아내며 부모의 고통을 배려하는 것을 자신의 성격으로 삼았다.
저자가 내과 의사이면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애착 관계’ ‘주의력 결핍 장애’ ‘중독’ 등 인간 심리와 관련된 다양한 저술들을 펴낸 데는 자기 감정에 대한 성찰과 치유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기희생적 대처 방식을 성인이 되어서도 바꾸지 않으면 몸이 이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공격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이 아프면서 몸의 고통이 함께 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기 감정을 억누르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욕구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면, 마음에서 자기와 비(非)자기의 혼동이 일어나고, 면역 세포가 스스로 몸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반란은 천식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알츠하이머병, 그리고 암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위대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야구선수 루 게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퍼스트레이디 베티 포드 등 수백 명 환자들의 삶과 경험에 대한 인터뷰와 세부적인 고찰들이 담겨 있으며, 저자는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본래의 지혜를 찾아가는,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여행을 제안하고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루게릭병 말기 환자인 모리 슈워츠는 ‘죽어간다’는 말이 ‘쓸모없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왜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무력한 아기든 무기력한 환자든 죽어가는 어른이든, 그 어떤 인간도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핵심은 ‘죽어가는 사람들도 쓸모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쓸모가 있을 필요가 있다’는 그럴듯한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천식에서 암까지 많은 질병들이 등장하고 수백 명의 환자들의 임상 케이스가 소개되지만 이 책은 몸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의 고통과 동시에 몸이 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의 고통을 피하면 몸은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심리학 도서들이 각광받는 시대지만, 몸이 보내는 고통의 신호를 대중의 눈높이로 풀어낸 책은 드물었다.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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