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고시촌 둥지’ 향락업소 실태

2010.05.25 09:43:06 호수 0호

“공부요? 아가씨 유혹에 허송세월 합니다”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신림동 들어간다”는 말이 오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자리한 ‘고시촌’은 각종 고시학원과 고시원 등이 밀집해 있어 ‘고시의 메카’로 여겨져 왔던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최근 이곳의 고시생들은 고시촌의 ‘이상한 변화’에 울상을 짓고 있다. 고시촌 도처에 독버섯처럼 퍼져나간 유흥·퇴폐업소들이 고시생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 이에 <일요시사>는 ‘유흥의 메카’라는 오명을 쓴 채 열병을 앓고 있는 고시촌의 상태를 진단해봤다.

키스방, 전화예약 안하면 출입조차 못해
향락업소 빠져 수험 포기한 고시생 숱해


지난 18일 오후 6시30분쯤 찾은 신림동 고시촌. 고시학원과 고시원, 독서실이 즐비한 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XX섹시바’ ‘XX토킹바’ ‘XX남성 전용 마사지’ ‘XX남성 스트레스 클리닉’ 등 이름부터 수상한 냄새가 풍기는 간판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중 한 토킹바의 문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봤다. 이른 시간임에도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여성종업원과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한 뒤 말을 건넸다. 시시콜콜한 몇 마디가 오간 뒤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경위에 대해 물었다.



‘외로움’ 달래려 출입

2년 째 신림에서 고시를 준비한다는 고준엽(28·가명)씨는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운을 뗀 뒤 말을 이었다. 2년 전 처음 신림에 왔을 당시 고씨는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굳힌 상태였다. 그런 그였기에 공부하러 고시촌까지 들어와서 토킹바나 섹시바 등을 출입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의 굳은 결심이 꺾이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가장 무서운 적은 외로움이었다”라고 말한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대화할 상대도 없었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그는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쳤다. 그 때 토킹바가 눈에 들어왔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심정으로 들어간 토킹바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여성종업원과 얘기를 나누며 술 한 잔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싹 풀어지더라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토킹바 방문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고씨는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토킹바 방문을 자제하려 했다. 하지만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차라리 눈에라도 안 띄면 가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매일 오가면서 보이니 더 참기 힘든 것 같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성종업원 역시 그의 말에 맞장구 쳤다. 고시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림에서 3년 넘게 지내고 있다는 그녀는 “실제로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학원, 독서실에 가고 밥도 홀로 먹는다. 이처럼 쓸쓸한 환경에 있다 보니 토킹바 등을 많이 찾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이곳에서 고시생과 주민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늘진 얼굴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니는 사람은 십중팔구 고시생이다”라고 귀띔해줬다.

이쯤 되니 집 떠나 고시촌에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가까스로 짐작이 간다. 그런데 고씨는 고시생들의 고충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밝힌 고시생의 또 다른 적은 바로 ‘중압감과 스트레스’다. 그렇다면 고시생들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할까. 이에 대해 묻자 고씨는 “이쪽으로 오는 길에 보지 않았나. 밖에 나가면 키스방이니 안마방 같은 게 널려있다”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엔 ‘남성전용’이라는 ‘은밀한 사인’으로 퇴폐업소임을 밝히던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퇴폐 안마방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면서 ‘안마방=퇴폐업소’라는 공식이 성립됐다고. 때문에 오히려 일반 안마방에서 ‘건전’이라는 말을 내거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는 “안마방을 이용하려면 요령이 필요하다”며 “업주에게 ‘김XX에게 소개 받아서 왔다’고 하면 OK”라고 귀띔해줬다. 그에 따르면 퇴폐안마방 업주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손님만을 상대한다. 심한 경우 전혀 다른 간판을 내건 채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손님만 받고 있는 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키스방의 경우는 한술 더 뜬다. 전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방문해 본 키스방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벨을 누르자 인터폰을 통해서 “손님 예약 번호가 어떻게 되십니까”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수차례에 걸쳐 협상을 시도 했으나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지난 해 6월부터 관악구가 신림동 고시촌 일대의 유흥 및 퇴폐업소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음에도 퇴폐업소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밖으로 나와 토킹바 여성종업원이 일러준 대로 ‘어깨 축 늘어져 있는’ 이들에게 몇 차례의 인터뷰를 더 시도해 봤다.
“빠져들지 않고 스트레스 해소에만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몇몇 고시생들을 제외하고는 고시촌에 파고든 퇴폐업소들을 문제 삼고 있었다.

신림동 원룸에서 5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신현호(30·가명)씨는 “전역 후 처음 신림동으로 왔을 땐 퇴폐업소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최근 2년 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고시준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유흥시설에서 시간을 탕진하다 심지어 수험 자체를 포기하는 남성 수험생들을 여럿 봐 왔다”고 털어놨다.

현재 신씨는 월 2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다. 그는 “옮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서울 어느 지역에서도 이 가격에 방을 구하긴 어렵다”고 털어놨다. 싸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신림 고시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단속피해 비밀영업

이는 비단 신씨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 신림으로 몰려드는 것은 고시학원이 밀집돼 있다는 이유 외에도 저렴한 방값이 한 몫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미뤄봤을 때 신씨와 같은 이유로 신림 고시촌을 떠날 수 없는 이들이 상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서 고시 합격의 꿈을 키우는 수험생은 줄잡아 3만명. 고시촌에 자리한 유흥 및 퇴폐업소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오늘도 외로움과 스트레스에 지친 고시생들의 발걸음은 퇴폐업소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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