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새누리당, 도대체 왜 이러나!

2015.08.24 10:38:02 호수 0호

1990년 1월에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 세 정당이 합당할 당시 당헌·당규 팀의 실무 간사로 참여했었고, 아울러 필자의 30대와 40대 초반까지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새누리당에 가급적이면 말을 자제코자 했다. 비록 몸은 떠났지만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마디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정당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일”이라며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서는 지지세력이 확고한 우리 정치현실에서 본 의미를 구현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국적 불명의 정당민주주의가 등장했다.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그의 말마따나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의회민주주의를 빗대어 정당민주주의를 부르짖은 모양인데, 즉 정당의 운영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보이는데 느닷없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렇게 나오느니 헛웃음뿐이다. 하여 차제에 이 나라의 정치가 왜 ‘요 모양 요 꼴’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 실상을 살펴보자.

광복 이후 이 땅에 정치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헌국회가 들어서면서 이승만 정권 유지 차원에서 자유당이 등장했다. 자유당은 초대 대통령에 대한 중임제한 철폐를 골자로 일명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킨다.

이와 맞물려 현 야당의 원조인 민주당이 태동하면서 이 땅에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시작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정당은 이념이나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아닌 이승만 대 반이승만 구도의 기형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박정희정권 시절 지역주의가 가세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설명을 곁들이자. 다수의 사람들이 지역주의를 정치에 이용한 최초의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적하는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지역주의가 처음 등장한 선거는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가 다시 맞붙은 제6대 대통령선거 때였다. 먼저 1963년에 실시된 5대 대통령 선거 상황을 살펴보자. 당시 윤보선 후보 측에서 박정희 후보가 여순반란사건에 가담한 전력을 들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이는 윤보선 후보의 커다란 오판으로 당시 호남사람들의 반감을 사면서 급격하게 박정희 후보에게 표가 몰렸고, 호남사람들이 박정희 후보를 당선시켜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당에서는 호남의 민심을 돌리는 방안의 일환으로 지역주의, 즉 경제개발이 영남에 편중되었다면서 호남 푸대접을 토해내며 호남 민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윤보선의 오판으로 이를 계기로 영남이 뭉치기 시작하면서 지역주의가 정치 전면에 등장했고 삼김씨의 전성기 시절 극을 치닫는다.

그리고 삼김씨가 정치에서 물러나자 희한한 현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꼼수, 그것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꼼수로 국민을 정치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대통령 후보도 그렇지만 자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데에도 국민을 끌어들였다.

이는 민주주의가 표방한 책임정치, 정당정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후안무치한 처사다. 국민이 심판하는 대상이 정당인데 그 행위를 방해라도 하듯 국민을 끌어들이는 일은 한마디로 국민을 농락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에서 국적불명의 정당민주주의를 내세우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천권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면서 공천권을 당원에게 주어야지 국민에게 주겠다니. 정말 대가리에 뭐가 들었는지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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